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 못 지킨 정부, 올해 담배 세수 13조원 챙긴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9.26 10:30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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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흡연시설 마련으로 간접흡연 막는 ‘분리형 금연제도’ 시행

지난해부터 담뱃값이 기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랐다. 흡연율을 낮춰 국민 건강 증진을 꾀한다는 게 정부가 발표한 담뱃값 인상 이유였다. 그러나 잠시 하락했던 담배 판매량은 가격 인상 전 수준을 회복하는 추세다. 결국 국민 건강은 챙기지 못하고 서민 세금 부담만 늘어났다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담뱃값이 오르면서 담배 한 갑에 붙는 세금은 1550원에서 3318원으로 늘었다.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우면 연간 약 121만원의 세금을 내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걷히는 담배 세금이 올해 13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올해 담배 판매량 추정치(39억7000만 갑)를 토대로 담배 세수를 계산해 보니 13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의 ‘담배 판매 및 반출량’ 자료를 보면, 2014년 6조원대였던 담배 세수는 2015년 10조원대를 넘었다. 만 2년 동안 세수가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올해 예상되는 담배 세수 약 13조원은 2015년 재산세 9조원보다 4조원 더 많고 근로소득세 28조원의 46%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라며 “우리나라 세제가 빈부 격차 해소는 고사하고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소득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기보다는 조세저항이 적은 담뱃세·근로소득세·주민세 인상으로 서민이나 저소득층에게 세금을 가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9월23일 서울 용산구의 한 편의점에서 시민이 담배를 구입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실제로 전체 세금 중 담뱃세 비중은 4.58%로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5~6위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엔 OECD 회원국 중 12위였다. 선진국일수록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담뱃세 비중은 작다. 노르웨이(0.38%)·스웨덴(0.48%)·덴마크(0.60%) 등은 1%를 밑돌고, 미국(1.0%)·프랑스(1.07%)·일본(1.53%) 등도 1%대에 머물고 있다.

 

흡연자의 상당수가 저소득층인 데다 담뱃세는 소득과 무관하게 동일 비율로 징수되기 때문에 서민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실질소득 증가율은 제자리인 가운데 술·담배 지출은 지난해보다 7.1% 증가했다. 특히 담배 소비 지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0.9% 늘어 소비지출품목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국민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내세운 담뱃세 인상이 서민 가계 부담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담뱃값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정부는 흡연량이 줄어 국민 건강 증진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담뱃값이 오르기 이전인 2014년 43억6000만 갑이던 연간 담배 판매량은 지난해 33억3000만 갑으로 떨어졌다. 이를 두고 정부는 흡연량이 줄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정부가 애초 예상했던 담배 판매량 감소비율(34%)보다 10%포인트 낮은 23.7%에 그친 것이다. 게다가 올해 담배 판매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담배 판매량을 36억8000만 갑으로 예상했고, 시민단체는 39억7000만 갑으로 전망했다. 

 

 

 

일방적인 금연구역 확대로 간접흡연 갈등 증폭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올해 금연사업 예산을 지난해보다 10% 이상 줄이기로 했다. 담뱃값이 오른 첫해인 2015년 국가금연서비스 사업 예산은 2014년(113억원)보다 약 1300억원 늘어난 1475억원이 편성됐지만 올해 1315억원으로 줄었다. 금연정책개발 및 정책지원도 50% 축소됐고, 금연치료지원 및 학교흡연예방사업이 각각 36%, 25% 감소했다. 한 담배회사 관계자는 “담배 판매량은 가격 인상 이전 대비 80~90%로 회복했다”며 “결국 국민 건강은 챙기지 못하고 서민의 세금 부담만 가중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금연구역을 꾸준히 늘려왔다. 2012년 3100여 곳이던 서울의 실외 금연구역은 4년 사이 5배 이상 늘어 현재 1만6000곳이 넘는다. 그러나 실외 흡연구역은 33곳에 불과하다. 흡연자 김세복씨(38)는 “흡연시설은 없고 금연구역만 늘리면 흡연자는 길거리나 골목에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며 “결국 국민 사이에 갈등만 커지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금연구역 확대 정책 때문에 비흡연자와 흡연자 사이에 갈등만 커지고 있다. 흡연구역을 제외한 곳은 모두 금연 지역이라는 시각과 금연구역이 아닌 곳은 흡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충돌하는 것이다. 

 

금연정책의 실효성과 사회적 갈등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을 모색할 시기다. 비흡연자 곽연주씨(40)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으려면 흡연시설을 늘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자연스럽게 분리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일본·호주 등 선진국은 ‘분리형 금연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분리형 금연’이란 금연구역 지정 시 최소한의 흡연 공간을 설치해 흡연자의 흡연권을 보장해 주면서 비흡연자들을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하는 정책을 말한다.

 

우리보다 먼저 공공장소에서의 금연 정책을 시행한 일본에서는 흡연 구역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최고 20만원이 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흡연자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었던 이유는 거리 곳곳에 흡연 공간을 만들어 흡연권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기자가 찾은 일본 오사카(大阪) 중심상가 지역에서도 곳곳에 마련된 흡연시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시설에는 재떨이·공기정화기·자동문이 설치돼 있어 흡연자들이 수시로 이용한다.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거리에 담배꽁초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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