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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대만도 친일파를 사형대에 세웠다. 우리는 단 한 명도 처단하지 못했다"

30여 년간 ‘친일 문제’ 취재·연구해 온 정운현 작가,《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펴내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8.15(Mon) 07:00:42 | 1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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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는 7월26일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을 제정하기로 했다가 ‘친일문학상 제정 논란’에 휩싸이며 결국 이 결정을 철회했다. ‘해프닝’처럼 끝난 이 사건은 우리 문학계에서 친일 인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비단 문학계만의 일이 아니다. ‘친일파 청산’이란 구호는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친일’이란 뼈아픈 역사에 대한 단죄는 쉽사리 이행되지 않고 있다. 


언론인 출신으로서 30여 년간 친일문제를 취재·연구해 온 정운현 작가가 최근 출간한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는 그런 점에서 반가운 신간이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서울신문·오마이뉴스 등을 거친 정 작가는 1980년대 후반 한 주간지에서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인 임종국 선생의 삶을 다룬 기사를 읽은 것을 계기로 친일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친일파 1호’ 김인승, 친일을 직업적으로 한 조병상, 해인사 주지로 사명대사 비석 파괴에 앞장선 변설호, 지식인의 책무를 저버린 춘원과 육당, 지금까지도 근대여성의 상징으로 군림하고 있는 김활란과 모윤숙, 그리고 고문경찰의 상징 노덕술 등 한국사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친일파’ 44인의 행적을 낱낱이 파헤친 책이다.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를 집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하다.

일제하의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은 거의 다 죽었다. 현실적으로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을 단죄하는 방법이 있다면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길이다. 기록으로 남길 경우 그들은 천추만대에 민족사의 죄인으로 각인될 것이다. 다만 그 기록은 정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20세기 초 매국에 가담했던 친일파들은 이미 100년 전의 인물이다. 남아 있는 자료들도 많지 않고 그나마 사라진 것도 많다. 증언을 듣기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묵은 신문자료를 뒤지거나 현지취재도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일본에서 귀한 자료를 상당수 입수할 수 있었으나 중국은 여전히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근 상태다. 갈수록 친일파에 대한 취재와 자료 수집은 어려울 것이다. 

‘악질 매국노 44인의 이야기’라는 어깨 제목이 인상적이다. 차례에 올라온 이름들은 모두가 알 만한 현대사 속 유명인들이 등장한다.

이 책에 실린 44명은 각 분야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민족지사로 알려졌던 분들 가운데는 일제 때 친일을 한 분들이 적지 않다. 널리 알려진 인물로는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을 들 수 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이들의 친일행적을 알려주는 연구서나 자료가 극히 미비했다. 취재 과정에서 일제 당시의 신문이나 자료 등을 통해 이들의 친일행위의 실체를 발견하고는 극도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동안 우리가 배운 역사는 모두 엉터리였다는 생각에서다. 그런 사례는 비단 육당과 춘원뿐만이 아니라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최린·정춘수 같은 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친일행적을 발견할 때는 마치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이 묘한 희열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선인으로서 신직(神職·신사 관리자)을 지낸 이산연이 그런 경우였다. 이산연은 ‘반민특위 재판기록’을 풀이하는 과정에서 내가 발굴한 인물이다. 

우리 사회 친일파 청산이란 숙제는 여전히 미결된 과제로 남아 있다. 

친일파 청산은 꼭 누구를 벌주자는 것만은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 상식과 정의의 차원인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전범 처단과 함께 민족반역자 처단이 이뤄졌다. 우리 역시 제헌국회 때 반민법을 제정해 친일파 청산에 나섰다. 이는 오욕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통과의례이자 역사적 책무이기도 하다. 친일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반민특위에서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에 두고두고 민족의 숙제로 남아 있다. 오늘날 가치관이 전도되고 불필요한 역사논쟁이 이는 것은 모두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치 협력자 수천 명을 처형한 프랑스나 유럽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웃 중국과 대만도 상당수의 친일파를 사형대에 세웠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 명도 처단하지 못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선 점차 역사교육의 비중이 줄고 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작태다.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3대 요소는 말과 글, 그리고 역사다. 한민족이 한민족의 역사를 모른대서야 말이 될 소린가. ‘뉴라이트’가 만들다시피 한 이명박 정부 이후 이 같은 행태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역사를 두려워하는 무리들의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사를 기피하려는 것이 그 한 증좌다. 조선사를 가르치면서 임진왜란·병자호란을 빼놓을 수 없듯이, 일제강점기 역사에서는 항일과 함께 그 대척점에 섰던 친일 반민족사 역시 마땅히 제대로 가르치고 기록해야 한다. 

역사교육에 있어 ‘이념 편향’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있다.

냉정히,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은 그 나름의 역사관·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100% 중립적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해 역사를 기록·평가하는 모든 역사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보편적 관념과 상식에 기초해 투명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면 그런 문제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밀어붙이고 있는 국정 교과서는 집필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인 집필기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마치 도둑처럼 골방에 꼭꼭 숨어서 특정 방침과 지시에 따라 쓰는 교과서는 제대로 된 교과서라고 할 수 없다. 역사교육의 획일화를 가져올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념편향, 사실왜곡, 검증부족과 같은 엄청난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본다. 그런 교과서는 얼마 가지 못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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