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올림픽’에 한걸음 다가선 리우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김흥순 아시아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6 09:20
  • 호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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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평가는 낙제점…경기장과 취재진 버스에 총격까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올림픽 열기가 무르익고 있다. 8월7일(현지 시각) 메인프레스센터(MPC) 인근은 자정 무렵까지 올림픽 관중들로 북적였다. 주변은 오토바이 사이렌 소리로 요란했고, 나팔 소리와 응원가가 뒤섞여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뜨거운 열기와 반대로 올림픽 진행 과정은 매끄럽지 못하다. 치안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늘 국제대회에는 부실한 공사와 미비한 시설, 낙후한 환경에 대한 지적이 뒤따른다. 하지만 리우는 달랐다. 올림픽 개최 문제를 두고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것도 대회 심장부인 주경기장 인근 건물에 짧고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취재진과 선수들을 향한 강도·총격 사고까지 발생하고 있다. 올림픽이 중반부에 접어들었지만 성공적인 대회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8월5일(현지 시각) 2016 리우올림픽 개회식이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의 대형 오륜마크 뒤로 리우의 빈민촌인 ‘파벨라’가 보인다.© 연합뉴스

‘부자들을 위한 대회’ 치안 불안으로 

리우올림픽의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불안한 치안, 지카 바이러스, 테러와 같은 문제는 외부를 향한 경고일지 모른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구성원의 갈등, 이것이 올림픽을 주관하고 있는 브라질의 고민이다.

 

올림픽이 한창인 마라카낭 주경기장. 메인프레스센터를 출발해 행사장까지 버스로 1시간을 달리는 동안 리우의 민낯을 볼 수 있다. 큰길가에 흐르는 개천에서는 악취가 나고 빈민가가 곳곳에 밀집했다. 사이사이 세운 철조망은 덤불에 덮였다. 각국 취재진과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마련한 MPC 부근의 정돈된 인프라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국제 스포츠 대회를 앞두고 내적 갈등은 흔하게 표출된다. 그래도 대회를 준비하는 관계자와 유치도시 주민들은 한데 뭉쳐 외국에서 온 손님에게 되도록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한다. 리우는 사정이 다르다. 무장한 경찰과 병력의 삼엄한 경계로 주위는 평온하지만 주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브라질의 상징인 마라카낭은 내적 갈등의 압축판이다. 올림픽 개·폐회식 행사장으로 선정된 이 시설물을 에워싼 분위기는 그림자다. 경기장을 잇는 마라카낭역 뒤로는 빈민가 밀집지역인 ‘파벨라’가 산등성이처럼 솟았다. 인근 쓰레기통을 뒤져 빈병과 재활용품을 쓸어담던 남루한 사내는 허공을 가리키며 욕설을 내뱉었다.

 

자원봉사자 파울라 프라타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올림픽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리우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는 레지시아(27)는 “(브라질은) 혈통이 다양하고 땅이 넓어 인종끼리 충돌할 우려는 크지 않은 대신 계층 간 갈등이 매우 심하다”고 설명했다. ‘부자들을 위한 대회’라고 꼬집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빈민촌 주민들은 평균 50달러(약 5만5000원)씩 하는 경기장 입장권을 사기 어렵고 중계방송을 접하기도 쉽지 않아 올림픽에 무관심했다.

 

내적 갈등은 치안 문제로 이어졌다. 급기야 8월10일 오전에는 마장마술 경기장에 총알이 떨어졌다. 최근 경기장 인근의 빈민가에서 발생한 총격전 당시 발사된 유탄으로 추정하고 있다. 같은 날 취재진을 태우고 이동하던 버스에 두 발의 총격이 가해졌다. 피해자는 없었지만 유리창이 깨지면서 취재진 두 명이 다쳤다. 각국 선수들이나 정부 관계자들조차 무장강도와 마주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 인근 건물에 “오직 부자들을 위한 올림픽”이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올림픽 반대 목소리는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아시아경제 김흥순
‘삼바의 광란’이 경기력 저하로

리우올림픽의 또 다른 특징은 ‘삼바’로 연상되는 브라질 국민들의 응원 태도를 꼽을 수 있다.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서 홈팬들이 자국 선수를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광경은 낯설지 않다. 리우올림픽은 강도가 훨씬 심하다. 특히 사격이나 양궁처럼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 뛰어나고,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종목에서는 승부를 가를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진종오(37·KT)가 메달을 놓친 남자 10m 공기권총 경기 때에도 그랬다. 브라질 리우 올림픽슈팅센터에서 8월7일 열린 결선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부부젤라’ 같은 나팔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 이 종목에는 브라질의 펠리페 알메이다 우(24)가 결선에 올랐다. 관중들은 알메이다 우가 한 발씩 쏠 때마다 발로 바닥을 구르면서 “우! 우!” 하는 함성을 질렀다. 다른 선수들의 격발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팔소리에 다른 관중들이 일어나 고함을 지르고 항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진종오는 소란하고 어수선한 관중석 분위기를 감지한 탓인지 조준했던 총열을 다시 내려놓고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국제사격연맹(ISSF)은 관중 친화적인 종목을 지향하면서 이번 올림픽에서 경기 도중 음악을 틀고, 응원단의 함성과 박수를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안방에서 경기하는 자국 선수에게 이 광경은 큰 힘이 될 수 있지만 부담감과 싸우는 다른 나라 선수에게는 방해요소다.

개막식에선 참가국에 대한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아르헨티나의 얘기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1825년 브라질 남부 시스플라티나주(州)의 독립 문제를 두고 3년 가까이 전쟁을 벌였다. 500일 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투에서 브라질이 졌고 유럽의 중재 끝에 우루과이가 탄생했다. 이 역사적 앙금을 바탕으로 두 나라는 지금까지도 앙숙으로 지낸다. 월드컵처럼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 때는 상대의 탈락에 기뻐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다.

리우올림픽의 공식 슬로건은 ‘새로운 세상(New World)’이다. 악재와 우려에도 브라질과 주 정부는 여전히 대회의 성공 개최를 자신한다. 마라카낭에서 17일간 타올랐던 성화가 꺼진 뒤 새로운 세상이 리우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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