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권력 지도 설문조사] “여권엔 현 정권 견제세력 없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8.24 09:22
  • 호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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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 견제세력 공동 1위 유승민…야권에선 문재인·김종인, 1·2위

“대통령 견제할 사람? 박정희 전 대통령이지!”

“네? 무슨 의미이신가요?”

“현재로서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시사저널이 8월17일부터 19일까지 실시한 ‘여권 권력 지도’ 설문조사 항목 가운데 하나인 ‘박근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여야 인물 한 명씩을 꼽는다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한 정치평론가가 응답한 내용 중 일부다. 이 평론가는 현재 여권에서 대통령을 견제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질문에 똑같은 답을 한 사람이 100명 중 35명이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을 꼽은 응답자도 똑같이 35명이었다. 유 의원은 지난해 7월 본지 조사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에 이어 3위를 차지했으나 올해는 공동 1위에 올랐다. 

 

반면 지난해 1위였던 김무성 전 대표는 27표를 얻어 3위로 처졌고, 정진석 원내대표(2표)와 서청원 의원(2표)이 그 뒤를 이었다. 이외 언급된 인물은 모두 1표씩을 얻어 사실상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웠다. 다만 여당의 수장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1표를 얻은 데 그쳤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대표는 현 정부 실세를 묻는 질문에는 36표를 얻어 2위를 차지했지만,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불과 1표만 얻었다. 이는 당·청 관계에 대한 정치부 기자와 전문가들의 시각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다.

 


“이정현, 대통령 견제 가능하다” 고작 ‘한 표’

 

야당 내에서 박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전 대표가 35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25표로 2위,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5표로 3위를 기록했다. “아무도 없다”고 답변한 사람도 14명이나 있었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5표밖에 얻지 못해 현재 정치권에서 그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했다. 

 

이번 조사에서 여권 내 대통령 견제세력으로 ‘아무도 없다’와 ‘유승민 의원’이 공동 1위를 차지한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일단 정치권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청와대의 일방적 독주가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견고해졌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또한 지난해 1위를 차지했던 김무성 전 대표의 순위가 하락했다는 것은 여권 내 권력지형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5년 시사저널 조사에서 정치부 기자 및 전문가들 100명 중 ‘여권에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답했던 이들은 30명이었다. 3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여권 내에도 대통령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고 보는 인물들이 1, 2위를 차지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아무도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정권 후반으로 가고 있음에도 오히려 대통령 견제 세력이 없다고 보는 견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 설문에는 응했지만,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8월9일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령의 견제 세력이 여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분석했다.

 

유승민 의원이 지난해보다 한 계단 뛰어 1위를 차지한 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유 의원은 지난해 4월 국회 원내대표 연설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다 사퇴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견제할 만한 인물 순위에서 2위까지 오른 바 있다. 유 의원은 이후에도 친박계에 의한 새누리당 보복공천의 희생자라는 이미지가 대중에게 각인되며 순위가 상승했다. 설문에 응답한 한 종편 정치부 기자는 “여당 내 야당으로 박 대통령을 건설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한 정외과 교수 또한 “정치 가치와 철학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자리를 안내하는 손짓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석호·조원진 최고위원, 이정현 대표, 박 대통령, 정진석 원내대표, 이장우 최고위원, 김광림 정책위의장


“김종인, 대통령 잘 알기 때문에 견제 가능”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해 1위에서 순위가 두 계단 하락했다. 4·13 총선과 8·9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통해 김 전 대표가 가지고 있는 힘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음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표를 꼽은 인물들은 여전히 그가 당내 비박계의 중심점이란 이유를 들었다. 이번 조사에서 여당 대표인 이정현 대표가  1표를 얻는 데 그쳤다는 것은 향후 당·청 관계가 여전히 수직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야권에선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가 35표로 1위를 차지했고 김종인 더민주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뒤를 이었다. 문 전 대표를 꼽은 사람은 대부분 그가 현재 가장 유력한 야권 대선 주자라는 점을 들었다. 한 일간지 정치부 기자는 “야당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발언에 가장 힘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간지 기자는 “현실적으로 대통령 소통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건 국민들이 지지하는 사람”이라며 “따라서 힘으로 부딪칠 수 있는 문 전 대표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인 대표를 꼽은 응답자 상당수는 “김 대표가 대통령의 생각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견제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한 지상파 정치부 기자는 “박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펴는지 모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한계도 명확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 입장에선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야권 내 견제 세력 순위에서는 3위에 불과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가 견제를 가장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한 정치 평론가는 “박지원 위원장이 지혜롭게 아픈 부분을 잘 찌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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