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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 그린 달빛》의 ‘사극 불패’ 필승 공식

‘남장여자’에 ‘꽃미남 집단’이면 흥행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19(Mon) 17:01:06 | 1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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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신작 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에 뜨거운 반응이 나타난다. 방영 첫 주에 올여름 최대 화제작이었던 《닥터스》와 《W》를 제치고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집계한 TV화제성 드라마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시청률도 1주일 사이에 두 배로 뛰어올라, 첫 주 8%대에서 2주 차에 16%대에 안착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도 호평 일색이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퓨전사극이다. 극 중에서 왕은 아무런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이고 권력은 세도가인 영의정 수중에 있다. 세자 이영(박보검 분)은 영의정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한량으로 살지만, 사실은 문무를 겸비한 인재로, 왕권 회복의 칼을 간다. 여주인공인 홍라온(김유정 분)은 남장을 하고 살다 내시가 되어 궁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세자인 이영과 그 호위무사 격인 김병연(곽동연 분) 등을 만나 가까워지는데, 한편 영의정의 아들인 김윤성(진영 분)이 홍라온의 정체를 알아채고 도우미 역할을 한다는 설정의 ‘예측불가 궁중 로맨스’를 표방한 작품이다.

 

방영 전에는 동시간대 경쟁작인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SBS)에 기대가 모아져서, 방송사 내부적으로도 ‘동시간대 꼴찌만 면하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원작의 인기나 캐스팅 파워 등 모든 면에서 《달의 연인》에 밀렸고, 게다가 ‘응팔’ 징크스까지 있었다. 응팔 징크스란 《응답하라 1988》의 스타들이 그 이후 출연한 작품마다 기대에 못 미쳤던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시작되자마자 시청자들은 《구르미 그린 달빛》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고, 이 초반 기세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박보검은 응팔 징크스를 깬 첫 번째 타자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 KBS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 흥행코드 대입

 

뚜껑을 열기 전의 미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안갯속이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모든 것은 사필귀정인 법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도 이제 와서 보면 필승 공식 흥행코드를 조합한, 애초부터 성공할 수밖에 없는 설정이었다.

 

일단 ‘꽃미남 집단’의 등장이 그렇다. 《선덕여왕》엔 꽃미남 화랑 군단이 등장했고, 《성균관 스캔들》엔 꽃미남 선비 군단이 등장했으며, 《해를 품은 달》에도 왕세자와 꽃선비 등이 등장했다. 아무래도 드라마 주요 시청층이 여성이다 보니 복수의 꽃미남이 등장했을 때 강한 반응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설정도 너무 과하면 문제가 된다.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는 초반부터 꽃미남 군단 목욕신을 선보였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꽃미남 집단 코드로 들이댄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이미 성공한 꽃미남 조합인 《성균관 스캔들》의 구성을 따왔다. 《성균관 스캔들》에선 주인공 꽃미남(박유천)과 노론 집안 한량 꽃미남(송중기), 장발 무사 꽃미남(유아인), 이렇게 3인방이 등장해 박민영을 지켜줬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은 박유천의 위상이고, 진영은 송중기, 곽동연은 유아인에 대응한다. 곽동연은 심지어 유아인과 헤어스타일까지 비슷하다. 창조적이라기보다는 정말 얄밉도록 정확하게 기존의 흥행코드를 대입한 것이다. 거기에 시청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하고 있다.

 

주인공의 성격은 《해를 품은 달》을 비롯한 퓨전사극에 등장한 왕자의 성격과 유사하다. 바로 노론에 맞서 싸우는 정조를 떠올리게 하는 성격이다. 권세가 집단의 견제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인 왕자가 마음속으로 칼을 간다는 설정이다. 그것은 물론 자신의 권력이 아닌 백성을 위한 칼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선 세자가 정약용을 찾아 나서면서 대놓고 정조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이러한 ‘정조 같은 꽃미남 왕자’ 설정도 정해진 흥행공식이다. 한마디로 문무겸전에 의협심까지 갖춘 ‘금수저 꽃미남’인데 마음속엔 상처가 있는 캐릭터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한 장면 © KBS

 

 

 

문근영·박민영 이어 김유정 ‘남장여자’ 계보

 

《구르미 그린 달빛》은 또 하나의 강력한 흥행코드를 장착했다. 바로 ‘남장여자’다. 과거 《바람의 화원》에선 문근영이 남장여자인 신윤복으로 등장했었다. 작품은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고 남장 연기를 잘 소화한 문근영은 그해(2008년) SBS에서 사상 최연소(만 21세) 연기대상 수상자가 되었다. 당시 MBC 연기대상의 송승헌과 문근영이 대비되며, MBC엔 엄청난 비난이, SBS엔 찬사가 쏟아졌다.

 

《성균관 스캔들》에선 박민영이 남장여자로 등장했다. 앞서 《구르미 그린 달빛》이 《성균관 스캔들》의 꽃미남 코드를 이었다고 했는데, 거기에 더해 남장여자 코드까지 그대로 이은 셈이다. 《기황후》에선 하지원이 작품 초반에 남장으로 등장했다. 또 다른 사극인 《밤을 걷는 선비》에선 이유비가 남장여자로 등장했다. 이유비는 견미리의 딸로, 금수저 연기력 논란이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논란에서 벗어났다. 그럴 정도로 이 작품을 통해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이쯤 되면 남장여자는 가히 ‘사극 불패’ 코드라고 할 수 있겠다. 성차별과 남녀분별이 심했던 전통사회에서 남장여자는 여자의 족쇄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남녀 사이라면 불가능했을 이성과의 친밀한 접촉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때 무심한 상대 앞에서 남몰래 ‘심쿵’하는 떨림의 정서를 여성 시청자들이 선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장을 했던 여주인공이 하늘하늘한 여자옷으로 갈아입었을 때의 드라마틱한 변신도(행동거지도 조신하게 변함) 극적인 재미요소다.

 

현대극에서도 남장여자의 성공확률이 높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윤은혜의 인생작이 된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김유정이 《커피프린스 1호점》의 남장연기를 참고했다고 알려졌다. 일본에서 ‘근짱’ 열풍을 만들어낸 《미남이시네요》에선 박신혜가 남장여자를 소화했다. 박한별도 《잘 키운 딸 하나》에서 남장으로 등장했다.

 

현대극에선 여자가 남장했을 때의 드라마틱한 변신이 사극보단 약한 편이다. 사극에선 남장을 하는 순간 여자의 활동반경도 극적으로 넓어진다. 현대극은 이런 요소는 약하지만 어쨌든 무심한 남자의 친밀한 접촉에 가슴 설레는 정서는 똑같이 나타난다. 남남커플이라는 면에서 브로맨스 정서도 있고, 남자처럼 활동하는 여캐릭터에 걸크러시 현상도 있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남장여자에게 불가항력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남캐릭터가 재미와 로맨틱한 환상을 동시에 주기도 한다. ‘너의 조건이 무엇이든 너를 사랑하겠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남장여자 코드가 사랑받기 때문에 《구르미 그린 달빛》이 끝난 후에도 우린 또 다른 작품에서 남장여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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