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카드 없어도 지역화폐만 있으면 끝!
  • 이성진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1 09:07
  • 호수 14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전의 ‘두루’·은평의 ‘문’ 등 지역화폐 유통 실태…지역공동체 활성화 도움 불구, 아직 홍보 부족

#1. 대전에 거주하는 김인숙씨(가명·44)는 10년째 ‘두루’를 이용 중이다. 두루는 대전 지역공동체인 ‘한밭레츠’에서 운영하는 지역화폐다. 한밭레츠에 회원 가입한 김씨는 또 다른 회원들에게 헌옷과 학용품 등을 팔아 두루를 벌었다. 이렇게 번 두루는 한밭레츠 가맹점에서 식료품 구매 등에 주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다리미가 고장 나 이웃으로부터 중고 다리미를 1만 두루에 구매하기도 했다. 김씨는 얼마 전 아이가 감기에 걸려 병원에 방문했을 때도 지역화폐로 결제했다. 대전 민들레의료생협 산하에 있는 치과와 내과, 한의원에서도 두루를 취급해서다.

 

#2. 서울 은평구 주민 신연아씨(가명·34)는 ‘은평e품앗이’ 지역화폐 ‘문’을 사용한 뒤로 육아 고민을 덜어냈다. 이전엔 친정과 시댁이 지방이어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씨는 최근 틈틈이 쿠킹클래스를 열어 벌어들인 문을 이웃에게 제공하고 아이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더욱 반길 만한 점은 가까운 이웃이 여럿 생겼다는 점이다. 쿠킹클래스나 문이 통용되는 지역장터에 나온 지역 주민들과 인연을 쌓았다. 최근 동네에 나가면 인사를 나누게 되는 이웃들이 부쩍 늘었다. 

 


현금 지출 줄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

 

‘두루’와 ‘문’은 시장화폐를 대신해 소규모 공동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다. 각종 생활용품은 물론이고 육아·집수리·외국어 교육·쿠션 만들기 교육 등 용역도 거래된다. 지역화폐 운영자들이 정기적으로 오픈하는 지역장터나 가맹점,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 구매자는 거래금액만큼 지역화폐 포인트가 마이너스가 되고, 판매한 이는 플러스가 되는 식이다. 

 

지역화폐들은 ‘지역 내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힘을 모아 극복하고, 서로 나누고 돕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보자’라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앞선 사례에서 소개한 ‘한밭레츠’는 지역화폐의 1세대 격이다. 2000년 IMF 사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지역민들의 힘을 모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됐다. 서울 은평구의 ‘은평e품앗이’는 한밭레츠를 롤모델 삼아 출범했다. 도심 속 사라져가는 사람 사이의 정과 신뢰를 회복하자는 것이 은평e품앗이의 슬로건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운영되는 ‘마포e품앗이’의 설립 목적도 비슷하다. 이웃 간 소통을 활발히 하고 공동체의 변화를 이뤄보자는 이유에서였다. 단초는 지역 내 한 아파트단지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 이는 단절된 이웃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과천품앗이’와 ‘서초품앗이’ ‘성남누리’ 등 다양한 지역화폐가 전국 각지에서 운영 중이다. 

 

지역화폐의 장점은 다양하다. 일단 현금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또 당장 화폐가 없더라도 소비가 가능하다. 나중에라도 타인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면 된다. 여기에 지역화폐가 지역 외로 빠져나갈 수 없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메리트다. 무엇보다 이웃 간 단절된 소통을 활발하게 만든다. 서울 마포와 관악, 그리고 대전에선 주기적으로 소규모 만찬과 모임, 장터를 열어 주민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한밭레츠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이 단순히 재화와 용역을 거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장터나 주민 모임 등에 모여 소통이 시작된다”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웃 간 연대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믿을 수 있는 생산자로부터 재화를 구매해 안전한 먹거리, 물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이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역화폐는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대전 한밭레츠의 경우 회원으로 등록된 사용자는 650여 가구에 불과하다. 여기에 활발히 참여하는 이들이 전체의 2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사용자 수는 더욱 적은 셈이다. 지난해 현금과 함께 거래된 두루의 총 거래금액은 3억4000만원 정도다. 대전 전체 경제규모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그래도 한밭레츠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다른 지역화폐는 회원이 300~500여 가구 수준이다. 

 

은평구에서 사용하는 ‘품앗이 통장’과 지역화폐 ‘문’


“지역화폐가 뭔지 모르는 주민 아직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처럼 지역화폐가 활성화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홍보 부족을 꼽는다. 따라서 지역화폐 운영집행부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의 지역화폐 ‘모꼬지’ 관계자는 “아직까지도 지역화폐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주민들이 대다수”라며 “주변에 지역화폐에 대해 알리고, 장점과 시스템을 교육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용이 불편하다는 점도 지역화폐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거래를 하게 되면 사용 현황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직접 올리거나 지역화폐 운영 사무국을 직접 방문해 수기로 작성해야 한다. 현금이나 카드결제 등 기존의 화폐보다 불편한 것이다. 지역화폐 사무국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한 지역화폐 운영자는 “최근에는 포인트를 카드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거래를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계획하고 있는 등 지역화폐 사용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러하지만, 지자체나 학계에선 여전히 지역화폐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2011년부터 서울시에서 지역화폐를 운영하는 곳에 자금을 지원해 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해는 도봉구와 노원구를 비롯해 모두 6개 지역구가 수혜 대상이 됐다. 지역화폐 운영진은 해당 자금을 각종 사업비로 사용하게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역화폐가 붕괴되어 가는 공동체를 되살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판단해 이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천경희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역화폐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천 교수는 “과거 삶의 희망이었고 힘이 돼 온 공동체는 현재 거의 붕괴되다시피 한 상태”라며 “지역화폐가 공동체를 부활시킬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역화폐가 궤도에 오르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천 교수는 “지역화폐에는 자본축적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하다”며 “때문에 지역 주민들 사이의 거래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