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 닮은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5 08:17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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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넘어온 ‘두테르테 현상’…두테르테 두둔하는 정치인도 나타나

중국 황제의 형벌은 잔인했다. 부패사범을 특히 싫어했던 명나라 황제 주원장이 만든 ‘명대고(明大誥)’라는 법전에 따르면, 부패사범에게 능지처참·박피·진초 등 처참한 처벌을 집행했다. 능지처참은 사람이 많이 모인 가운데 죄인을 기둥에 묶고 포를 뜨듯 살점을 베어내어 죽이는 형벌이다. 박피는 피부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진초는 신체의 내장을 도려내고 풀을 채워두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조가 사육신을 능지처참하고 효수해 사람들에게 공개했다는 기록이 있다. 프랑스의 루이 15세도 반역죄인을 네 마리 말에 묶은 뒤 사지를 찢어 죽였다고 한다.

 

군주의 전제적 인치(人治)와 형벌은 영국에서 제동이 걸렸다. 영국 왕 존의 실정에 반발한 귀족들은 런던 시민의 지지를 얻어 왕에게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의 승인을 요구했다. 국왕은 귀족에게 세금 부담의 감면과 법률의 절차를 서약했다. 특히 39조는 “어느 자유인은 동료의 합법적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 체포·감금·압류·법외방치·추방을 당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침해당하지 않는다. 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렇게 하도록 시키지도 않는다”고 적었다. 이 조항은 자유의 상징이 됐다. 마그나카르타는 인권과 법치(法治)를 강조하는 현대 헌법의 효시가 됐다. 

 

 

한 필리핀 경찰이 불법 마약 퇴치작전 이후인 8월10일 마닐라 거리에 놓인 시체들 옆에 서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신체에 대한 잔혹한 형벌은 금지돼 있다. 정부는 국민에게 재판에 의하지 않고 고문을 하거나 투옥하거나 목숨을 빼앗는 처벌을 가할 수 없다. 인치보다 법치가 더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승만 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재판도 없이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전두환 정부가 광주에서 시민을 학살한 행위는 반인도적 범죄로 지탄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이란·싱가포르에서 신체형이 이뤄지고 있지만 인권 유린의 사례로 비난을 받고 있다. 신체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루 36명 사살한 ‘처형자’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은 국제사회에서 인권 유린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두테르테 취임 후 7주 동안 마약 용의자 1916명이 사살됐다고 한다. 하루 평균 36명꼴이다. 그의 별명은 ‘처형자’다. 그래도 두테르테에 대한 필리핀 국민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91%다.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법치를 무시한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여기에는 필리핀의 복잡한 역사가 숨어 있다. 두테르테는 필리핀 역사상 최초로 남부 민다나오 섬 출신이다. 민다나오 섬은 오랫동안 무슬림 테러리스트, 공산당 게릴라, 마약 범죄로 내전 상태였다. 두테르테는 민다나오 섬을 확 바꿔놨다. 다바오시에서 시장을 7번째 연임하면서 범죄가 만연한 도시를 안전한 도시로 바꿨다. 강력범에게 ‘무관용 정책’을 펼쳐 시민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 

 

막말과 여성혐오 발언으로 ‘필리핀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은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내 범죄 근절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워 기성 정치와 범죄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인기를 얻었다. 전임자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마닐라의 인질사건, 태풍 피해, 치안 유지의 실패로 인기가 떨어졌다. 반대파들은 ‘노이노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키노에게 ‘노이노잉’이라는 용어로 아무 일도 안 하고 자리만 지키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아키노의 정당인 자유당 후보로 나선 마누엘 로사는 미국 유학파로 성공한 은행가였지만 참패했다.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72세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밀어붙인 일은 마약과의 전쟁, 부패와의 전쟁이었다. 그는 “장례식장을 마약상들로 가득 채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마약 범죄와 관련 혐의를 받는 수백 명의 공직자 명단을 발표했다. 경찰은 마약 용의자를 살아 있든 죽었든 체포하면 최고 500만 페소(1억2000만원)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저항하는 마약상은 현장에서 얼마든지 죽여도 좋다고 말했다. 사실상 살인면허를 발부한 것이다. 경찰과 계약을 맺은 전문 킬러 조직인 자경단이 등장했다.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도 속출했다. 상원 청문회에서 마약 소탕 작전 과정에서 숨진 사람 가운데 60%는 경찰이 아닌 자경단 등 사설조직의 총에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결 처형까지 허용한 대통령의 조치가 정치 보복에 악용된 것이다. 주민들이 서로 총을 겨누는 내전 상황이다. 심지어 5살 여자 어린이가 자경단이 쏜 것으로 보이는 총에 맞아 숨졌다. 

 

국제 인권단체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국내 정책이 인권 유린의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유엔이 나서서 초법적 사형 집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지만 두테르테는 “우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유엔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는 “인권 침해”라며 중단을 요구했지만, 두테르테는 “마약중독자는 인간이 아니다”며 반발했다. 그는 자신을 비판한 필립 골드버그 주(駐)필리핀 미국 대사에게 “발카(동성애자) 대사” “그는 개XX로 나를 화나게 했다”라는 막말을 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막말이 교묘하게 계산된 행동이라는 지적도 있다. 두테르테는 필리핀의 독재자로 지탄을 받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국립묘지로 이장했다. 계엄령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든 마르코스는 1986년 ‘피플 혁명’으로 물러났지만, 아직도 반대자들이 많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대선 당시 두테르테가 독일 나치의 히틀러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고했다.

 

강압적 정책, 독재정권 키울 수 있어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삼청교육대와 닮았다고 지적한다. 전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광주 민주화운동을 공수부대의 총칼로 진압했다. 전국의 깡패를 삼청교육대에 끌고 가 순화교육을 실시했다.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맘에 안 드는 기자를 해직시켰다. 지금 두테르테가 외치는 범죄자 사살, 부패 공무원 척결 주장은 전두환 정부의 정책과 비슷하다. 두테르테가 전 전 대통령을 모방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과 인터넷에서 두테르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두환이 떠나버린 나라에 두테르테가 절실하게 필요한 곳은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언론에서도 두테르테를 “화끈한 인물”로 묘사했다. 두테르테를 두둔하는 정치인도 나타났다. 노골적으로 “한국판 두테르테를 기다린다”고 쓰는 사람도 있다.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두테르테의 강압적인 정책은 독재정권을 키울 수 있다. 대중의 지지를 악용해 법치를 무너뜨리면 인권은 바람 앞의 촛불이 될 수 있다. 흉악범과 마약사범의 처벌도 법률이 정한 재판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초법적 처벌을 가한다면 결국 무고한 시민도 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법치가 없다면 끔찍한 1인 독재 국가가 등장할 것이다.

 

다행히도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맞선 필리핀 정치인이 있다. 레일라 드 리마 필리핀 상원의원은 전임 아키노 정부에서 5년간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드 리마 의원은 두테르테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며 초법적 행위에 대한 상원의 조사를 주도한다. 드 리마 의원은 “도덕과 존엄의 상실, 기만을 앞에 두고 입을 다물어야 하나. 공포가 우리를 이끌게 해서 폭력과 권력남용의 희생자가 될 것인가”라는 메시지를 내고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드 리마 의원이 옳다. 잔인한 형벌과 독재는 옳지 않다.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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