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데스 시대, 살아 움직이는 고인을 보면서 추모한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09.08 20:31
  • 호수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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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팅·가상현실·증강현실 기술로 장례문화 혁신적 변신 눈앞에

흔히 상조·장례업을 가리켜 ‘죽음을 먹고 사는 산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밑단에는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서구의 사정은 다르다. 엄연히 하나의 산업이다. 무엇보다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우리보다 전쟁을 빨리 치른 미국·일본은 인구 증가의 원인이 된 ‘베이비붐 세대’의 출산 시기 역시 우리를 앞선다. 이미 고령층으로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들이 속속 사망하면서 미국에서는 연간 100만 명 씩 사망하는 메가데스(Mega-Death)가 하나의 시대 조류가 되고 있다. ‘메가데스’라는 말은 원래 원자폭탄 등에 의해 수백만 명이 집단 사망하는 과학용어에서 출발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고령층이 대거 사망하면서 생기는 사회학 용어로 변신하고 있다.

 

자연사 등의 이유로 연간 100만 명씩 사망하는 나라는 미국·중국 등 일부 국가에 한정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메가데스가 규정한 사망 수 기준으로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 인구는 27만6000명으로 10년 전인 2005년(24만4000명)보다 13%증가했지만, 메가데스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10년 후인 2025년에는 연간 사망 인구가 40만3000명으로 2015년보다 46%, 20년 후인 2035년에는 50만7000명으로 2배 늘어난다. 다시 말해 20년 내로 ‘준(準)메가데스’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상조컨설팅 기업 ‘메모리얼 소싸이어티’에 따르면, 앞으로 20년간 누적 사망 인구는 약 820만 명으로 예상되며, 이는 지난해 총 인구수를 기준으로 볼 때 16% 수준이다.

 

 

3D프린팅 기술로 만든 피규어 © 대호테크 제공

 

 

故 이병철·김광석 등 홀로그램 기술 접목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상조·장례업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군이 됐다. 일례로 미국 최대 상조기업 ‘SCI(Service Corporation International)’는 현재 뉴욕증시에까지 상장돼 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본사를 둔 SCI는 현재 미국 내 43개 주와 캐나다·푸에르토리코 등에 1500개의 장례식장과 400개 묘역을 보유·관리하고 있다. 2013년에는 시장점유율 기준 2위 기업인 ‘스튜어트 엔터프라이즈’를 인수하면서 독과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연매출은 약 30억 달러다. 

 

우리나라도 매년 약 7%씩 상조·장례업이 성장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는 약 5조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상조·장례업은 크게 △상조(금융) 서비스 △장례식장 △장묘산업 △기타 유관산업으로 구분된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장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40%, 상조 서비스와 기타 유관산업 비중은 30%, 장례식장은 30%를 차지한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상조업체 간 과열 경쟁 등이 맞물리면서 상조 서비스업은 점차 시장규모가 줄고 있으며, 대신 장묘 등 유관산업이 시장을 선도하는 모습이다.

 

증강현실(AR) 기술이 발전하면서 홀로그램 기술을 적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살아생전 고인(故人)의 모습을 입체 영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시초는 CJ그룹이 서울 퇴계로 CJ제일제당센터 1층 로비에 선보인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홀로그램 영상이다. 가로 70cm, 세로 55cm 흉상 사이즈로 제작된 이병철 창업주 홀로그램은 입체 영상을 전방과 좌우 모두에서 볼 수 있게 돼 있다. 마치 실제로 이병철 창업주가 정면을 쳐다보는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이다. CJ 관계자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사업적 성과와 업적을 되새김과 동시에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창업이념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홀로그램 흉상을 만들었다”고 제작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 6월 미래창조과학부와 대구광역시가 대구시 ‘김광석거리’에서 선보인 가수 고(故) 김광석 홀로그램 기술도 비슷하다. 홀로그램 영상 속에서 김광석은 자신의 히트곡 《이등병의 편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서른 즈음에》 등 3곡을 부른다. 이 홀로그램 공연은 오프닝을 포함해 약 20분간 시연됐다.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지만, 호주의 게임 개발사 ‘패라노멀 게임즈(Paranormal Games)’는 가상현실에서 고인을 만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엘리시움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기술은 살아생전 자신의 손·발·얼굴 등 신체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한 뒤 3D 입체영상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인의 목소리와 말할 때의 버릇·제스처 등까지 입력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사후 후손들이 언제라도 컴퓨터 영상 속에서 고인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개발사의 생각이다. 

 

다만 홀로그램 기술은 제작비용이 비싼 게 흠이다.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다행히도 최근 국내 중소기업들이 증강현실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이용한 사이버 추모관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어 대중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조병완 교수팀의 사이버 추모관은 가상현실과 모바일 기술을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국립 현충원 내 묘비석마다 전자태그를 부착,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살아생전의 모습 등 고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기본 취지다. 이른바 ‘가상 현충원’으로 불리는 이 기술은 현재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충무로 CJ제일제당센터 로비에 있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홀로그램 영상(우측)과 유골 성형 © CJ그룹·메모리얼소싸이어티 제공


3D 프린팅으로 만든 흉상에 고인 DNA 넣어

 

제사에 접목할 수 있는 기술도 준비 중이다. 모바일 화면에 제사상을 띄어놓거나, 영정(影幀) 사진 대신 TV나 모바일 화면을 제사상에 올려놓고 고인의 살아생전 모습을 후손들이 보면서 제사 지내는 방식도 기술 상용화에 이르렀다. 조 교수는 “가로세로 30㎝ 남짓한 납골당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을 모바일·VR·AR 기술이 앞지르는 것은 곧 일어날 현실”이라면서 “ICT(정보통신기술)는 기존 제례·장례문화의 보완재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둔 ‘대호테크’는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케이스다. 고인의 살아생전 모습을 100대 가까운 카메라의 동시 촬영과 3D 스캐닝 기술을 접목해 피규어 형태로 제작하는 기술이다. 유토피아(Utopia)와 로봇(Robot)의 합성어인 대호테크의 ‘우토로(Utoro)’ 기술은 내년 일반에 공개된다. 이 회사의 이정민 부장은 “3D 피규어에는 목소리·영상·홀로그램·머리카락·손톱 등 고인의 DNA를 집어넣는 기술도 선보일 예정이며, 이와 관련한 특허 출원도 끝마쳤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또 관련 정보를 클라우딩 컴퓨터에 저장해 분실해도 다시 제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묘문화도 과거와는 다르게 많이 바뀌고 있다. 화장한 유골을 보석이나 사리 형태로 가공 처리해 집에서 보관하는 유골 성형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성형 처리된 유골은 부패하지 않아 사실상 영구 보관이 가능하다. 지난 2010년 퇴계 이황의 자손(진성 이씨)인 고(故) 이윤학씨 후손들은 화장한 이씨의 시신을 사리로 만들어 문중 납골당에 모셨다. 유골 성형은 미국·일본에서는 이미 보편화돼 있는 기술이다. 유족이 원할 경우 브로치·펜던트 등으로도 만들 수도 있다. 

 

사망 전 유언장 및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엔딩노트를 만들어주거나 상조 서비스, 장례 방식, 장묘 방식 등을 살아생전 결정하도록 돕는 일본식 슈카쓰(終活) 서비스를 준비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이 밖에 사망 전 고인의 유품을 대신 정리해 주는 유품정리 서비스 업체들도 최근 속속 생겨나고 있다.

 

 

수목장·잔디장 등 자연장 수요 점점 커져 

 

자연장이 늘고 있는 것도 빠르게 달라지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1991년 17.8%에 불과했던 화장률은 2005년을 기점으로 매장률을 앞서기 시작했으며, 지난해에는 80.5%까지 늘어났다. 사망인구 10명 중 8명의 시신을 매장이 아닌 화장으로 처리했다는 뜻이다. 화장 후 시신을 보관하는 방식으로는 납골당으로 대표되는 봉안시설 안치가 가장 많다. 소비자원이 2014년 1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장사(장례·장묘) 서비스를 직접 이용한 소비자 6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제 이용률의 경우 봉안시설이 74.5% 가장 많고, 자연장은 23.7%에 불과했다. 하지만 선호도 면에서는 자연장 39.9%, 봉안시설 32.7% 순이었다. 

 

 

추모공원 ‘별그리다’에 있는 소나무 수목장, 잔디장과 경기도 모 추모공원에 조성된 평장 묘역(사진 왼쪽부터) © 별그리다·메모리얼소싸이어티 제공

추모공원 ‘별그리다’에 있는 소나무 수목장, 잔디장과 경기도 모 추모공원에 조성된 평장 묘역(사진 왼쪽부터) © 별그리다·메모리얼소싸이어티 제공

 

국내에 자연장이 등장한 것은 지난 2007년 5월 ‘장사등에관한법률’이 개정되면서부터다.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자연장 방식은 수목장·화초장·잔디장 등이 있으며, 최근 들어 평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자연장은 화장 처리한 시신을 묘역으로 조성된 수목·화초·잔디 등에 안치한 뒤 고인과 관련된 작은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다. 유성원 메모리얼 소싸이어티 대표는 “보건복지부 등 유관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벌인 결과, (자연장) 선호도는 늘어났지만 실제 이용률은 납골당 보관보다 낮다. 이는 국내 장례문화가 ‘묘의 보존=효’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비싸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수도권 내 12명의 유골함을 안치할 수 있는 평장 이용료는 대략 600만~700만원이다. 수목장으로 치를 경우 나무 한 그루당 값이 500만~600만원가량 든다. 납골당 안치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 장례업계 관계자는 “납골당 안치 비용이 부담되는 사람들을 자연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에서 직접 묘역을 개발해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조 서비스 가입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지적이 일면서 최근 들어서는 맞춤형 상조 상품까지 등장했다. 유족이 고인의 수의와 차량, 상복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럴 경우 최대 100만원까지 경비 절감이 가능하다. 직원 복지 차원에서 장례비의 일정 금액을 회사가 지원해 주는 서비스도 생겨나고 있다. 장례 서비스 전문기업 ‘해피엔딩’은 삼성그룹·현대차그룹 등과 협약을 맺고 맞춤형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덕만 해피엔딩 대표는 “일부 기업은 직원이 상을 당하면 회사 직원을 대신 보내 장례를 돕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대신해 상조업체들에 직원의 장례 일체를 맡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피엔딩은 이와 함께 전국 주요 장례식장 이용료와 상조 서비스 비용, 화장 및 납골당 안치 비용을 모바일 앱에 집어넣은 장례 토털서비스를 조만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박덕만 대표는 “대부분의 유족이 막상 상을 당하면 장례식장·상조업체가 하자는 대로 그냥 따라가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장례와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모바일로 구현해 소비자가 장례준비부터 납골당 안치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현재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e-하늘’(www.ehaneul.go.kr)이라는 장례정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가면 장례 절차, 전국 장례식장, 화장장 위치, 가격, 장례용품 등의 정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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