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한 사고에 체면 구긴 저가항공사 업계 ‘맏형’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8.24 14:52
  • 호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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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기체 결함 등으로 최근 1주일 새 두 차례 결항…고객 불안도 증폭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는 7월26일. 김해공항에서 사이판으로 출발 예정이던 제주항공 7C3462편의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 비행기는 밤 10시5분에 김해공항을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승객들은 이때까지도 비행기에 타지 못했다. 안전점검을 이유로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곧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비행기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11시를 넘겼고, 김해공항의 커퓨(Curfew·운항금지시간)에 걸렸다. 승객들은 어쩔 수 없이 비행기에서 다시 내려야 했다. 출국취소 동의서를 작성하고, 수화물을 찾고, 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어 있었다. 승객 160여 명은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사이판으로 떠나야 했다. 제주항공 측은 “안전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불편을 겪은 승객들에게 5만원씩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승객들의 말은 달랐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한 승객은 “비행기가 지연된 이유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계속 기다려달라는 안내만 나오다 커퓨에 걸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승객은 “하루 숙박비에 조식·중식비 포함하면 이미 보상비용을 훌쩍 넘긴다”며 “어렵게 마련한 휴가의 첫날이 통째로 날아갔다. 여행 취소를 문의했더니 항공비 정도만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2015년 12월23일 김포에서 제주로 오는 제주항공 여객기의 기내 압력을 조절하는 장치(여압장치)가 고장 나 일부 승객이 호흡곤란과 고막 통증 등 증상을 호소하고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 5년간 LCC 중 가장 많은 ‘준사고’ 내

 

안전문제나 기체 이상으로 제주항공의 운항이 지연되거나 결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주항공은 8월2일 새벽 1시쯤 태국 방콕에서 승객 160여 명을 태우고 인천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객기 전자장비 이상으로 출발이 취소됐다. 승객들은 새벽 4시가 돼서야 호텔로 이동했다. 제주항공 측은 오전 8시면 출발할 수 있다고 승객들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부품 수급 등의 문제로 승객들은 인근 호텔에서 24시간 이상 머물러야 했고, 귀국일보다 하루 늦은 3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올 초에는 한 달여 만에 네 건의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기도 했다. 1월12일 필리핀에서 출발하는 제주항공 여객기 유리창에 실금이 발견돼 운항이 취소됐다. 승객들은 인근 호텔에서 꼬박 하루를 기다리다 다음 날 대체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 1월21일과 24일에는 김해발 괌행 여객기가 각각 통신장비 고장과 정비 문제로 결항됐다. 2월1일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승객 183명을 태우고 인천으로 출발하려던 여객기의 조종석 유리창 열선에 이상이 발견돼 출발이 취소됐다.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지난해 12월23일 김포발 제주행 여객기 조종사가 기내 공기 공급장치 스위치를 켜지 않고 이륙했다. 경고음이 울리자 서둘러 스위치를 켰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비행기가 급상승과 급강하를 반복하면서 승객들은 한동안 공포에 떨어야 했다. 

 

업계에서는 LCC(저가항공사) 업계의 맏형 격인 제주항공의 최근 잇따른 결항이나 지연 운항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6081억원의 매출에 51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9%, 영업이익은 74% 정도 증가한 수치다. 당기순이익도 같은 기간 47% 정도 증가한 472억원을 기록했다. 

 

누적탑승객 수도 LCC 중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제주항공은 취항 6년11개월 만인 2012년 5월, 누적탑승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후부터 성장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2014년 7월 20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 1월에는 업계 최초로 30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운영은 업계의 ‘맏형’답지 않았다. 여객기 결함과 후속조치 미숙으로 잇달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될 경우 대형 사고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업계의 우려가 더하다. 한 항공 전문가는 “‘대형 사고가 나기 전에는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있다”며 “제주항공이 최근 급성장하면서 규모에 비해 안전 등 내실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제주항공 “지연·결항, 안전운항 위해 불가피”

 

실제로 제주항공은 지난 5년간 LCC 중에서 에어부산과 함께 가장 많은 ‘준사고(Near-Miss Incidents)’를 냈다. 준사고란 항공기 사고로 발전할 수 있었던 사고를 일컫는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준사고 3건을 냈다. 정비불량과 기체결함 등으로 승객이 불편을 겪은 건수도 제주항공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자료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2013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2년6개월 동안 정비불량 및 기체결함 등으로 159번 운항이 지연되거나 결항했다. LCC 중에서는 이스타항공(183건) 다음으로 높았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부산~사이판 노선 역시 이전에는 없었다. 여름 휴가철에 맞춰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신설 노선”이라며 “운영 첫날 안전문제가 불거졌다. 노선을 급조하면서 안전문제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제주항공 측은 “정비 문제로 지연·결항된 사례는 제주항공만의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항공사에서 지연·결항은 정비에 신경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게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며 “승객들께 불편함을 끼쳐 죄송하지만 안전운항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지연·결항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저가항공사, 외형은 키웠지만, 안전은 “글쎄~”

 

저가항공사를 이용했다가 정비불량이나 기체결함 등으로 운항이 지연된 것은 제주항공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8월7일 인천공항에 착륙하던 티웨이항공 여객기의 꼬리 부분이 활주로와 부딪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승객 176명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일을 ‘준사고’로 분류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8월3일에는 김해공항으로 가려던 에어부산 항공기의 바퀴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다행히 항공기 출발 전에 문제가 발견돼 정비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뒤이어 김해로 향할 예정이던 에어부산 항공기 6편도 순차적으로 지연됐다. 승객들도 정비작업이 진행된 7시간 동안 기다리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이 밖에도 김포공항행 진에어 항공기가 최근 항공 전자장비 정비 문제로 1시간30분 지연 출발했다. 진에어의 경우 6월에도 여객기 운항 중 유압시스템 이상이 발생해 긴급 회항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   

 

저가항공사들이 노선 확장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안전과 운영 시스템 개선에도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최근 들어 저가항공사의 사고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노선 확장에 공을 들이면서 외형은 커졌지만, 안전과 운영 시스템은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이 최근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항공사의 국내 여객 비중은 대한항공(24.24%), 아시아나항공(17.87%), 제주항공(15.75%), 에어부산(12.78%), 진에어(12.01%), 티웨이항공(8.84%), 이스타항공(8.55%) 순이었다. 상위 1위와 2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차지했지만, 전체 비중은 저가항공사가 57.9%로 두 대형 항공사를 앞서고 있다. 

 

국제선의 경우 아직까지 LCC의 비중이 1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저가항공사의 특성상 일본이나 동남아 등 근거리 노선만 운항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객 비중 증가율이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증가율이 5% 미만이지만, 저가항공사는 50%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조만간 국제노선에도 저가항공사의 공습이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안전에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저가항공사의 문제를 성토하는 글들로 도배가 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8월2일 발표한 ‘2014~15년 항공교통서비스 평가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대형 항공사의 경우 종합등급에서 매우 우수(A)나 우수(B)를 받았다. 저가항공사 역시 진에어와 에어부산이 A를, 나머지는 B를 받았다. 하지만 이용자 만족도에서는 제주항공(B)을 제외한 나머지 4곳이 모두 C(보통)를 받았다. 조종사나 정비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이유로 지적된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1만 회 운항당 사고발생건수가 0.17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가항공사는 4배나 많은 0.63건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항공사별 안전도 평가 결과를 공개해 안전 경영이 정착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저가항공사의 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잊을 만하면 또다시 저가항공사의 사고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항공업계 전문가는 “저가항공사들이 항공기 도입과 노선 확장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안전과 운영 시스템 개선에도 더욱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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