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복구하는 이탈리아, 마피아를 염려하는 까닭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9.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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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4일 새벽 이탈리아 중부에서 발생한 규모 6.2의 지진으로 약 29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비보(悲報)가 전해졌다. 특히 아마트리체에서만 22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충격을 줬다. 아마트리체에서는 8월27일과 28일, 50년 전통의 스파게티 축제가 예정돼 있었다. 흥겨운 행사를 앞두고 아마트리체는 축제의 장소가 아닌 비극의 장소가 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다시 복구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때 아닌 '마피아'가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지진 복구 현장에서 마피아 스캔들을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8월28일 이탈리아 마피아 범죄 수사를 맡고 있는 프랑코 로베르티 검사장은 지진 복구 현장에서 마피아를 몰아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탈리아 언론 라레푸블리카는 지진 복구를 위한 재건축은 범죄 조직에게 구미가 당기는 사업이며 이번 지진 지역의 부실 공사도 마피아가 개입한 게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수명이 오래된 건물만 무너진 게 아니라 최근에 지은 학교 등 내진 설계 건물도 붕괴했기 때문이다. 1980년 2400명 이상이 사망한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지진을 두고 로베르티 검사는 "마피아가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허술한 공법의 건물들이 무너지며 피해가 컸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에서 큰돈이 움직이는 곳에는 언제나 마피아가 있다는 게 정설이다. 최근까지 각광받던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대표적이다. 2013년 6월 유로폴은 '이탈리아 조직범죄의 위협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이탈리아 마피아가 에너지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실태를 보고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태양광에 유리한 일조 시간이 긴 장소, 풍력발전에 유리한 바람이 많이 부는 장소가 대부분 남부 지방에 포진해 있다. 그리고 남부는 이탈리아 마피아가 주로 활약하는 곳이다.

 

에너지 사업에 마피아가 눈독을 들인 이유는 불법으로 번 돈을 세탁한 뒤 투자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어서다. 풍력, 태양광 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은 설비에 투자한 뒤 FIT제도(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력 가격과 기성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력 생산단가 차액을 정부가 보상해주는 제도)를 적용받으면 20년간 꾸준히 적법하게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로폴이 인지하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사법 당국 역시 마피아가 에너지 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2012년 이탈리아 남부 크로토네에 있는 풍력발전 설비가 현지 마피아 조직인 은드라게타와 관련 있다고 보고 압류했다. 약 3억5000만 유로(약 4400억원) 규모였다.

 

2013년 7월 잠입 수사 결과, 시칠리아 30곳에 있는 풍력 발전 설비의 3분의 1을 보유해 '풍력왕'이라고 불리던 기업가가 실은 지역 마피아조직인 코사노스트라와 관련된 사실도 드러나 설비들이 압류됐다. 15억유로(약 1조9000억원) 상당의 시설이었다. 

 

설비를 압수당하자 마피아는 작전을 바꿨다. 에너지 사업을 재개했는데 설비에 투자하는 대신 태양광 패널을 조직적으로 훔쳤다. 옥외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설비에 침입해 패널이나 인버터를 훔치기 시작했다. 약 200장의 패널을 훔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인데, 그렇게 발생하는 손해액이 4만2000유로(5255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건설과 에너지 산업. 범죄 조직이 범접하기에 쉽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사업도 자기 영역에 두는 마피아다 보니 이탈리아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준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비스코 총재는 지난 해 의회의 반(反)마피아위원회에 출석해 "마피아의 악영향이 없다면 해외 투자는 2006~12년보다 15%정도 증가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15%를 금액으로 산출하면 160억 유로(약 20조원)에 달한다.

 

이탈리아에서 마피아가 차지하는 경제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는다는 지적이 있다.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인 은드라게타의 수입은 연간 530억유로(약 66조원)로 추산된다. 한화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가 66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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