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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음식인류학] 추수 감사 음식에서는 그 사회가 보인다

한국의 송편, 중국의 월병, 일본의 ‘이키타마 사카나’ 등에 각각 사회의 가치관 담겨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15(Thu) 08:00:38 | 1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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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역사상 어느 시대, 지구상의 어느 지역에나 존재했던 ‘수확 감사의례’의 한반도 버전이다. 인간이 어느 정도 규모의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먹을 것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나면 감사의 마음이 들었을 것이며, 농경사회에선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봄부터 시작된 고된 노동 끝에 일 년 치 식량이 확보된 타이밍, 모처럼의 풍부한 음식과 여유로운 시간에 사람들은 그렇게 식량을 거둘 수 있게 해 준 신적(神的) 존재들에게 감사의례를 바쳤다.

 

이런 감사의례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의례에서만 특별히 장만되는 음식이다. 그 지역에서 나는 주작물을 이용해 다른 때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특정 음식을 만들어서, 자기가 모시는 신이나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바치는 것. 그 음식을 가족과 친척, 그리고 동네 사람들끼리 나누는 것. 여유가 좀 생겼으니까 평소에 챙겨주지 못했던 딱한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는 것. 이것이 수확 감사의례의 메인 포인트이고, 여기에 춤과 노래로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는 일이 함께 진행되었다. 당연히 수확 감사제는 그 사회의 생태학적 조건,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음식이 달라지고 감사를 바치는 대상도 달라지며, 주작물의 수확시기가 다른 만큼 감사제의 시기도 달라진다. 어떻게 다른지 잘 들여다보면, 그 사회 전체가 보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시연한 추석 차례상 © 연합뉴스



한국은 조상신, 중국은 신화적 존재 모셔

 

우리나라에서 ‘추석음식’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송편이다. 사실 송편은 추석에만 등장하는 것이어서 눈에 띌 뿐, 차례상에 오르는 모든 음식이 추석이라는 감사제를 위해 장만되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산지와 평야가 고르게 분포한 한반도의 수확 감사제 음식은 그야말로 육해공군이다. 곡물뿐 아니라 과일·육류·어패류, 그리고 버섯이나 나물 같은 임산물도 중히 쓰인다. 감사를 바치는 대상은 무엇보다도 조상신들이다. 부계혈연공동체가 중심이었던 농경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어촌이나 산촌에서는 용왕이나 산신령 등에게 감사를 바치는, 조금 변형된 의례가 함께 진행되기도 한다.

 

가까운 중국에도 유명한 추석 음식이 있다. ‘중추절(中秋節)’이라고 해서 역시 우리나라처럼 3대 명절 중 하나로 음력 8월15일에 지낸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 의례의 상징적 음식은 ‘월병(月餠)’이다. 밀가루를 돼지기름·우유 등으로 반죽한 껍질 속에 단팥소·고기·해산물·야채 등을 혼합한 만두 소 비슷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견과류를 많이 넣어, 보통은 그 가문의 이름이나 문장이 새겨진 빵틀 속에 넣어 모양을 잡아 구워 만든다. 가운데에 달을 상징하는 달걀노른자를 넣기도 하고, 부잣집에서는 은화를 넣어 나누어주기도 한다. 물론 월병도 우리나라의 송편처럼, 다른 모든 공들인 명절 요리가 등장하는 가운데 ‘달’을 상징한다 해서 중추절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이다. 

 

근대화 이전 시기까지 비교적 흔들림 없이 부계혈연으로 구성된 지역공동체를 지켜왔던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먹고살기에 더 나은 형편에 따라 서로 다른 가문이 함께 살기도 하고, 다수파 가문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공동체의 리더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수확 감사의례의 대상 또한 조상신인 경우도 있지만,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켜준다고 믿어지는, 대단히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신적 존재인 경우가 많았다. 공자(孔子)나 관우(關羽)같이 실존 인물이었지만 구전을 통해 더욱 신격화된 존재, 도교적 전통의 신령들처럼 비(非)인간 신화적 존재 등등. 사회주의 혁명을 거치면서 오늘날 이런 종교적인 부분들은 모두 사라지고 음식과 ‘사자놀이’ 같은 연행만 남았지만 말이다.

 


일본은 부모, 동남아는 아이들을 각각 존중

 

일본의 추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봉(お盆)’절은 양력 8월15일이다. 추수하려면 아직 이른, 더운 시기에 추수감사제 비슷한 것을 지내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문화사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예전엔 한국·중국과 마찬가지로 농경사회로서 음력을 지켰지만, 서구화 물결 속에서 음력을 전혀 쓰지 않고 그 날짜만 남았다고 보는 이도 있다. 또 일본의 주종교인 불교의 큰 행사로 음력 7월15일에 지내는 ‘우란분재(盂蘭盆齋)’가 오봉이며, 수확 감사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우란분재라는 명칭은 산스크리트어인 ‘ullamana’를 한자어로 음역한 것이어서, 이 중에 ‘분’ 한 글자만 특히 의미 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 이 ‘분(봉)’이라는 글자가 칼을 사용해서 둘로 나눈다는 의미와 그것을 접시에 담아 바친다는 의미가 합쳐진 것이므로, 수렵채취 시대부터 전해지는 희생동물을 바치는 의례를 가리키는 말이었을 가능성에 더 주목하고 싶다. 거기에 ‘오(お)’라고, 일본어에서 존경의 뜻을 담을 때 쓰는 접두어가 붙은 것이니, 실제로는 불교가 전해지기 훨씬 이전부터 지켜져 온 수확 감사제의 잔재라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일 듯하다.

 

어떻든 이 오봉의 음식을 보면 또 일본인들이 살아온 방식이 보인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한 세대 이전만 해도 오봉절엔 큰 생선의 입안으로 작은 생선의 머리 부분이 들어간 모양으로 넣어 소금을 쳐 반건조한 후 쪄서 부모님께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 생선을 ‘이키타마(生き?) 사카나(魚)’라고 한다. 이키타마란 ‘살아 있는 신’이라는 뜻으로 부모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중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하나의 성씨를 따르는 부계원리를 지켰지만 실제로는 혈연과 상관없이 능력 있는 사람을 영입해 양자로 삼아 가문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부모, 특히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절대적인 파워를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자식들로서는 ‘살아 있는 신’으로 모시는 마음자세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입속으로 자식인 자기 몸을 던지는 형상이니, 이 음식이야말로 일본 전통사회의 가치관과 사회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따뜻한 기후로 주작물인 쌀을 연중 두어 차례 수확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단 추수감사의 시기가 다르다. 대개는 첫 수확이 있는 5월께 쌀을 이용해 술과 음식을 만들어 감사제를 지낸다. 특히 존중되는 대상은 한·중·일 3국과는 달리 부모나 조상이 아니라 아이들이다. 작물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에 논농사를 하려면 집중적으로 노동을 해야 하므로, 어느 집이나 대체로 아이들이 방치되어 자기들끼리 놀게 된다. 따라서 수확이 끝나고 다음 농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여유로운 시간을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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