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 총장의 일방통행식 소통이 키운 ‘이대 사태’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8.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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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욕심냈나, 재단 압력 있었나

8월24일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 학교 측의 제안으로 ‘총장과의 열린 대화 첫 마당: 학생과 함께 하는 소통의 장’이 열렸다. 하지만 홀을 채운 건 최경희 총장과 20여 명의 교직원들뿐이었다. 학생석에 앉은 10여 명 남짓 사람들도 대부분 학내 언론사 관계자들이었다. 

 

정작 이화여대 학생들은 이삼봉홀 바깥에 모여 있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총장과의 대화에 참석하면 안 됩니다. 총장의 일방통행식 대화에 응할 수 없습니다!” ‘총장 사퇴’를 주장하는 피켓을 든 이대 학생회 관계자들은 ‘총장과의 대화’ 장소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텅 빈 대화 장소와 그 바깥을 채운 학생들. 7월28일 교육부의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추진을 둘러싸고 시작된 ‘이대 사태’가 봉착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대 사태’가 발생한 지 29일(8월25일 기준), 사태 해결의 길은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최 총장의 ‘불통스타일’이 일 키웠다 지적

 

지금 이대는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주도의 사업 시행 여부를 놓고 갈등은 시작됐다. 다소 고압적으로 보이는 총장과 학교 측의 대응은 사건을 키웠다. 최 총장은 결국 문제의 시작이었던 미래라이프대학 설치 계획을 백지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과정에서 보여준 소통 방식으로 인해 스스로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학계에서는 이대 사태를 두고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 아니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초기 대응을 잘 했다면 원만히 해결될 일이었다는 얘기다. 이런 말 뒤에는 최 총장의 업무 성향에 대한 일관된 평가가 있다.

 

한 이대 중견 교수는 최 총장을 두고 ‘경주마’라고 표현했다.  “최 총장은 업무 추진에 있어서 효율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며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은 사람으로 과정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고 말했다. 그런 성격이 결국 문제를 크게 만든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최 총장의 이런 성격은 8월3일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완전히 철회하겠다고 발표하던 날에도 드러났다. 당시 그는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이 사회적 문제가 된 게 너무 당황스럽고 죄송합니다. 학교 발전 과정에서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라며 철회 방침을 밝혔다. 

 

이대의 한 원로 교수는 “최 총장은 학교 발전을 위해 자신의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통의 총장들이라면 이렇게 큰 사업을 시행할 때 학내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포섭하고 미리 작업을 좀 해 둘 텐데 최 총장은 그런 것 없이 그냥 밀고 나가는 불도저 같은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성격이 총장으로 선택되는 데도 일조했다는 게 이 원로 교수의 설명이었다. 다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구성원과의 협의 과정을 생략한 채 밀고 나가는 ‘불통 방식’이 문제를 키웠다는 데는 동감했다.

 

또 다른 교수는 최 총장을 두고 “갈등이 생겼을 때 반대편을 설득해 자기편으로 만들지 않는다. 다소 ‘뻣뻣하게’ 매뉴얼대로 일을 처리하는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이다”고 평가했다. 

어쨌든 최 총장의 업무방식은 누군가에게는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 사건만을 놓고 볼 때 이대 구성원들에게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느낌을 줬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 과정에서 졸업생을 포함한 이대인의 ‘자부심’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


“최 총장, 실적 압박 분명 느꼈을 것”

 

최 총장이 프로젝트 사업 수행 과정에서 지나치게 서두른 감이 없지 않았다. ‘최 총장이 뭔가 재정 운용 측면에서 압박을 받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최 총장은 이전 총장들에 비해 젊은 나이에 총장이 됐다. 그러다 보니 총장 취임 첫해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고 다소 무리하게 사업을 끌고 간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대학 총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발전기금을 확보하는 일이다. 평소 최 총장은 ‘발전기금’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한 인사는 “최 총장의 모든 학내 인사말은 ‘발전기금’이란 단어로 시작한다”며 “그가 재원을 확보하는데 압박감을 느꼈고 대규모 정부 지원 사업에 대해 욕심을 내면서 무리하게 속도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 사립대 원로 교수는 “어느 대학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대처럼 재단 기금으로 주요 재원을 마련하는 학교의 총장은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 총장들은 정부 혹은 기업이 주도하는 대형 사업을 ‘따오는 데’ 학교의 사활을 걸기도 한다. 이대교수협의회 공동회장이기도 한 김혜숙 교수(철학과)는 “교수들 사이에서 ‘연구프로젝트 하느라 연구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며 “대학 본연의 목표에 충실한 발전을 꾀하려면 그런 종류의 사업보다는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이 더 필요한데 현실은 다르다”고 한탄했다. 

 

재원 마련 능력은 총장의 실적과 직결되지만, 총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학교를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총장이 하려는 사업을 재단이 지원해 주지 못하겠다고 할 경우 총장은 스스로 재원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재단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며 ‘재단의 사람’인 총장으로서는 이를 어쩌지 못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 이대 중견 교수는 “우리 총장은 ‘재단이 만든 사람’이란 말이 있다”며 “단과대별로 임의로 뽑힌 교수들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에서 총장을 선출하는 간선제이기 때문에 재단 측에서 선거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시각을 두고 지나치게 ‘음모론적’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김은실 이대 교수(여성학)는 “이번 이대 사태를 키운 총장의 행보는 재단 압력과는 무관해 보인다”며 “그보다는 으레 이런 식으로 촉박하고 성급하게 진행돼온 정부 프로젝트의 성격과 상호 소통에 원활하지 못한 최 총장의 스타일이 맞아떨어지면서 문제가 커진 측면이 더 크다”고 말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플랜이 필요”

 

지금 이대 본관 앞에는 두 개의 천막이 있다. 첫 번째 천막은 7월28일 이후 총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학생들이 설치한 농성 장소다. 두 번째 천막은 8월23일 “학생과 면대면 대화를 하겠다”며 총장이 친 것이다. 불과 5m 남짓 거리에 설치된 두 개의 천막은 ‘단절’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다.

 

‘총장 사퇴 없이 문제 해결은 없다’는 학생 측과 ‘사퇴란 없다’는 학교 측이 평행선을 달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학내 피로감은 점점 쌓이고 있다. 이대 대학원생인 이아무개씨는 “출구전략이 필요한 시기인데 지금으로선 막연해 보인다”며 “개강을 앞두고 전원 불참 등 또 한 번의 단체행동을 하자는 얘기도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 총장은 계속 한 박자 늦게 학생들의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이대 사태가 발발한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 지금 시점에서 최 총장이 들고나와야 할 것은 ‘대화하자’는 카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플랜이다.”(김혜숙 교수협의회 공동회장)

최 총장이 ‘총장과의 대화’를 마련했던 9월24일 오전, 이대 교수협의회는 ‘미래라이프대학 사태 관련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2차 성명서’를 발표했다. 명예교수 2인을 포함해 130명이 기명으로, 61명이 무기명으로 이름을 올린 이 성명서에서 교수협의회는 총장을 중심으로 한 학교 본부의 무능함과 무책임을 규탄하고 총장 사퇴와 이사회 지배구조의 개선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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