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의 ‘X자’가 알린 에티오피아의 참상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8.25 16: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티오피아 마라토너가 세리머니를 한 이유

단지 양팔을 가위자로 교차하는 가벼운 몸동작이었다. 하지만 이 동작은 무거운 울림을 이끌어냈다.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선수 페이사 릴레사가 한 ‘X자 세리머니’ 얘기다.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종목 대표로 리우 올림픽에 나간 릴레사다. 그는 2위로 결승점에 들어오면서 양팔로 ‘X자’ 표시를 했다. 릴레사는 이 행동에 대해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을 반대하는 의미"라고 했다. 

 

이 행동의 반향은 컸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정부의 탄압우려 탓이다. 또 그는 힘들여 딴 은메달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경기 중 정치적 메시지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의 사연이 알려지자 세계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를 돕는 ‘크라우드 펀딩’이 이어지고 있다. 릴레사는 미국망명을 고려중이다. 

 

8월22일 열린 리우올림픽 마라톤경기.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는 결승점에 들어오며 'X자 세리머니'를 했다.


릴레사가 알리려 했던 에티오피아의 실상은 어떨까. ‘CNN'과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등은 에티오피아 정부가 사실상 계급제도를 만들고, 국민을 출신에 따라 차별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1974년부터 1991년까지 군사 독재 시절을 거쳐 1995년 민주화를 이뤘다. 하지만 현재 집권 여당이 국회의원 100%를 차지하고 언론 탄압 논란이 일어나면서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약 25년을 집권한 독재 정권인 에티오피아 정권은 티그라이인이 주도한다. 티그라이인은 에티오피아 인구의 6%를 차지할 뿐이다. 정권은 국가에서 가장 많은 구성원인 오로모(30~35%)인과 암하라인(30%)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특히 릴레사가 속한 오로모인의 인권침해 상황은 심각하다. 오로모인의 언어는 금지됐다. 문화도 탄압받는다. 이 때문에 국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오로모인의 말과 문화는 에티오피아 내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오로모인은 정부에게 '투명인간' 같은 존재다.

 

그간 오로모인과 암하라인 등은 ‘비폭력 평화’시위에 나섰지만 정권은 여기에 ‘폭력’으로 대응했다.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실탄을 발포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오로모인 수백 명이 숨졌다. 2014년 국제엠네스티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최소 5000명 이상의 오로모인과 암하라인 등이 체포됐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인권탄압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2015년 11월 정부는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인근의 오로미아 지역을 강제 수용하려고 나섰기 때문이다. 오로미아 지역은 오로모인의 터전이다. 이곳에 살던 오로모인들은 농지를 빼앗긴 채 내쫓길 위기에 놓였다. 이 때문에 반정부 시위는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확산되는 시위에 대해 폭력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된 선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 시위에 대해서는 ‘테러’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오로모인에 대해서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편협한 자’로, 암하라인은 ‘봉건국가를 원하는 맹목적 국수주의자’로 깎아내리고 있다. 게다가 에티오피아의 관영언론들은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중이다. 

 

릴레사가 올림픽에 와서 X자 세리머니를 한 뒤 더듬거리는 영어로 “정부에 반대해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단지 권리, 평화, 민주를 원한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