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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시대정신과 국책 과제는 다르다

국민의 분노를 깊이 있게 고찰하지 못하고 남발하는 정치인들의 시대정신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22(Thu) 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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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모 언론 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전직 여당 및 야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과 김종인 의원 간의 대담이었다. 둘은 공교롭게도 현재 제3지대를 언급하며 중도 또는 새로운 지대에서 새로운 인물로 대선을 겨뤄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강조하는 인물들이다.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대정신’, ‘제3지대’ 등의 신조어를 내놓는 걸 보면 웬만한 정치인들은 국내 최고의 카피라이터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둘의 대담에서 눈에 띄었던 점은 김무성 의원과 김종인 의원이 공교롭게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격차 해소’에 두었다는 점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결코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 후보로까지 부상했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는 2012년 초부터 양극화 문제를 거론했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 지역 간의 격차 등 지금의 격차 해소에 가까운 키워드를 갖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2007년 MB(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경제 대통령을 부각시키며 성장을 통해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반으로 모두가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최근 들어 안철수 의원이 다시 한 번 시대정신으로 ‘격차 해소’를 강조했기에 신선한 발언은 아니었다.

 

다만, 진부함 또는 신선함을 떠나 시대정신에 대해서 여전히 대선 후보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시대정신이란 미래 세대와 현재 세대의 가치관을 연결하고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짓는 지도자의 철학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즘 부르짖는 잠재적 대선 후보들의 시대정신은 국책 과제 또는 국가적 현안을 떠올리게 한다. 국책 과제는 엄연히 시대정신과 다르다. 지금까지 수많은 대선 후보들이 언급한 시대정신은 국가 개혁, 경제 살리기, 통일․안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과연 그런 키워드가 내년 대선에서도 중요한 시대정신이 될 수 있을까.

 

 


격차 해소와 양극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정신

 

대선 후보들의 시대정신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슬로건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쟁에 뛰어들었던 손학규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이 슬로건을 손학규 후보의 시대정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건, 가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모든 대한민국 근로자 또는 노동자들의 답답한 삶, 그리고 눈치보기식 야근과 억압된 국민들의 삶을 ‘저녁이 있는 삶’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국책 과제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고민과 스트레스를 한 눈에 표현하고 이를 자신의 국정 철학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시대정신의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전 대선 후보는 올해 들어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을 시대정신으로 내세웠고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 분노’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이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은 국가가 풀어야 할 국책 과제이지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시대정신이라고 말하기엔 곤란하다. 아울러, 안철수 의원 역시 국민들이 왜 분노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시대정신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지금 왜 분노하고 있고 왜 중소기업은 여전히 경제민주화 또는 일자리를 부르고 있는지 그 근본 원인을 고민해야 보다 시대정신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유독 격차 해소와 양극화가 왜 문제가 되고 있는지 고민해야 대선 후보 또는 정치인으로서 좀 더 국민들의 삶과 고민에 가까운 시대정신을 제시할 수 있다.

 

국민들은 왜 분노하고 왜 좌절하는 걸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장벽이 일정 부분 놓여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키워드가 바로 2015년부터 모든 젊은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금수저․흙수저 등의 수저계급론’이다. 영어적 표현인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라는 관용어에서 유래된 이 말은 지난해부터 부모의 직업․경제력 등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압도적인 파워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표현했기에 화제가 됐다. 과한 표현이라고 누군가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미 우병우 민정수석 아들의 꽃보직 사례, 그리고 일부 유명대학 및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지원자에게 강요하고 있는 부모 직업란은 모든 젊은이들에게 박탈감과 위압감을 주고 있다. 지난해 모 국내 영화에서는 심지어 ‘그럼 태어나길 잘하든지’ 라는 대사까지 등장했다. 부모의 자본과 권력이 내 삶을 좌우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급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지나친 과장이라고 할지 모르나 이미 국내 고위 공직자 자녀들의 직업 및 국적만 봐도 이런 사항이 과장이 아니라는 건 한 번에 알 수 있다. 상당수 공직자의 자녀 중 군대를 회피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국내 대다수 기업 회장들의 자녀 중 대한민국 국적이 별로 없다는 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항이다. 그리고 국내 유명 대학 로스쿨 및 거대 로펌, 글로벌 경영컨설팅 조직은 현대판 음서제로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즉,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에는 공정함, 정의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다수 국민들은 현재 생각하고 있다.

 

국민들이 분노하며 ‘헬조선’․‘망한민국’ 등으로 부르자 대통령은 직접 8․15 경축사에서 국가를 비하하거나 조롱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정부 및 고위 권력층이라는 걸 그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서적 ‘정의란 무엇인가’는 다소 어려운 정치철학 내용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판매 부진에 빠졌던 이 서적이 6년 전, 130만부라는 놀라운 판매 기록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내자 MB는 다급히 그 해 국정 철학으로 ‘공정사회 구현’을 내세웠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도 가장 큰 국민들의 분노는 ‘정의의 부재’에 있다. 이른바 ‘정의의 부재’에서 모든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분노가 쌓이고 있다는 걸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헬조선․망한민국․개한민국 등은 바로 정의가 존재하지 않고 가진 자들만 파이를 나누기에 유발된 국민들의 한숨 섞인 절규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시대정신으로 정의를 원하고 정말로 필요로 하고 있다. 

 

또 하나, 대한민국에서 지난 3년간 가장 많이 언론에 거론된 부분이 바로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부분이다.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 그리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경주 지진 사태에서도 국민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삶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고 국민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가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는 걸 실감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가장 선명하게 ‘국민의 안전’을 취임 초부터 화두로 제시했다. 12년 전 교섭단체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가 가장 기본적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고 국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고 강조하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힐난했다. 

 

12년 후 이 말이 족쇄가 돼 다시 박근혜 정부에 되돌아올 거라는 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국민들의 마음을 가장 정확히 대변하는 발언인데도 현 정부에서는 오히려 국민의 안전이 과거보다 더 후퇴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메르스 사태, 경주 지진, 북한 핵 위협 등을 지켜보며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외면한다고 느끼기에 국민들이 지금 분노하고 또는 국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는다는 걸 내년 대선에 출마할 정치인들은 새겨들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격차 해소, 양극화, 국가 안보는 모두 국가가 직접 챙기고 풀어나가야 할 국책 과제이지 시대정신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시대정신은 현재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무엇 때문에 좌절에 빠지고 국가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는지 고민하면서 시작돼야 한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생각 없이 안보, 격차 해소, 양극화를 제시하며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 또는 모병제라는 착오적 공약까지 쏟아내고 있다. 정치인들이 가벼운 언행을 할수록 국민들은 또 한 번 분노하고 국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더 깊이 갖는다. 

 

2010년 이후 지난 6년간 국민은 늘 불안해왔고 분노해왔다. 그 이유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진 자들이 파이를 모두 나눠 갖고 언제나 불공정과 편법이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연평도 포격, 세월호 사고, 메르스 사태, 북한 핵 위협, 경주의 연이은 지진으로 국민들은 자신들의 삶이 그리고 생명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걸 지속적으로 실감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정치인들이라면, 그리고 국가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려고 한다면 언론 인터뷰에서 생각 없이 시대정신을 남발하지 말고 제발 깊게 고민하고 지금 국민들이 왜 불안해하고 왜 좌절하고 있는지를 조금 더 고찰하기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시대정신과 국책 과제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올바른 철학을 갖춘 지도자를 정말로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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