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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은 못 걸었지만 자신감과 미래를 얻었다

리우올림픽 축구대표팀, 히딩크式 성공방정식 뒤집었다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3(Tue) 14:27:05 | 1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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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의 이명(異名)은 ‘골짜기 세대’다. 산 가운데가 갑자기 푹 꺼진 것처럼 이전 세대와 비교해서 특출한 선수가 없음을 골짜기에 비유한 것이다. 한국 축구가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리우올림픽)으로 가기 위해선 이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부터 깨야 했다. 전임 이광종 감독의 갑작스러운 투병으로 인해 신태용 국가대표팀 코치가 지휘봉을 잡은 올림픽대표팀은 우려 속에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도전했다.

 

본선행 준비에도 장애물이 많았다. 연령초과 선수인 와일드카드는 신태용 감독이 원했던 구상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수비력 강화를 위해 선발을 추진한 홍정호(장쑤 쑤닝)가 전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의 반대로 소집이 불발됐다. K리그를 비롯한 국내 대회 일정이 겹쳐 조기 소집에도 실패했다. 수비의 주축인 송주훈은 대표팀 출발 이틀 전 부상을 당해 낙마했다. 와일드카드 3인방 손흥민·장현수·석현준은 대회 시작 10일여를 앞두고 차례로 합류해 조직력 완성을 우려케 했다. 

 

신태용 감독을 비롯한 올림픽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8월13일(현지 시각) 리우올림픽 축구 8강전 온두라스와의 경기에서 0대1로 패한 뒤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다.


세계에서도 통한 한국의 공격 축구

 

많은 의심에도 불구하고 신태용호는 역대 각급 대표팀 중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1차전에서 피지, 3차전에서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딴 멕시코를 꺾었고, 2차전에서는 세계 최강인 독일과 명승부 끝에 비겼다. 2승1무로 C조 1위를 차지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이 조별리그를 2승1무로 통과한 것과 더불어 세계대회에서 거둔 최고의 조별리그 성적이었다. 8강에서 온두라스를 만나며 두 대회 연속 메달 도전에 청신호가 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전력상 우위라고 평가받았던 신태용호는 시종일관 상대를 두드리고도 0대1로 패하며 메달 도전 일보 직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목표로 했던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신태용호의 올림픽 도전은 충분히 긍정적인 소득을 남겼다는 평이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세계대회에서 결과를 내기 위해 우리보다는 상대에 중점을 뒀다. 우리가 잘하는 것을 극대화해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잘하는 것을 봉쇄하는 게 성과를 내기 위한 선결 조건이었다.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도 한국 선수들이 지닌 기동력을 살려 상대의 주요 공격 루트를 틀어막는 전방위 압박을 구사했다.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홍명보 감독도 히딩크 감독이 일러준 방식을 잘 따라 성과를 거둔 경우였다. 성인 대표팀부터 청소년 대표팀까지 한국의 각 연령별 대표팀은 공격과 슈팅보다는 수비와 압박을 앞세워 세계무대에서 서서히 성과를 냈다.

 

신태용 감독은 이전의 성공방정식을 완전히 뒤집어 리우올림픽에 나섰다. 그는 정면승부를 택했다.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특급 유망주들이 즐비한 독일을 상대로 볼 점유율, 슈팅 숫자에서 대등한 기록을 남겼다. 온두라스와의 8강전에서는 볼 점유율에서 64대36, 슈팅 숫자에서 16대6으로 앞섰다. 이런 한국형 공격 축구는 피지와의 1차전에서 가장 빛났는데 신태용호는 무려 31개의 슈팅을 상대 골문에 날리며 8대0 완승을 거뒀다. 3골을 넣은 류승우는 세계대회에서 최초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남자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한국 축구는 과거 전력 차가 나는 약팀을 확실히 공략하는 데 애를 먹는 경우가 꽤 있었다. 한국 입장에서는 피지전이 첫 경기였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골이 필요했다. 다득점이 필요했던 승부에서 충분한 득점을 올린 한국은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심리적 우위 속에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비겨도 8강에 오르는 한국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멕시코를 상대로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안정 위주의 경기를 펼치다 후반 28분 터진 권창훈의 결승골로 조 1위를 확정지었다. 

 

2년 전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은 것도 중요한 소득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당시 국가대표팀은 한·일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남기며 실망을 안겨줬다. 당시 실패 이유로는 황열을 비롯한 예방접종 타이밍을 늦게 잡는 바람에 선수단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고, 베이스캠프 선정 미스, 체력 저하, 상대 분석 미흡과 피지컬 훈련 부족 등이 꼽혔다. 대한축구협회는 2년 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대회 시작 전 베이스캠프를 브라질 최남단인 포즈두이과수가 아닌 이동이 용이한 상파울루로 잡았다.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과 피지컬 훈련을 위해 브라질의 베테랑 코치인 루이스 플라비우를 단기 영입했다. 한국 축구의 학습효과가 2년 전의 실패보다 더 나은 일보 전진의 성과를 만든 것이다.

 

한국 수비수들이 8월13일(현지 시각) 온두라스와 경기에서 엘리스에게 골을 허용한 뒤 허탈해하고 있다.


마지막 고비에서 발목 잡은 골 결정력

 

신태용호는 한국 축구의 미래도 대거 배출했다. 이미 성인 대표팀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권창훈 외에도 황희찬·류승우·정승현 등이 향후 슈틸리케호의 새로운 동력이 될 선수들로 낙점을 받았다. 독일전에서 중요한 선제골을 넣는 등 인상 깊은 활약을 펼친 황희찬은 슈틸리케 감독의 고민인 성인 대표팀의 최전방 공격에 새로운 옵션이 될 수 있음을 리우올림픽에서 증명했다. 177cm로 기존의 석현준·황의조·이정협 같은 체격 좋은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보다는 작다. 그러나 황희찬만이 지닌 뛰어난 신체 밸런스와 드리블, 침투 능력 등은 최근 한국 축구의 강점인 2선 공격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도 황희찬이 잠재력을 넘어 성인 대표팀에서도 활약할 만한 선수라고 판단하고 오는 9월 시작되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대비해 소집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영원한 과제인 골 결정력 해결이 중요하다. 리우올림픽 8강전에서도 온두라스를 상대로 완벽하게 경기를 지배하고도 단 1골을 넣지 못해 패했다. 조별리그에서 12골이나 넣었던 한국은 밀집 수비로 나온 온두라스에 7개의 유효슈팅을 포함, 상대보다 2.5배 많은 16개의 소나기 슛을 날리고도 무득점에 그쳤다. 후반 14분 상대에게 허용한 첫 역습에 실점을 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온두라스는 경기 막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명 ‘침대축구’를 구사했지만 그들의 노골적인 시간 지연 행위보다 더 아쉬웠던 것이 한국의 골 결정력이었다. 4강에서 온두라스를 상대한 브라질이 전반 1분 만에 선제골을 넣으며 밀집 수비를 깬 뒤 경기를 지배하며 6대0 대승을 거둔 것은 한국 축구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황선홍·이동국·박주영 이어 ‘국민역적’ 몰린 손흥민

 

이번 리우올림픽은 과거와 달리 메달 획득에 실패한 선수들을 향해 격려가 이어지고 있다. ‘우생순’으로 시작된 비인기종목에 국민들이 부채의식을 느끼면서 메달이라는 성과보다 과정에 대한 박수가 쏟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한 삐뚤어진 분노와 여론몰이가 공존한다. 배구의 박정아, 탁구의 서효원 등이 도를 넘어선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축구에서는 손흥민이 ‘역적’으로 몰렸다. 아시아 선수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손흥민은 와일드카드로 리우올림픽에 참가했지만 목표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온두라스전 패배를 전하는 뉴스에는 온통 손흥민 관련 댓글이 최상단을 차지했다. ‘패배의 원흉’ ‘군입대를 축하한다’ ‘거품 수준의 기량’이라며 인격 살인 수준의 비난과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이 아닌 정보들도 범람하고 있다. 런던올림픽 당시 대표팀 소집을 거부했다가 군 문제가 임박하자 이번 올림픽에 열의를 보였다는 게 대표적이다. 4년 전 손흥민은 홍명보 감독이 아예 선발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였다.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손흥민 선수가 8월13일(현지 시각) 리우올림픽 축구 8강전 온두라스와 경기에서 패한 직후 경기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패배에 대한 실망감을 한 선수를 희생양 삼는 마녀사냥으로 푸는 모습은 여전하다.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 현재 FC서울의 감독인 황선홍이 대표적인 희생양이었다. 볼리비아전에서 득점에 실패한 황선홍은 대회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그 뒤에는 이동국·박주영 등이 비슷한 일을 당했다. 한·일월드컵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은퇴한 황선홍 감독은 “미국월드컵이 끝나고 밖을 나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두려웠다. 그래도 당시엔 인터넷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정말 견디지 못했을 거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올림픽대표팀의 구성원들은 손흥민이 그라운드 안팎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 신태용 감독은 “대회 내내 자신을 버리고 헌신했다. 그런 모습을 국민들이 알아주고 손흥민을 향한 비난을 멈췄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수비수 정승현은 “어린 선수들 기죽지 않게 흥민이형이 늘 앞장섰다. 이번 대회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다. 대회를 마치고 소속팀 토트넘에 합류하기 위해 곧바로 영국으로 향한 손흥민은 대회 후 연신 “죄송하다. 제 책임이 가장 크다. 팀에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신태용호 8강 진출의 분수령이 된 독일전의 동점골을 개인 전술로 만들어낸 선수는 손흥민이었다. 황선홍 감독은 “공격수의 창의력과 결정력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아쉬움이 있어도 다음을 위해 격려를 해 줄 필요가 있다. 손흥민은 지금도, 앞으로도 한국 축구의 중요한 자원이다”며 마녀사냥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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