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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 '터널'이 할리우드와 다른 점

재난을 바라보는 ‘사회적 상황’도 이겨내야

이은선 매거진M 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0(Sat) 14:00:42 | 14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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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보고 전혀 뜻밖의 부분에서 놀라움을 느꼈다. 차를 몰고 가다가 붕괴된 대형 터널 속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다. 이 설정은 언젠가 뉴스로 접했던 것만 같은 익숙한 기시감(旣視感)을 불러왔는데,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실제로 터널이 무너져 사람이 갇힌 사건이 일어난 적은 없다. 아마도 그 기시감은 백화점과 한강 다리가 삽시간에 무너지고, 좌초된 배 위에서 생때같은 목숨 수백 명이 바닷속으로 수장되는 것을 꼼짝 못하고 지켜본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극 중에서 터널이 무너진 이유는 부실공사 때문이다. 이 또한 한국에서 살면서 체화한 경험들에 의하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설정이다. “대한민국의 안전이 또 한 번 무너졌습니다.” 《터널》 속 뉴스 앵커가 속보를 전하는 첫 멘트다. 이것이 비단 영화적 상황이 아니라, 응당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설정으로 관객이 알아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현실인가.


정부·언론에 대한 신랄하고 가슴 아픈 풍자

재난의 현실, 혹은 우리가 한국적이라고 생각하고 공감하는 어떤 상황들은 《터널》에서 고스란히 재연된다. 터널이 무너져 내리고, 그 안에는 자동차영업대리점 과장 정수(하정우)가 갇혀 있음이 확인된다. 터널 밖은 그를 구조하려는 작업이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낙관도 존재하지만 정수의 생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구조작업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때, 현장에 도착한 구조팀장 대경(오달수)은 구조차 주차공간을 막고 있는 언론사 승합차를 보고 뒷목을 잡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터널 속 정수와 통화를 마구잡이로 이어가는 기자의 행태도 답답하다. 정수의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지면 어떻게 그와 소통을 이어갈 것인가. 급하게 뜯어말리는 대경에게 기자는 “생방송 중 무슨 행패냐”며 적반하장이다. 이때 대경이 묻는다. “기자님들. 지금 방송이 더 중요합니까, 생명이 더 중요합니까? 그 쉬운 질문에도 대답 못합니까?” 

현장을 찾은 정부 관계자들은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가 더 중요하다. 남편 정수 걱정에 제 목으로 밥 한 숟가락 넘기는 것도 미안해하는 아내 세현(배두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세현과 함께 보도용 사진을 찍는 게 그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처럼 보인다. 정수를 살리자며 뜨겁게 달아올랐던 여론도 사태가 장기전에 돌입하자 사뭇 달라지기 시작한다. 정수가 갇힌 터널에서의 구조작업 때문에 주변 또 다른 터널의 공사가 진척되지 못하는 상황. 이는 날이 갈수록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연일 발표된다. 정수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은 경제적 손실을 따지는 수치놀음 앞에서 무력해진다. ‘할 만큼 했으니 그만 좀 하자’는 목소리들이 하나둘 튀어나온다. 

사람 목숨을 살리는 데 할 만큼 다 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기가 막히려는데, 생각해 보면 이는 현실의 재난 상황 앞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상황들과 소름끼치게 닮아 있다. 《터널》은 정부와 언론, 그리고 여론에 대한 신랄하고 가슴 아픈 풍자다. 세월호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죄의식을 건드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행히 이 영화는 어떤 음모론 때문이 아니라, 조금씩 어긋나 결국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시스템의 패착 때문에 재난이 발생한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만약 할리우드에서 《터널》을 만들었다면

할리우드 재난영화와 비교하면 ‘메이드 인 코리아’ 재난영화인 《터널》의 특수성은 더 확연히 느껴진다. 할리우드의 주인공들은 지구 전체가 무너지는 아수라장 가운데서도 살아남거나 가족을 지키려는 임무에만 집중한다.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재난 상황에 대처해야 할 뿐 아니라 재난을 바라보는 사회적 상황들도 이겨내야 한다. 어찌 보면 후자가 더 큰 싸움의 대상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교 대상으로 가깝게는 《마션》(2015)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지향점은 분명히 다른 영화이지만, ‘홀로 고립된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은 두 영화의 각기 다른 태도를 비교해 볼 수는 있다. 지구도 아닌 화성에 홀로 고립된 NASA 탐사대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상황 자체는 터널 안에 갇힌 정수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구조작전 자체의 스케일이 다르다는 점에서 와트니 쪽이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와트니를 통해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건 우주의 모래폭풍만큼이나 거대한 그의 외로움과 절망이 아니다. 과학 지식을 총동원해 물을 만들고, 식량 조달을 위해 감자를 일구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낙관적 인간의 부지런한 일상이다. 그렇게 버틴 그는 결국 구조된다. 범(汎)우주적 해피엔딩이 아닐 수 없다.

《마션》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것이 단 한 사람의 생존을 위한 전 지구적 연대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와트니가 단 며칠도 아니고 몇 년간 화성에서 연명하는 사이, 지구의 상황은 매우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돌아간다. 책임 결정권자는 꾸물대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 대신 빠르고 적확한 결정을 내리려 노력한다. 전 세계는 이 구조에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을 보탠다. 그리고 구조작전에 투입된 그 누구도 와트니를 위한 행동이 헛된 수고로움이나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와트니는 ‘천재 집단 NASA’가 자신을 구조할 것이라는 낙관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 

여기에서 인력과 시스템 모두 비록 단 한 명의 생명일지라도 그것을 포기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터널》의 대경처럼 “저 밑에 있는 건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같은 당연한 말을 해야 할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다. 《터널》을 할리우드에서 만들었다면, 아마도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사회적 상황과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션》이 한국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판타지로 느껴졌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한편 《터널》에는 한층 진일보한 시선도 있다. 재난 상황에서도 ‘인간 외 생명’에게까지 눈길을 돌린다는 점은 이 영화의 중요한 태도로 언급되어야 한다. 터널 안에 갇힌 건 정수만이 아니다. 정수와 이 존재의 유대는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자, 영화적 시선을 인간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감독의 윤리관이 엿보이는 대목이자, 재난을 다룬 기존 상업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시선이라는 점에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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