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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이영미의 생생토크] 기보배, “IOC 선수위원 당선 승민이 오빠 보며 또 다른 목표 갖게 됐다”

‘리우올림픽 싹쓸이 금메달’ 주역 기보배 여자양궁 국가대표 “은퇴 후 진로 다양하게 열어둬”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9(Mon) 17:00:41 | 14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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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난 후 미디어들은 메달리스트들 섭외 전쟁에 들어간다. 그중 리우올림픽 전 종목 석권의 위업을 달성한 양궁 대표팀 선수들은 섭외 대상 1순위이다. 그들은 귀국 후 방송사는 물론 다양한 매체에 얼굴을 내보였다. 기보배(28·광주시청)도 마찬가지였다.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위해 뒤늦은 섭외를 하며 ‘설마 되겠어?’란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기보배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당연히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빡빡한 스케줄을 비집고 인터뷰 시간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성격 좋기로 유명한 기보배의 진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8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로 올림픽 대표팀 선수단을 초청해 스테이크를 대접했다. 기보배는 청와대 오찬을 마치고 태릉선수촌 인근에서 기자를 만났다. ‘오찬 메뉴에서 스테이크 외에 송로버섯과 샥스핀은 안 나왔느냐’고 묻자 웃음을 터트린다. 기보배의 밝은 기운에 에너지를 받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8월25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한 카페에서 리우올림픽 여자양궁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기보배 선수를 만났다.


이제 2016 리우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시원섭섭한 편인가.

 

섭섭하기보단 메달을 두 개(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나 땄기 때문에 보람이 훨씬 큰 편이다. 만약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많이 허탈했을 것이다.

 

 

유명한 얘기다. 양궁 대표팀은 국제대회 경쟁보다 국내 선발전이 훨씬 더 어렵고 치열하다고. 

 

정말 대표팀 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은 넘쳐나고 선수 선발 인원은 한정돼 있고. 그렇다 보니 대회 때마다 대표팀 선수들이 자주 바뀐다. 그래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장점도 많다. 어느 국제대회를 가도 한국 선수들과 경쟁하기 때문에 미리 국내에서 실력을 겨뤄보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양궁을 했다고 알고 있다. 왜 양궁이었나.

 

원래는 바이올린을 배우려 했다. 엄마가 바이올린과 학교 양궁부 가입을 선택하라고 해서 양궁을 선택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 당시엔 체력이 아주 약했다. 그런 약한 체력으로 꾸역꾸역 버텨왔던 게 신기할 정도이다.

 

 

기보배란 이름이 알려진 건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부터였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선발전에선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한테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아직 올림픽에 나갈 만한 실력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올림픽 무대 자체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래서 대표팀에 탈락했다고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광저우아시안게임도 마찬가지다. 내 의지보다는 주위의 의지로 출전했고, 대표팀에 선발돼서 생애 첫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당시 양궁 대표팀의 차세대 에이스는 물론 ‘아시안게임 5대 얼짱’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진짜 쑥스럽다. 그런 오글거리는 표현은. 선수들이 얼짱 운운하며 얼마나 놀렸는지 모른다. ‘선크림 빨’이라고.

 

 

2006년 광주여대에 입학했다. 그것도 일반 체육학과가 아닌 초등특수학과를 전공했다.

 

난 내 미래를 보고 학교를 결정했다. 당시엔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는 대학의 과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게 사회복지 부문이었고, 광주여대에 초등특수학과가 있다는 걸 알았다. 대학에서 공부와 훈련을 병행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공부도 양궁에도 ‘올인’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안타까움만 안고 졸업한 것 같더라. 그래서 다시 대학원에 도전했고, 현재 조선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교생 실습도 해 봤나. 직접 학생들을 대하면서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절감했을 것 같은데.

 

 처절하게 절감했다(웃음). 교생 실습을 나가 보니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았다. 실습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내가 과연 은퇴 후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몰려왔다. 그래서 은퇴 후 진로를 다양하게 열어뒀다. 장애인올림픽 지도자로 나갈 수도 있고, 모교인 광주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기도 하다. 또….

 

8월7일(현지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모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여자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장혜진, 최미선, 기보배(왼쪽부터)가 환하게 웃고 있다.

 

 

 

또 어떤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건가.

 

이번에 (유)승민이 오빠가 IOC 선수위원이 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사람들은 후보로 나왔던 진종오·장미란 선배가 더 유력한 선수위원 후보라고 생각했지만 승민이 오빠는 선수위원으로 나가려고 오래전부터 영어를 배우고 외국 선수들과 교제 범위를 넓히며 선거를 준비했다. 이번 올림픽 기간에도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선수촌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펼쳤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결국 그런 노력과 열정이 투표 결과로 나타났고,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게 아닌가. 그분의 행보를 보며 나도 또 다른 목표를 갖게 됐다.

 

 

다시 양궁 얘기로 돌아가자.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처음 그런 상황을 맞이했을 텐데 당시 기분이 어땠나.

 

김연아 선수를 보며 항상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난 언제쯤 저 선수처럼 사람들이 날 알아봐 줄까.’ 그게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물론 김연아 선수의 인기에는 비할 바가 안 되지만 많은 분들이 팬이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이래서 좋은 거구나’ 싶더라.

 

 

2012 런던올림픽에서 방점을 찍었다. 개인전·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휩쓸어버렸으니 말이다.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기보배는 왕의 심장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만큼 독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 아닌가. 

 

사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다른 사람들한테 창피는 당하지 말자’란 마음으로 훈련했다. 그러다 보니 남들 쉴 때 훈련을 더 하고, 남들 휴가 나갈 때 선수촌에서 활과 씨름을 했다. 그게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그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더라.

 

 

런던올림픽에서 더 주목을 받았던 건 양궁 선수와의 열애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헤어졌지만 말이다. 

 

그때의 교훈 한 가지! 이성교제는 절대 공개돼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서로 잘되면 문제없지만 사귀다 헤어질 경우 그 후폭풍이 엄청나다. 사생활이 노출되면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는 꺼리게 됐다. 공식행사도 피했다. 나도 모르는 소문들이 선수촌 안팎을 넘나들었다.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0위로 탈락했던 일도 양궁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이었다. 

 

그때는 선발전을 준비하며 동계훈련 할 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올해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안 섰다. 기술·심리적인 부분에 대해 확신을 갖고 활을 쏴야 하는데 활을 쏘기도 전부터 내 마음이 흔들렸다. 또한 선수촌 생활이 너무 지겨웠다. 갇혀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고 싶었다. 떨어질 걸 알면서도 해결하지 못한 채 탈락하면서 많은 한탄과 반성이 교차했다. 그때부터 오기가 생겼다. 양궁을 시작한 이래 처음 그런 느낌을 가진 것 같다. 국제대회에 나가지 못한다면 국내대회를 모두 휩쓸어버리자는 생각도 했다. 기보배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때 예선전 720점 만점에 686점을 쏴 박성현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기록한 682점을 뛰어넘는 세계신기록을 달성한 건가. 

 

 

그게 신기록인지도 몰랐다(웃음). 나중에 알았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인천아시안게임 때는 양궁장이 아닌 중계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해설위원으로 나섰다. 그 상황과 입장이 복잡미묘했을 것 같다.

 

처음 방송국으로부터 해설 제의가 들어왔을 때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지만 진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 내가 하나를 놓치니까 다른 것으로 채워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하면서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다음엔 그 자리에 다시 서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기더라. 당시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으로 아시안게임을 함께했다는 건 양궁 인생에 중요한 스토리로 남게 될 것이다. 잠시 흔들렸던 내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리우올림픽 개인전 4강전에서 절친인 장혜진(29·LH)과 맞붙었다. 결국 장혜진은 결승에 올랐고, 기보배 선수는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랑 맞붙는 게 외국 선수랑 대결할 때와 어떤 차이가 있나.

 

아주 많다. 집중이 잘 안 된다. 올림픽을 앞두고 심리치료를 받으며 중점적으로 상담했던 게 한국 선수들과의 맞대결이었다.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의사는 ‘네 것만 잘하면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그런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올림픽에 나갔는데 4강에서 (장)혜진이와 맞붙게 된 것이다.

 

 

아쉽게 패했다. 

 

많이 아쉬웠다. 차라리 16강이나 그 이전에 탈락했다면 내 실력이 거기까지밖에 안 되는 거라고 위안 삼을 텐데 결승 진출을 눈앞에 두고 떨어져 아쉬움이 컸다.
 

 

승부에서 벗어났을 땐 누구보다 장혜진 선수를 응원했다.

 

당연하다. 혜진이도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이었고,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런 속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로선 혜진이가 금메달을 따길 진심으로 바랐다.

 

 

개인전이 끝난 후 따로 축하를 해 줬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선 혜진이 방에 모여 축하를 했다. 씻지도, 옷도 벗지 않고 휴대폰으로 기사 검색하면서 얼굴이 예쁘게 나왔느니, 못생기게 나왔느니 하며 새벽까지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올림픽 동안 양궁 외적인 문제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기보배 선수 아버지가 6년 전 인터뷰에서 “보배가 개고기를 먹는 날이면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중·고등학교 때 개고기를 먹은 날은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한 여자 연예인의 어머니가 SNS를 통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 당시 인터뷰에선 “신경 쓰지 않겠다”고 반응하긴 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 사태를 풀어나갔는지 궁금하다.

 

당시 단체전 경기가 끝나자마자 기사가 올라왔고, 다음 날 개인전 64강과 32강전을 앞두고 있었다. 나도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읽었고, 다음 날 아침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경기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런 일 때문에 4년 동안 고생하며 준비했던 걸 망쳐선 안 되겠다’라고. 이미 6년 전 인터뷰였고,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고, 난 지금 브라질에 있는 것이고. 브라질에 놀러 온 것 아니고, 국가를 대표해 나온 선수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질까봐 마음고생 좀 했다.

 

 

이후 그 여자 연예인 측에서 직접 연락해 왔나.

 

귀국 후 그분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고. 그냥 답장 안 했다. 이미 지난 일이고, 굳이 얼굴 보며 나눌 얘기도 아닌 것 같아서 대응하지 않았다.

 

 

 

 

기보배의 양궁 인생을 100으로 봤을 때 지금 어디까지 와 있다고 생각하나.

 

60까지 온 것 같다. 50은 분명 넘었다(웃음). 두 차례의 올림픽을 경험하면서 많은 선물을 받았다. 남은 40의 시간 동안에는 후배들과의 경쟁을 즐기며 가고 싶다. 100에 도달할 즈음엔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살고 있을 듯하다.

 

 

돌발 질문 하나. 인터뷰 자료를 수집하다가 ‘기보배가 이명박 전 대통령, 가수 채연과 닮았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누구랑 더 닮았다고 생각하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직접 뵌 적이 있었는데 다른 부위보다 코가 많이 비슷한 것 같더라(웃음). 채연씨는 직접 보지 못해서….

 

 

기보배도 인터넷 댓글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지만 운동 외적인, 개고기 논란 같은, 스캔들에 휘말리면 독한 마인드를 자랑하는 그도 흔들린다. 그런 그가 인터뷰를 마친 후 이런 질문을 해 왔다. 
 

“기자님, 네이버 연관 검색어 지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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