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개발공사의 일방적 계약 해제로 사지 내몰렸다”
  • 여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9.07 15:53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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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수 경도해양관광단지 민간 투자자 244명 법원에 탄원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게도 내용증명 보내

8월30일 오후 4시 전남 여수시 국동항. 이곳에서 배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면 경도가 나온다. 미래에셋그룹이 최근 1조원대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미래에셋은 조만간 이 섬에 있는 골프장과 콘도, 호텔 부지 등을 3423억원에 일괄 매입할 예정이다. 이후 75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2021년까지 복합리조트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여러 차례 여수를 찾았다. 전문가들을 대동하고 현장을 방문해 조사까지 마쳤다. 이낙연 전남도지사와 주철현 여수시장과도 여러 차례 만났다. 이후 1조1000억원의 투자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연말까지 ‘전남개발공사’와 투자 규모나 시설, 대금 납부조건 등에 관한 협상을 마무리한 뒤,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개발이 마무리되면 경도는 ‘한국의 모나코’가 될 것으로 미래에셋 측은 기대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이 최근 1조원대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여수 경도해양관광단지가 주목 받고 있다. 사진은 현재 전남개발공사와 소유권 다툼이 진행 중인 관광단지 내 호텔·콘도용 부지 © 시사저널 임준선


미래에셋, 1조1000억대 투자로 여수 들썩

 

현장에서 만난 여수 시민들도 미래에셋의 대규모 투자에 큰 기대감을 내비쳤다. ‘경도해양관광단지 1조1000억 투자,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님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이 여수시청 정문에 내걸릴 정도였다. 주철현 시장은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업무지원팀을 별도로 꾸릴 예정이다. 이낙연 도지사는 최근 대통령 주재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여수 경도를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에 편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이 최근 암초를 만났다. 미래에셋이 매입 예정인 호텔 부지를 놓고 지역 개발업체인 ‘명인인베스트먼트(명인)’ 등과 전남개발공사가 소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개발공사는 전라남도에서 100% 지분을 출자한 공기업이다. 현재 경도해양관광단지 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명인은 울산에 본사가 있는 지역 개발회사다. 2012년 전남개발공사와 관광단지 내 호텔·콘도 부지를 계약했다가 올 초 해제 통보를 받았다. 이들 간의 법정 다툼으로 경도해양관광단지 사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사업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업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개발공사는 2011년 8월 경도해양관광단지 내 호텔·콘도용 상업용지 3만2000여 평을 매각하기 위해 분양공고를 냈다. 두 차례나 분양공고를 냈지만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전남개발공사는 명인과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204억원에 부지를 매각하는 대신, 필요한 행정지원을 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어렵게 성사된 계약이니만큼 명인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도 서줬다. 명인은 이 돈으로 계약금과 함께 네 차례에 걸쳐 중도금과 잔금 일부를 지급했다. 부지 정지작업이 끝나는 대로 소유권을 넘겨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호텔 개발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먼저 진행된 인근 골프장과 콘도를 개발하면서 나온 토석이나 자재의 적재지로 이곳 부지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토석을 치워달라고 여러 차례 전남개발공사 측에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1년5개월여가 흘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남개발공사는 대출 연장까지 거절했다. 명인은 2013년 10월 한 증권사로부터 130억원을 대출받았다. 전남개발공사에서 지급보증을 섰고, 이 돈으로 중도금과 잔금 일부를 지급했다. 2014년 10월 대출 만기가 돌아오자 전남개발공사는 ‘보증을 설 의무가 없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로 인해 명인은 7개월간 약 14억원의 지연이자를 물어야 했다. 

 

8월30일 여수시 경도에 위치한 복합리조트 부지 소유권 분쟁과 관련해 김송갑 명인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시사저널과 인터뷰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전남개발공사와 명인 간 이면합의 있었나

 

전남개발공사 측은 “명인 측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전남개발공사 관계자는 “모두 1200억원을 투입해 부지를 호텔로 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차 대출 만료 때까지 공사 진척이 없었다.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업체의 하소연도 있었다”며 “계약 해제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대출을 연장해 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인 측은 전남개발공사가 의도적으로 보증을 서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014년 말부터 문화체육관광부는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사업을 추진해 왔다. 호텔 부지는 복합리조트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노른자 땅’이다. 전남개발공사가 이 사업 공모에 참여하는 데 이미 명인 측에 매각한 호텔·콘도 부지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전남개발공사가 대출을 연장해 주는 조건으로 이면합의를 제안했다는 것이 명인 측의 주장이다. 계약한 토지를 전남개발공사가 지정하는 신규 복합리조트 사업부지의 매수자에게 매도한다는 조건이었다. 김송갑 명인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공사 방해로 부지 정지작업이 지연됐고, 대출 연장마저 무산되면서 거액의 지연이자까지 물어야 했다”며 “코너에 몰린 회사 입장에서는 전남개발공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남개발공사 측은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전남개발공사 관계자는 “그런 합의를 한 사실이 없다. 당시 공모는 카지노 라이선스를 받는 것이 목표였다”며 “호텔 부지가 전체 개발구역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명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만큼 매각 대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입수한 K사의 ‘여수 경도 카지노 복합리조트 RFC 사업제안서’에는 호텔 부지의 공사 계획뿐 아니라, 향후 예상되는 추정 손익계산서까지 포함돼 있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RFC는 공식적인 REF(사업계획서 제출 요청)에 앞서 제출하는 콘셉트 제안 요청”이라며 “RFC를 제안하면서 전남개발공사의 허락 없이 호텔을 개발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명인은 추가 대출을 받으면서 전남개발공사 및 금융사와 추가 협약서를 작성한다. 당초 계약은 2017년 3월까지 잔금을 납부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전남개발공사는 2015년 12월말까지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하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협약서에 추가했다. 전남개발공사는 이 특약을 근거로 2016년 1월5일 명인과의 토지 매매계약을 해제하게 된다. 명인은 계약금 20억원과 부지 정지자금을 위해 투자한 60억원 모두를 날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명인의 한 관계자는 “17억원의 잔금을 제외하고 이미 토지대금을 모두 지급한 상태다. 그나마 17억원 역시 부지 정지작업 이후 상황을 위해 남겨둔 금액이었다”며 “사업이 지연된 데는 전남개발공사의 책임도 있다. 그럼에도 일부 문제를 꼬투리 잡아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제했다”고 주장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얼마 후 미래에셋이 경도해양관광단지 사업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명인 측은 전남개발공사가 대기업인 미래에셋을 위해 영세업체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회사 관계자는 “아파트의 경우도 계약금과 중도금을 내면 계약 해제가 어렵다”며 “200억원대 거래의 매매대금을 사실상 완납했고, 부지조성 공사 역시 90% 이상 진행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명인은 최근 전남개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명인 측은 “전남개발공사의 매매계약 해제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명인의 법률 대리인인 김병진 법무법인 지우 변호사는 “민법 제544조에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해 그 이행을 최고(催告)하고, 그 기간 내에도 이행하지 않을 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며 “전남개발공사는 계약을 해제하면서 한 번도 최고서를 발송하지 않은 만큼 계약 해제는 무효다”고 말했다. 

 

경도해양관광단지에 위치한 호텔 개발 예정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최고 노른자 땅으로 평가된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전남개발공사 “절차대로 진행” 주장 

 

전남개발공사 측은 “절차대로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명인의 경우 대출 은행과 전남개발공사 등 3곳과 약정을 체결했다. 변호사를 선임해 모든 문구까지 논의한 뒤 도장까지 찍었다”며 “명인이 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자동으로 계약이 해제된 것이다. 최고장과 무관하게 약정 기한 이익 상실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법원이 향후 두 주장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경도 소유권 분쟁으로 주목되는 곳은 또 있다. 명인은 경도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244명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전 재산을 털었거나 은행 대출을 받아 사업에 투자한 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전남개발공사가 돌연 계약을 취소하면서 이들 모두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전남개발공사에 찾아가 항의해 봤지만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이들 민간 투자자는 최근 ‘여수경도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결성했다. 생업마저 접고 전남도청과 의회, 전남개발공사 등에 하소연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추연술 비대위 위원장은 “전남개발공사의 공신력을 믿고 투자했다. 투자를 앞두고 공사에 문의했을 때도 ‘문제없다’는 답을 받았다”며 “계약 해제 이후 15번이나 공사를 찾아갔지만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 중 2명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겹쳐 최근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경도 개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업 부지의 가격 역시 상당 부분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 측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도 부지 인근의 호텔 공시지가가 250만원 상당이다. 실제 거래 가격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평당 170만원만 잡아도 부지 가격은 500억원대에 이른다. 전남개발공사의 일방적 계약 해제로 인해 이 돈을 강탈당했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비대위는 최근 박현주 회장에게도 면담을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개발공사와 명인 및 투자자들 간의 분쟁에 미래에셋은 본의 아니게 연루돼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소송이 장기화할 경우, 244명의 투자자들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며 “미래에셋이 호텔 부지를 인수하고, 박현주 회장의 투자 의지 또한 강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개발공사의 일방적 계약해제로 사지 내몰렸다’ 관련 반론보도문

 

본지는 지난 9월9일자 사회면 24면에서 전남개발공사가 경도해양관광단지 호텔콘도 부지를 분양받은 명인인베스트먼트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제하면서 명인뿐만 아니라 투자자들도 모두 큰 손해를 감수하게 생겼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전남개발공사는 “명인과의 계약 해제는 약정한 날까지 대출기관의 대출금을 상환받지 못하여 발생한 것으로, 명인 측이 주장하는 이면합의, 보증약속, 공사방해 등은 모두 사실무근이며, 투자자의 손해는 명인이 분할등기가 불가능한 토지를 필지분할이 가능한 것처럼 기망하여 투자자를 모집한 것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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