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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회고록] 대통령의 ‘먹튀’와 ‘의원 빼가기’로 극에 달한 새천년 배신감

어차피 함께 못 갈 처지…박관용 의장 “그래도 노골적 ‘우리당’ 지원 피했어야”

박관용│前 국회의장 정리=김현일 대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3(Sat) 13:00:40 | 14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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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정(性情)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JP(김종필 전 총리)의 노무현 제16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인간미가 있다는 것이다. JP는 그가 자신을 포함한 3김 정치와 지역주의를 비판했지만 그 때문에 불편하게 느꼈다거나 전적인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고 회고록에서 술회한 바 있다. 오히려 파격과 열정, 대중을 끄는 화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면서 국민들이 그를 선택한 것은 “오랫동안 정형화된 지도자상, 관행화된 정치질서를 봐왔던 국민들이 ‘이런 사람도 대통령을 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판단을 했고 ‘기성을 거부하는 좌파 성향 사람들이 집권을 하면 어떻게 하나 보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정치 고수(高手)의 원려(遠慮)가 묻어나는 진단이다. 하지만 보수층 가운데 이런 긍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 얼마일지는 의문이다. 아예 언행이 나라의 품격(國格)을 떨어뜨렸다고 매도하는 이도 적잖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호오(好惡)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 대목에 관한 한 역대 어느 대통령도 비교가 안 된다. 대통령 후보 시절 후보교체론에 휘말리는 수모를 겪은 것을 비롯, 치적에 대한 혹독한 폄하도 상황이라는 외부 요인 못지않게 본인의 강한 개성이 한몫했음은 부인키 어렵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대선 운동 당시 슬로건이다. TV광고 문안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에도 ‘국민’이 중심에 위치한다. 이런 그의 외침은 특히 비판적 지식인과 소외층에 강하게 어필했다. 라이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나라다운 나라’를 압도할 만했다. 상고 출신의 인권변호사가 엘리트 중 엘리트 후보를 57만 표 차로 이긴 게 그 방증일 터다. 기성 질서를 거부하며 거침없이 다가서는 그의 저돌(猪突)에 다수 젊은이들이 환호했다. ‘주변’ 서민들에겐 변화와 개혁, 기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에 비례해 보수층의 반감은 증폭됐다.

 

2003년 4월2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정연설하는 노무현 대통령. 다수의 여당 의원까지 ‘반노’에 가담한 최악의 여소야대 상황 극복을 위해 추진한 신당 창당은 ‘옛 친정’ 새천년민주당의 무한 반발로 이어졌다.


새천년 구주류 발목잡기도 신당 가속화시켜

 

이런 대통령이었기에 출발부터 순탄치 못했다. 임기를 막 개시한 대통령의 서슬은 시퍼렇게 마련이지만 분노로 뭉친 보수층의 반발에 흐트러졌다. 게다가 여소야대 국회는 넘기 어려운 절벽이었다. 한나라당이 16대 총선 때 얻은 133석에서 세를 불려 149석의 절대 다수당으로 군림하고, 새천년민주당(새천년)과 결별한 자민련까지 버티는 국회에서 새천년은 말뿐인 여당이었다. 아니 야당보다 대통령을 싫어하는 여당 내 거대 세력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새천년 터줏대감들로서 대선 당시 후보 사퇴를 주장했던 최대 계파 중도개혁포럼 멤버 가운데는 대통령을 사갈시(蛇蝎視)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 박상천 대표최고위원(전 법무장관)이나 정균환 사무총장·원내총무 이름만 들어도 질색했다. 같은 당 소속 대통령을 호칭할 때 ‘성(姓)을 빼고’ 이름 두 글자만 부르거나, 성명 뒤에 ‘씨’자 하나 붙이지 않는 의원들도 허다했다.” K 의원의 전언이다.

 

“노 대통령 청와대 입성 전 나는 그를 똑똑하고 용기 있는 신인 정치인으로 봤다. 돌출행동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열정이 넘친 결과쯤으로 이해했다. 그의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2003년) 1월3일 여의도 63빌딩에서 만났다. 그는 국회와의 관계, 남북 관계, 청와대 생활 등을 물었고 나는 경험을 살려 성심껏 답했다. 열심히 받아 적은 그는 ‘오늘 해 주신 말씀은 정말 귀한 것’이라며 내가 가진 다른 메모 같은 게 있으면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직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내가 ‘지금은 진지하게 배우려 하지만 1년 후에는 제왕이 돼 있을 것’이라며 부질없다는 식으로 말하자 그는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국정 시스템이 대통령을 그렇게 만듭니다. 순수하게 봉사하려는 사람도 제왕으로 만드는 게 이 나라 시스템’이라고 하자 ‘저는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나는 ‘혀를 깨무는 각오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며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내가 우려한 예상은 적중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노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부여된 막강한 권한에다 주위에서 떠받드니 ‘취(醉)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박 전 의장은 임기 초반 노 대통령이 국회에 나와(4월) 이라크 파병안 찬성 호소 국정연설을 하는 등 성실하게 임했고 자신도 의장으로서 유감없이 할 일을 했다고 회고한다. 여권 핵심들이 반발하는 파병안을 ‘전략적 선택’ 명분으로 추진한 노 대통령 자세는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국회가 북핵과 관련해 대북정책 권고안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도 전례 없는 일로서 정부와 국회 간 협조체제는 활성화됐었다는 것.

 

그러나 대통령이 의욕을 갖고 추진한 각종 개혁은 거센 저항에 부딪혀 성과는 없이 갈등만 부채질했다. 이름자를 빗대 대통령을 ‘nom’으로 비하하는 등 도전은 더욱 거칠어졌다. 핵심 측근들 비리 의혹이 잇달아 제기되고 노골적인 비판이 쏟아지던 5월 하순 “이러다가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생긴다”고 토로할 만큼 상황은 악화됐다. 개혁파로 불리는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새천년 소속 의원 37명이 탈당, (통합)신당 창당에 나선 가운데 노 대통령도 9월29일 탈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당이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대통령의 탈당은 중차대한 사태지만 놀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올 게 왔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여당이 대통령을 뒷받침하기보다는 매질에 앞장서는 등으로 이미 예견됐기 때문이었다. 감사원장 인준안이 부결되고 행자부 장관 불신임안 가결 등 참여정부는 만신창이가 된 ‘참패정부’였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탈당 결정이 경제 민생문제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친노 그룹은 수도권을 근거로 한 세력과 영남 출신,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으로 불리는 호남 신주류가 주축이다. 이들은 전임 김대중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로 인해 당의 이미지가 얼룩졌으므로 쇄신은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반면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구주류는 호남을 비토하려는 음모라며 반발했다. 정대철 대표가 사태를 추스르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헛수고였다. 권노갑·박상천 의원 등이 ‘이념과 색깔이 다르므로 함께 갈 수 없다’고 내쳤기 때문이다. 

 

아무튼 2002년 대선전 당시 노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조순형·추미애 의원마저 DJ 정부의 대북 송금 특검에서 ‘이상’이 감지되자 잔류를 선언하면서 탈당파의 기세는 꺾였다. 잔류파가 70여 명으로 압도적이 됐다. 탈당파는 40명에 불과했다. 대선 당시 반노였던 김명섭·설송웅·송석찬 등이 탈당해 합류하는 등 뭐가 뭔지도 모를 혼돈의 연속이었다. 결국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독수리 5형제(김부겸·김영춘·이부영·이우재·안영근. 거의가 ‘꼬마민주당’ 출신)’와 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유시민 2명 등 47명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11월11일. 얼마 뒤 의원 2명 추가)했다. 초미니 여당이 출범한 것이다(노 대통령은 2004년 헌재의 탄핵안 기각 결정 뒤 수석당원으로 입당).”

 

 

김경재, 노 대통령에게 “후회할 거요”
 

“각오했던 대통령의 탈당이었지만 막상 현실화되자 새천년은 분기탱천했다. 이들의 반감은 한나라당의 그것을 몇 배 능가했다. 양자를 들여 대통령을 시켜줬는데 ‘먹튀’했다며 총공세에 나섰다. 열린우리당을 향해선 열우당(劣友黨)·돼지우리당·닫힌니네당 등등 온갖 악담을 퍼부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높아가는 지지율도 ‘친정’의 부아를 돋우었다.” 당시를 말하는 새천년 관계자들 눈에는 지금도 핏발이 선다. 몇몇 증언은 그대로 옮기기가 민망스러울 만큼 험하다. 호남이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물리치고 국민의당에 의석을 몰아준 게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후계자 ‘문재인’ 의원이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감정이 노령층을 중심으로 상당하다는 얘기다.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지원에 앞장선 김경재 전 의원(박근혜 대통령 홍보특보를 거쳐 현재 자유총연맹 회장)은 대통령이 탈당을 권유해 한바탕 말씨름을 했노라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솔직함이 흠이라지만 나는 좋아했고 대통령도 내게 호감을 가졌다. 그가 전화를 걸어와 ‘김 선배가 안 오면 내 체면이 어찌 됩니까. 함께 갑시다’ 하기에 ‘내가 당신 (체면) 때문에 따라간단 말이오. 두고 보시오, 반드시 후회할 거요. 하늘에 맹세코’라는 말로 종용을 뿌리쳤다”고 회고했다. 가깝게 지낸 김근태 원내총무도 막판까지 “형님 (탈당) 안 되겠습니까”라며 회유했지만 “노 대통령이 이럴 줄 몰랐다. 이건 도리가 아니다”는 말로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한 지붕 두 가족’의 갈등, 그리고 彈劾탄핵

 

한국의 정당사(政黨史)는 70년이 넘는다. 그러나 현존하는 정당들의 나이는 네 살 미만이다. 목전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냥’ 뭉치다 보니 얼마 못갔기 때문이다. 8월 현재 선관위에 등록된 우리나라 정당은 28개. ‘군소(群小)’라는 수식어조차 낯간지러운, 단칸방에 전화기 한 대 들여놓은 정당까지 포함해서다(등록된 정당 가운데 ‘한나라당’ ‘민주당’도 있는데 기존의 정당이 문을 닫자 잽싸게 ‘명의(名義)’를 챙긴 것). 새누리당 등록일이 1997년으로 돼 있지만 지금의 이름을 단 것은 2012년 2월이니까 우리 정당들의 생일이 몽땅 2012년 이후라고 해도 상관없다. ‘1997년’은 개명 전 이름인 한나라당 창당 날짜다. 이 ‘어린 나이’는 굴곡진 헌정사와 정치의 후진성을 말해 주는 증표다. 룸살롱이나 대형 술집이 업태(業態)나 위생규정 위반으로 영업정지를 당하면 눈가림 차원에서 간판을 바꿔 단다. 혹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상호를 바꾸기도 했다. 우리 정당들도 불순·불량 업소들의 못된 행태를 본떴다. 국민의 지탄을 받을 일이 생기면 쇄신·개혁 등을 명분으로 당명을 바꿔 위기를 모면했다. 요즘은 ‘비상대책위’를 만들어 곤경을 피하는 게 유행이다.

 

열린우리당 전북도지부 현판식(12월23일). 2003년 11월11일 문을 연 우리당은 이듬해 총선을 위한 당세 확장을 서둘렀고, 노무현 대통령은 드러내놓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정당이 생겨났다. 보수를 이념으로 하는 정당은 ‘자유당’으로 이어진 이승만 대통령 추종세력과, 지주계급 중심의 한국민주당(한민당)을 계승한 ‘민주(民主)계열’로 대별된다. ‘민주’를 돌림자로 하는 정당들은 한국의 야당을 대표하는 세력이 됐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 풀네임이 민주공화당이고 전두환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정의당이나 1990년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에도 ‘민주’자가 들어 있기는 하지만 ‘민주 상표권’은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승계했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또 민주노동당처럼 진보정당에 민주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실제 조직과 행태가 민주적인지 여부를 떠나 그 상징적 가치 때문에 민주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민주 계열’ 내 ‘민주’만 해도 민주국민·민주·민주(신파)·민주한국·신한민주·통일민주·평화민주·통합민주·대통합민주·새천년민주·더불어민주 등 정치전문가도 분간을 못할 정도로 많다. 앞뒤에 딸린 수식어 없는 ‘민주당’만도 7개이고, ‘꼬마민주당’이라는 별명의 민주당도 3개다. 때문에 본인이 ‘무슨 민주’ 소속이었는지 모르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수준 이하 조악한 정치가 낳은 블랙코미디다. 명칭에 ‘인민·사회·노동·대중·진보’가 들어 있는 그룹은 진보정당 계열.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만큼 한국 정치 주조(主潮)는 ‘보수끼리의 쟁투’였다. 

 

이런 흐름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달라졌다. 보수대연합이 이뤄지자 야권이 DJ(김대중)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보수 대 진보’ 모양새를 띠게 됐다. 그 결과가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당선이다. 국민회의 후보로 대통령이 된 DJ는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고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로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 등에 따른 ‘무정란(無精卵) 정권’ 예상을 ‘영남 후보’를 들여다 깨뜨린 것이다. 하지만 여권 내부는 편치 못했다. 집권은 했으나 비주류로 전락한 구세력은 ‘양자(養子) 대통령’의 덜미를 잡고 딴지를 걸었다. 이에 대통령을 지지하던 개혁파들이 딴살림(‘열린우리당’)을 차리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진보 대 보수’ 대립보다 훨씬 험악한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졸지에 야당이 된 새천년민주당의 배신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가 생긴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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