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유형의 ‘햄릿’, 취향대로 골라 본다
  • 박소영 공연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4 15:45
  • 호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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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 햄릿 소재로 한 《햄릿-더 플레이》 《함익》 등 볼거리 다양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은 올해, 다양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햄릿》은 여러 차례 변주되고 재해석되며, 텍스트로서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어린 햄릿’이 등장하는 《햄릿-더 플레이》 

 

《햄릿-더 플레이》는 《햄릿》의 기본적인 틀을 그대로 따른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아버지인 선왕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숙부가 결혼하는 상황에 좌절한다. 방황하던 햄릿은 선왕의 망령을 만나고, 숙부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의 복수를 결심한 햄릿은 그때부터 미친 척 연기하기 시작한다.

 

《햄릿-더 플레이》가 원작 《햄릿》과 다른 점이라면 ‘어린 햄릿’과 광대 ‘요릭’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햄릿-더 플레이》는 어린 햄릿의 이야기와 성인 햄릿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어린 햄릿은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면 보여주기 위해 요릭과 함께 연극을 준비한다. ‘왕자가 살해된 선왕의 복수를 한다’는 결말이 썩 내키진 않지만, 햄릿은 아버지와의 재회를 기다리며 연습을 계속한다. 

 

세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아 다양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햄릿-더 플레이》 공연 모습

세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아 다양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햄릿-더 플레이》 공연 모습

 

슬픈 결말 때문에 연극 연습을 할 때마다 고민하는 어린 햄릿의 모습은, 《햄릿》의 비극적인 끝을 암시하는 일종의 장치이기도 하다. 원작에서 햄릿은 유약하고 나약한, 결정장애를 가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햄릿》 작품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햄릿이라는 인간형에는 정을 붙이지 못하는 독자가 많은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햄릿-더 플레이》의 햄릿은 좀 더 인간적이고 동정심을 자아내는 캐릭터다.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마음 졸여야 했던 아이, 왕의 아들로 태어나 투정 한 번 제대로 해 볼 수 없었던 어린 햄릿의 등장은 관객들에게 햄릿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깊이 이해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여주인공 오필리어의 캐릭터도 재해석됐다. 원작 《햄릿》에서 오필리어는 햄릿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햄릿-더 플레이》에서 오필리어는 햄릿을 원망하기보다 이해하며 마지막 순간 그를 감싸 안는다.  

 

《햄릿-더 플레이》는 영화배우 김강우의 프로 연극무대 데뷔작으로도 화제가 됐다. 영화에서 주로 활약해 온 김강우는 기실, 대학 시절 햄릿으로 무대에 선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연극식 발성과 호흡에도 이질감이 없다. 김강우 연기의 백미는 햄릿이 복수를 결심한 뒤 짐짓 미친 척하는 부분이다. 김강우는 광기와 폭주, 유머와 능청스러움을 오가며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햄릿의 어머니인 거투르드 왕비와 오필리어를 동시에 맡아 연기하는 이진희의 호흡도 좋다. 이진희는 두 인물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극의 한 축을 단단히 받친다. 햄릿 역에는 김강우 외에도 김동원이, 오필리어 역에는 이진희 외에도 서태영이 더블 캐스팅돼 호평을 받고 있다.  

 

무대와 소품은 단출하다. 목조 원형무대를 기본으로 그 위에 단이 하나 올려지는데, 이것이 극의 배경이 되는 동시에 극 중 극의 연극무대가 되기도 한다. 어린 햄릿이 연극을 연습할 때 소품으로 사용하는 인형들도 예사로 보아 넘길 수 없다.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각자 인형을 하나씩 집어 드는데, 마치 우리 모두는 작가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커다란 연극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일 뿐이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햄릿-더 플레이》는 영화배우 김강우의 프로 연극무대 데뷔작으로도 화제가 됐다.


창작극 《함익》과 음악극 《햄릿》도 있어 

 

희곡 《햄릿》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나, 햄릿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햄릿-더 플레이》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 같다. 《햄릿-더 플레이》는 원작을 여유 있게 변주하면서도, 주옥같은 대사들은 고스란히 살렸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라는 햄릿의 명대사를, 오필리어가 “죽느냐 사느냐, 그게 그렇게 문제였던가”라고 읊조릴 때는 또 다른 감동이 꿈틀댄다. 삶은 비극을 향해 치닫지만, 그 과정은 희극으로 버무려져 있다는 사실도 묘하게 슬픔을 자극한다. 《햄릿-더 플레이》라는 이름처럼, 그 희비극은 곧 우리 인생이기도 하다. 

 

위기의 현대사회를 코믹하고 예리하게 풀어내는 연극계의 핫가이 김광보도 이번에 햄릿을 무대에 올린다. 원작 《햄릿》을 완전히 새롭게 변주한 창작극 《함익》이다. 작품 속 ‘함익’은 재벌 2세이자 대학교수다. 겉으로는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녀의 내면은 고독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자살한 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됐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밀을 안은 채 끙끙대던 그녀에게 어느 날 ‘복수’의 기회가 찾아오고, 그녀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함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독에 주목한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사는 관객에게 《함익》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느냐 죽느냐, 그건 문제도 아니야.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그것이 문제야.” 9월30일부터 10월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영국 컬트밴드 타이거릴리스와 덴마크 극단 리퍼블리크가 함께 만든 음악극 《햄릿》


10월 LG아트센터에서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햄릿》을 만날 수 있다. 영국 컬트밴드 타이거릴리스와 덴마크 극단 리퍼블리크가 함께 만든 음악극 《햄릿》이다. 음악극 《햄릿》은 언어가 아닌, 음악과 이미지가 중심이 된다. 《햄릿》의 줄거리는 총 21개 장면으로 압축되고, 이미지와 노래가 각 장면을 끌어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햄릿의 어머니와 숙부가 결혼하는 초반부, 축배를 든 어머니와 숙부를 햄릿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때 타이거릴리스의 보컬이 등장해 노래한다. “왕이 죽었다. 왕이여, 오래 사소서!” 

 

이미지 또한 강렬하다. 햄릿 일가는 ‘줄에 매달린 인형’으로 묘사되고, 오필리어가 죽는 장면에서는 무대 위의 강물이 오필리어를 집어삼키는 이미지가 구현된다. 강렬한 이미지와 선율은 음악극 《햄릿》을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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