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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열정페이 없애자” 외치는 국회

국회 인턴의 열악한 노동환경 여전… 최저 시급도 못 받아

이성진 인턴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12(Mon) 06:00:39 | 14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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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20분까지 국회 의원회관으로 출근하는 박아무개씨(여·25). 박씨는 1층에 놓인 신문과 우편물을 챙겨 의원실로 향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사 스크랩이다. 의원이 등장한 모든 인터넷 기사를 인쇄해 언론사, 기사 제목, 의원 이름, 멘트에 일일이 밑줄을 긋고 하나로 묶어 제출한다. 의원 블로그, SNS 관리도 그의 몫이다. 의정활동 내용을 사진과 함께 업로드한다. 관련 부처에서 온 메일을 정리해 의원과 보좌관, 비서관 등에게 보고하는 것도 오전 일과다.

 

박씨의 오후는 더욱 바쁘다. 의원 일정에 따라 박씨의 업무도 달라진다. 의원과 동행해 활동사진을 남기는 건 기본, 예정된 지역행사 현장축사와 팸플릿에 들어가는 축사도 작성한다. 언론사에서 요청한 서면인터뷰 답변 초안 작성도 그의 담당이다. 보좌진들이 작성한 보도자료는 언론사에 배포하고, 발의 준비 중인 법안은 300개 의원실로 전달한다. 필요한 자료를 관련 부처에 요청하고, 각종 회의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밤 10시가 훌쩍 넘는다. 꼬박 한 달을 일하고 박씨가 손에 쥔 건 교통비 30여만원.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한 초선의원의 국회 사무실에서 입법보조원으로 근무했던 ‘무급 인턴’ 박씨의 하루다.

 

국회는 ‘열정페이’를 없애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국회 인턴직원에 대한 대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정부, ‘열정페이 근절안’ 제시…국회는 ‘외면’

 

국회 인턴제의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 과도한 업무 문제 등이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국회 인턴제도는 1999년 의정활동 지원과 청년실업 해소, 의정활동 체험 기회 부여 등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인턴직원들의 처우는 외면받은 지 오래다. 

 

여야는 앞다퉈 청년 일자리 창출과 인턴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 2월 정부는 청년층에 대한 노동력 착취 근절과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열정페이 근절 가이드라인’을 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국회 인턴들의 노동환경은 제자리걸음이다. 박씨를 비롯한 대다수 국회 인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혀를 내두른다. 6개월간 한 비례대표 의원실에서 인턴근무를 했던 A씨는 “의원실마다 다르겠지만, 의원 업무수행부터 정책개발업무까지 일이 정말 많다”며 “야간, 주말 수당 등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 인턴들은 주로 홈페이지, SNS 관리 등 홍보·공보업무를 도맡아 하지만, 업무의 특성상 보좌진 일을 분담하는 경우가 많다. 국회 인턴으로 2년간 근무해 온 B씨는 “대정부 질문, 본회의 기간 등이 되면 일손이 부족해 보좌진 일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며 “1~2년 이상의 근무경력이 있는 인턴은 보좌진과 거의 비슷한 업무를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잡무만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박씨는 “주말에도 출근해 하루 종일 언론 기사 스크랩만 한 적도 있다”며 “본래 기대하던 근무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국회 인턴들은 저임금 문제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인턴 기본급은 2008년 11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오른 후, 현재는 최저시급에 맞춰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등 실제 노동시간을 감안하면 이들 급여는 최저시급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실시한 국회 인턴·입법보조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턴 시급은 주당 평균 근로시간 66.8시간(주·휴일 8시간 포함)을 기준으로 4608원으로 나타났다. 2015년 최저시급인 5580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인턴과 별개로 의원실에서 추가로 채용할 수 있는 입법보조원은 자원봉사직으로 구분돼 급여가 제공되지 않는다. 사실상 무급 인턴에 가깝다. 본래 입법보조원 제도는 의원실 내 입법연구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근로시간이나 업무분담에 있어 인턴과 다를 바가 없다.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다. 현재는 의원실별로 2명의 인턴을 1년간 총 22개월의 범위 안에서 채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 11개월 단위로 인턴 근로계약을 맺는다. 결국 1개월의 공백 기간이 생겨 퇴직금 지급 기준인 근로기간 1년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회 인턴이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능력을 인정받고 기회가 주어지면 보좌관으로 진급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국회의원 보좌직원은 별정직 공무원에 속해 이들의 채용은 전적으로 국회의원 의사에 달렸다. 의원 재량에 따라 하루 만에 새롭게 뽑힐 수도, 잘릴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인턴 처우개선을 위해 출범한 국회 인턴 노조 ‘국회인턴유니온’(유니온)의 활동은 20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영철 유니온 위원장은 “4·13 총선이 끝나고 20대 국회 인턴직에 지원할 때, 대부분의 의원실이 노조활동을 달가워하지 않아 이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한 국회 인턴직원이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20대 국회서 노동환경 개선될지도 불투명

 

20대 국회에서 인턴직원의 노동환경이 개선될지도 불투명하다. 지난 6월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인턴제를 폐지하고 8급 비서 1명을 신설하자는 내용의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인턴제 폐지가 청년들의 의정활동 기회를 박탈해 실질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 의원실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치 못할 바엔 인턴제를 없애는 게 옳다는 정책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입법보조원은 다른 의미의 직책이기에 이번 개정안에선 다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태욱 새누리당 의원이 8월18일 발의한 일명 열정페이 금지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도 국회 인턴·입법보조원의 처우 문제가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해당 법안은 정 의원실에서 입법보조원으로 근무 중인 대학생 이시윤씨가 법안 준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이씨는 “같은 대학생들이 현장실습이란 명목하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입법보조원이 법안 발의에 힘을 보탰음에도 법률 내용과 그 적용 대상은 ‘대학생현장실습장’으로 국한돼 있다. 정 의원실은 “해당 법안이 청년들을 위해 발의됐지만, 국회 인턴의 처우 문제까진 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턴의 고용과 해임은 국회의원이 담당하고, 급여지급은 국회사무처에서 이뤄진다. 이 같은 고용구조 내에서 의원과 사무처는 본질적 문제 해결에 쉽게 앞장서지 못하고 있다. 이영철 위원장은 “인턴 처우와 관련해 양측이 서로에게 책임만 돌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국회사무처는 향후 국회 인턴 처우개선 대책과 관련해 “이는 민감한 사항”이라며 “아직까지 유니온 측에서 구체적 움직임이 없는 만큼 향후 계획에 대해 밝히기 애매하다”고 답변했다. 또 “입법보조원의 경우 의원실에서 직접 고용하기에, 이에 대해 특별히 말씀 드릴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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