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눈독 들이는 ‘초대 통합대한체육회장’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8.29 16:51
  • 호수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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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중·정몽규·최태원 등 출마 불가…정치권 인사들 출마 조짐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출범한 통합대한체육회의 첫 회장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체육계 전체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통합대한체육회는 기존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하나로 통합한 단체로, 지난 4월8일 출범식을 가졌다. 첫 통합회장 선거는 오는 10월5일 치러질 예정이다.

 

그러나 출범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두 단체 간 내분이 계속되고 있다. 각각 자기 단체 출신을 통합회장으로 만들려는 물밑 움직임이 치열하다. 뿐만 아니라 통합대한체육회장을 선출하기 위해선 산하 종목별 단체들이 먼저 통합을 해야 하는데, 이미 그 과정에서부터 내분이 불거져 소송으로 비화한 단체가 한둘이 아니다. 체육계 일각에선 “각 단체가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지원은 제쳐두고 선거 준비에만 몰두하다 성적표가 좋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이번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뿔난’ 대한체육회, ‘느긋한’ 국민생활체육회

 

통합 이후 대한체육회는 김정행·강영중 공동회장 체제로 운영 중이다. 대한유도회장 출신인 김정행 회장은 통합 전 대한체육회장이었고, 대교그룹 오너인 강영중 회장은 국민생활체육회장이었다. 이 중 김 회장은 일찌감치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반면 강 회장은 이렇다 할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서 최대 변수로 거론돼 왔다. 이는 통합대한체육회 정관이 현 회장이 출마할 경우 일방적으로 유리하게끔 돼 있어서다. 10월5일 예정인 선거는 각 체육회에서 추천한 1만5000명 중 1500명의 선거인단을 무작위로 뽑은 후 이들이 회장을 선출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현 회장이 출마할 경우 다른 후보들에겐 선거운동 기간까지 공개되지 않는 선거인 명부를 사실상 합법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대한체육회 통합 과정에서 청와대와 문체부가 사실상 국민생활체육회에 유리한 방향으로 통합을 진행하면서 강 회장을 현 정부에서 미는 것 아니냐는 말도 체육계 안팎에서 파다했다. 

 

8월26일 열린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강영중 회장이 차기 회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이사회 결과에 따라 또 다른 유력후보였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사진은 7월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4차 이사회에 참석한 두 사람이 벽을 보고 대화하는 모습


실제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 과정에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반발한 것은 대한체육회 측이었다. 국민생활체육회 측은 불리할 것이 없어서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면 되는 모양새였다. 두 협회가 통합하면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단체 주요 보직을 누가 맡느냐의 문제였다. 특히 연간 4000억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체육회의 핵심보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무총장을 누가 맡느냐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그런데 문체부 측에서 사무총장은 국민생활체육회 인사가 맡고 사무차장과 선수촌장은 대한체육회 몫으로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자리를 놓친 대한체육회 고위 인사들이 창립총회 불참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문체부는 지난해 스포츠계 개혁 작업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체육단체 임원의 ‘중임’을 금지했다. 이 규정으로 현재 대한체육회 임원 대부분이 통합체육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된 것이 반발을 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반면 국민생활체육회의 경우 나쁠 것이 없는 통합이었다. 결국 첫 통합회장 선거 역시 국민생활체육회 출신이 당선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런데 8월26일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이사회를 통해 강 회장이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강 회장은 이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그간의 논란을 의식한 듯 “처음부터 뜻이 없었다”며 “새 통합체육회장이 뽑힐 때까지가 나의 역할”이라고 했다. 체육회 회장을 포함한 임원, 회원종목단체 및 시도체육회 회장 및 임원이 후보자로 등록하려면 선거운영위원회 구성 이전에 사퇴해야 한다. 이날 이사회에서 선거운영위원회가 구성됐기 때문에 통합체육회장 선거에 나오려는 현직 임원은 이미 사퇴했어야 후보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강 회장은 이날 이사회를 주재하며 회장직에서 사퇴하지 않았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대한체육회 건물


정치권 외압 논란 끊이지 않아

 

강 회장 불출마 선언 전까지 체육회 주변에선 정권 외압 논란 등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불출마가 반드시 공정한 선거를 담보하는 상황은 아니다. 선거구도가 변했을 뿐 여전히 외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강 회장과 함께 기존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인물이 모두 출마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후보군은 오리무중이 됐다. 이날 이사회를 통해 선거운영위원회가 구성됐기 때문에 체육회 회장을 포함한 임원, 회원종목단체 및 시도체육회 회장 또는 임원 등 현직 인사들은 통합체육회장 선거에 나올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자천타천으로 통합체육회장 후보로 거론됐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최태원 대한핸드볼협회장, 방열 대한농구협회장 등은 선거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이들은 자금력을 갖췄거나 경기인 출신 회장으로 통합체육회장에 적임자라는 평이 나돌던 인사들이다. 그런데 이 자리를 정치인 출신들이 치고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체육계 관계자는 “일부 전직 국회의원들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피선거권’을 달라며 진정을 제기하는 일도 벌어지는 등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권의 간섭이 오히려 더욱 심해진 모양새”라며 “통합 취지와는 다르게 정부가 나서서 체육계 갈등만 부추긴 모양새가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는 엘리트 체육을 담당하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로 이원화된 스포츠 단체를 합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개발 독재 시대의 국위선양형 엘리트 스포츠에서, 평범한 국민도 즐기며 건강도 챙기는 복지 스포츠로의 전환이 그 목적이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일본이 거둔 성적을 보면 이러한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리우올림픽에서 종합 6위의 성적을 거둔 일본은 육상과 수영 등 기초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남자 400m 계주에서 미국을 제치고 자메이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 올림픽 최고의 이변이란 평가를 받았다. 일본은 1980년대 이미 통합체육회를 출범시켜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의 천국으로 자리 잡았다. 앞서 언급한 체육회 관계자는 “일본처럼 가기 위해선 정치논리나 조직논리가 철저하게 배제된 채 체육회만을 위한 회장이 선출돼야 한다”며 “이런 관행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회장으로 선출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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