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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 대신 임의번호는 어떠세요

주민번호 변경 허용했지만 개인정보 담긴 숫자는 변경 못해…피해 우려 입증 방법도 문제

조유빈 기자 ㅣ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9.17(Sat) 13: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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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는 생년월일, 성별, 출생 신고지 등 고유한 식별정보가 담긴 13자리의 숫자로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유일한 식별번호다. 주민등록번호 발급은 1975년부터 이뤄졌다. 18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의무적으로 발급 받게 돼 있다. 행정적으로 본인을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민등록번호가 납세, 취학 뿐 아니라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기 시작하자 개인정보로서 주민등록번호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13자리 번호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 담긴 번호가 됐다. 그래서 담당자의 오기나 개명 등으로 변경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 대량유출과 각종 사이트 해킹 등으로 1억 건 이상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흘러나오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게 하자는 여론이 급물살을 탔다.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일정한 요건을 구비한 경우 심사를 거쳐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고, 지난 5월에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5월부터 ‘고유 식별번호’였던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와 ‘피해 사전 예방’ 취지로 가능해진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신체∙재산∙생명 피해 입거나 피해 우려 시 변경 가능

 

개정안에 따라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려면 몇 가지 단서가 붙는다.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생명∙신체∙재산 등 피해를 입거나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 성폭력 피해자나 성매매 피해자 중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피해를 입거나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에만 주민등록지의 단체장에게 번호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그것도 자신이 실질적 피해 사실이나 피해를 입을 위험성을 입증해야만 가능하다. 입증 후에는 주민등록변경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쉽지 않은 절차도 문제지만,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더라도 개인정보가 담긴 숫자를 바꿀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생년월일과 성별 표시 번호 변경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에는 해당자의 나이, 성별, 출생신고 지역 등이 담겨 있다. 앞 6자리는 생년월일, 뒤 첫 자리는 성별을 의미한다. 2000년 이전 출생자 중 남자는 1, 여자는 2를 사용한다. 2000년 이후 출생자의 경우 남자는 3, 여자는 4를 쓴다. 뒷자리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숫자는 지역코드다. 출생신고를 한 지역이 기준이 된다. 00~08은 서울, 09~12는 부산, 13~15는 인천, 16~25는 경기도, 26~34는 강원도, 35~47은 충청도, 48~54는 전라북도, 55~56은 전라남도, 67~90은 경상도다. 다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숫자는 출생신고를 한 읍∙면∙동 주민 센터의 고유 번호이고, 여섯 번째 숫자는 출생 신고를 당일 몇 번째로 접수했는지를 의미한다. 마지막 자리는 위조 방지를 위한 특수 번호다. 나머지 12자리를 특정 공식에 대입하면 이 숫자가 산출된다.

 

변경할 수 있다지만 사실상 바꿀 수 있는 것은 출생신고 지역과 주민 센터를 표시하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두 번째~다섯 번째 숫자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숫자의 경우 현행 방식으로 재(再)부여된다. 이미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됐을 경우 함께 유출됐을 개인정보(생년월일, 성별)는 주민등록번호를 아무리 변경해도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사실상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아주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개인정보 표시 없는 임의번호 필요성 제기돼

 

그러다보니 생년월일과 성별 번호를 그대로 두면서 출생지 번호만 변경을 허용하는 것은 유출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주민등록번호 사용 제한에 따라 은행을 비롯한 상당수의 기관들이 개인 식별번호를 생년월일과 성별(예:990101-1******)로 바꾸고 있는 상황이다. 생년월일 노출만 가지고도 피해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5월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논평을 내 이 같은 점을 지적했다. 경실련은 “이제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수 있게 됐지만 사실상 주민번호 유출 피해자의 피해 구제와는 거리가 멀다”며 “새로 발급되는 주민등록번호에 여전히 전체 번호를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생년월일과 성별 정보를 포함하도록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인권위원장은 “주민등록번호는 그 자체로도 생년월일, 성별 등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개인정보를 통합시키는 강력한 연결자(Key Data)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주민등록번호 체계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고, 오남용이 될 경우 발생하는 피해는 지속적이고 심각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다수 선진국에서는 개인정보가 담겨 있는 번호가 아닌 조세번호, 사회복지번호와 같은 ‘목적별 번호’가 일종의 국민식별번호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 캐나다의 사회보험번호(Social Insurance Number) 등이 그 예다. 이 번호들은 수집 및 이용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유출이 너무나 잦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생년월일과 성별 정보를 담지 않은 ‘임의번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월23일 기존의 주민등록번호 대신 임의번호를 부여해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진 의원은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는 번호를 사용해 기존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고, 유출된 개인정보가 추가 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시급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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