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음식인류학] 여름철 식품위생? 미생물 막자고 ‘독성물질’ 사용하는 꼴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8 15:32
  • 호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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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식품위생 다시보기 (上) - 살균소독제 만연, 오히려 인간에게만 피해 주는 결과 낳아
히게이아(Hygeia). 그리스신화의 여신 중 하나다. 주신(主神)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로 시작되는 신들의 계보 얘기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편이지만, 실제로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많은 섬김과 사랑을 받는 여신이었다. 그녀를 잘 섬기면 그날그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게 해 주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단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회복시켜주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 준다고 그 시대 사람들은 믿었다. 히게이아는 뱀과 술잔처럼 자루가 달린 컵과 같은 것을 갖고 있는 모습으로 표상된다. 이 뱀과 잔의 이미지는 요즘도 의약 관련 기관의 로고로 많이 쓰이고 있다. 잠이 들면, 잠든 새 히게이아가 찾아와 약초를 달인 물을 그 잔에 담아 마시게 부어주며, 뱀이 건강한 기운을 뿜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준다고 믿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쳐서 병이 나지 않을까 싶었던 몸이 말끔히 개운해진다는 것이다. 열대야가 계속되어 자고 나도 몸이 개운치 않은 요즘, 정말 그런 여신이 있다면 믿고 싶어질 정도다. 

서울의 한 기업 구내식당에서 주방용 살균소독제로 주방 싱크대와 행주를 소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불량식품은 미생물이 많이 포함된 음식?

히게이아는 또한 ‘위생’을 뜻하는 영어 단어 ‘하이진(hygiene)’의 어원이기도 하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되어 갑작스럽게 도시가 팽창하던 18세기 영국, 그때까지는 위생 개념이 없어 도로에 오물이 난무하는 등 생활환경이 불결하고 어수선했다. 몇 차례에 걸친 페스트의 창궐로 런던 시민의 수가 3분의 1까지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생활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위해 국가가 나서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관행 바꾸기를 주도했다. 이 새로운 사고 및 생활방식에는 ‘하이진(위생)’이라고 하는, 건강과 청결의 여신 히게이아를 오마주하는 이름이 붙여졌다.

위생 중에 중요한 부분이 식품위생이다. 덥고 습해서 미생물이 창궐하기 쉬운 여름철, 음식에도 영양분과 에너지가 들어 있기 때문에 부패미생물이 깃들면 무서운 속도로 분열해서 개체수가 늘어난다. 이들은 영양분을 분해해서 보다 분자구조가 단순한 비(非)영양물질로 만들어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런 미생물이 많이 든 음식에서 영양분이 사라지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부패미생물들은 음식 분해과정에서 독소를 내기 때문에 이런 미생물이 많이 든 음식을 먹으면 복통·구토·설사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식중독이 되는 것이다. 미생물은 아무리 많다 해도 우리 눈에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어떤 부패독성은 냄새가 잘 나지 않아 우리의 감각으로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방심하고 먹다가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살균소독을 하면 된다’라는 답이 얼른 머릿속에 떠올랐다면 당신은 진정한 현대인이다. 현대문명의 특징적인 건강관은 병의 원인이 되는 요소, 즉 병원균이나 비정상세포 등을 제거해서 병을 억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식품위생법에서도 불량식품을 ‘미생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음식’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에 의거해서 단체급식소에서 부패미생물과 같은 병원균을 죽이는 소독제를 많이 쓰고 있다. 조리사가 착용하는 의복과 장화를 시작으로 칼과 도마, 그리고 식재료에도. 부패미생물의 활동을 억제해서, 청결하고 위생적인 식품을 장만하자는 발상이다. 

살균제 내성 갖는 슈퍼박테리아 생겨 

그런데 이런 방식이 반세기 이상 애용되면서 부작용도 만만찮게 보고되고 있다. 우선 살균소독제에 내성을 갖는 슈퍼박테리아가 생긴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미생물 잡자고 쓴 소독제들이 인간에게만 피해를 주는 결과를 낳는다. 미생물은 구조가 단순해서 내성을 갖는 변종이 생기기 쉽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살균소독제가 생활환경에 만연하면 면역기능이 저하되기 쉬워 더 미생물의 독성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소독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로서 현대의 식품문명에 대해 비판의 각을 세워온 한스 울리히(Hans Ulrich)는 저서 《악마의 솥으로부터(Aus Teufels Topf)》(국내에서는 《더 이상 먹을 게 없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됨)에서 20세기 후반 지구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O157’이라는 식중독균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장내벽을 무차별 공격해 장출혈·고열·구토·탈수증 등 식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O157균은 사실 인간의 내장에 공생하면서 음식 찌꺼기를 처리하고 면역물질을 만들어주는 데 기여하는 이로운 미생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식품에 포함된 농약이나 보존제 등 화학물질이 계속 장에 투입되면 이것이 독성을 내뿜는 변종인 ‘O157:H7’로 변해 심각한 식중독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그리스신화의 모티브가 생각난다. 힘이 세고 우직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헤라클레스라는 캐릭터가 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사과 하나가 떨어져 있어서 발로 찼더니, 웬걸 그 사과는 길옆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부풀어 크기가 좀 더 커졌다고 한다. 열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한 번 더 찼다. 그랬더니 사과는 더욱 커졌다. 이번에는 늘 갖고 다니는 몽둥이로 내리쳤으나, 사과는 더욱 커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를 두 손으로 잡고 온몸의 힘을 실어 내리쳤다. 사과는 그의 몸집보다 더 커졌다. 탈진해서 헥헥거리는 헤라클레스 앞에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나타났다. “그 사과는 네 마음속의 분노란다. 그걸 힘으로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커지게 되어 있지.” 헤라클레스는 얼른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사과는 원래 크기로 줄어들고, 여신은 그걸 집어들고는 홀연히 사라졌다는 얘기.

여름철에 음식이 상하는 문제는 지구상에 인간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겼을 것이고, 냉장시설이 없는 전통사회에서는 더 심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만든 독성물질로 그걸 막으려 했던 사람은 현대인뿐이었다(물론 옛날에도 납 등 독성물질이 보존제로 쓰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식품의 살균소독 개념이 일반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다). 히게이아를 오마주한 현대의 위생 방법은 사실 무지막지한 시절의 헤라클레스의 방법을 닮은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여름철 식품위생을 확보하는 길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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