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만 지진 위험지대? 서울이 더 위험하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9.26 13:30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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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지질硏 보고서 전문 입수·분석…“서울 지나는 추가령단층, 양산단층과 같은 1등급”

대한민국이 흔들렸다. 명절 연휴를 앞둔 9월12일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한반도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강력한 규모였다. 울산·부산 등 주변 대도시는 물론 수도권에서도 지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지진이었다. 이후 열흘간 423회(9월22일 17시 기준)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여진이 수 주에서 수개월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는 곧바로 지진 공포에 빠졌다. 비록 이번 지진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더 큰 지진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지진의 전조 현상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시민들은 지진 행동요령 등을 숙지하며 일본 정부의 재해대책까지 직접 번역해 배포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특정일에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거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지진에 대한 공포를 더욱 키웠다. 어찌 됐든 ‘지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불감증 대신 위기의식이 퍼졌으니 뒤늦게라도 다행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진 발생 이후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진은 예측이 어렵다” “대지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는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규모 6.5 이상의 지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규모 7.0의 지진에도 버틸 수 있도록 원전 내진 기능을 보강하겠다는 긴급처방까지 내놨다.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해선 안 되지만 무조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사진은 9월12일 발생한 강진으로 경북 경주시의 한 유치원건물에서 천장이 주저앉은 모습이다. 정부는 이번 지진 발생 가능성을 담은 내용의 보고서(오른쪽 하단)를 2012년 제출받고도 공개하지 않았다. © 뉴스1


서울에 더 큰 규모 활성단층 지나간다

 

경주 지진 발생 이후 지진 가능성과 관련된 정부의 대응 방식에 대한 비판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북 경주 지역의 지진 가능성을 언급한 보고서를 제출받고도 비공개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경주와 포항·울진·부산 등에 걸친 양산단층대와 울산단층대에 있는 소단층들이 활성단층이라는 결론을 낸 연구용역 보고서다. 활성단층은 말 그대로 단층이 움직이면서 지진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세계 지진의 90%가 이런 지역에서 발생한다. 2009년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은 20억원을 들여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활성단층 연구를 의뢰했다.

 

시사저널이 2012년에 완성된 이 보고서 전문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영남권뿐만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지진 가능성도 큰 것으로 분석됐다. ‘활성단층지도 및 지진위험 지도 제작’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는 총 966쪽으로 방대한 연구 자료가 실려 있었다. 이 보고서에선 양산단층대와 함께 추가령단층대를 1등급으로 분류했다. 규모가 크고 폭도 넓어 지진 발생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양산단층대는 총연장이 190km, 추가령단층대는 345km에 달한다. 추가령단층대는 이번 지진이 일어난 경주 지역의 단층대보다 규모 면에서 더 크다.

 

특히 보고서에는 서울을 지나는 추가령단층대 또한 활성단층임을 규명했다고 명확히 서술돼 있다. 추가령단층대는 북한 함경북도 원산에서부터 충남 지역까지 동에서 서로 비스듬하게 지나고 있다. 조사 결과, 추가령단층대에 속하는 경기도 연천군 신탄리역 지점과 대광리 지점의 단층은 운동이 가장 활발한 ‘확실도 1단계’로 분류됐다. ‘확실도 1단계’는 활성단층이 확실한 곳으로, 단층의 운동이 명확히 관찰되는 곳을 의미한다. 활성단층으로 추정되는 ‘확실도 2단계’보다 높은 등급이다.

 

전문가들 또한 인구가 밀집한 서울 부근을 지나는 추가령단층대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태섭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수도권에도 단층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는데, 실제로 1518년 한양에서 지진으로 기왓장이 떨어져 사람이 다쳤다는 기록이 있다”며 “정부가 의지를 갖고 20~30년에 걸쳐 전국의 단층 분석을 실시해 잠재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1437년·1456년·1466년·1518년 등 서울에선 크고 작은 지진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그동안 서울에서 발생한 지진 대부분은 추가령단층 활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200년 동안 지진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지진정지기(seismic gap)에 해당하지만, 그만큼 지진 에너지가 대량으로 쌓여 있기 때문에 언젠가 이 에너지가 약한 단층을 통해 방출할 수 있다. 서울 또한 지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서울서 6.5 지진 나면 사상자 11만 명

 

그렇다면 서울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피해 규모는 어떨까. 국민안전처가 지난 6월 추가령단층대 위의 중랑교를 진앙지로 설정해 지진 피해를 예측한 결과, 규모 6.0의 지진이 일어날 경우 사망자 1433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규모의 피해는 2011년 소방방재청 방재연구소가 내놓은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다. 조사 결과, 서울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하면 1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 중구(북위 37.6도, 동경 127도)를 진앙으로 한 6.5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수도권에서 사망 7726명(서울 7394명, 경기·인천 332명), 부상 10만7524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건물 파괴 등에 따른 이재민도 서울 9만2782명 등 수도권에서 10만4011명이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물은 수도권에서 2만7582동이 완전히 파괴되고, 4만여 동이 반파(半破), 51만7200여 동이 부분 손상을 입는 것으로 분석됐다.

 

비슷한 조사는 2009년에도 이뤄졌다.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이 발표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서울 남서쪽 10㎞ 남한산성 인근(경기 광주 초월읍)에서 경주 지진과 비슷한 규모 6.0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 영향권에 놓인 서울(993만81112명 기준)에서만 79명이 사망한다. 부상자와 이재민도 각각 2179명·3100명 발생한다. 건축물 역시 30동이 붕괴 전파하고, 108동이 비붕괴 전파한다. 광주가 속한 경기도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지진에 노출된 475만9830명 중에서 79명이 무너진 건물이나 벽에 깔려 목숨을 잃는다. 부상자·이재민 수도 서울 못지않아서 1938명과 2541명을 기록한다.

 

같은 지역에서 진도 7.0 규모의 강진이 발생할 경우에는 아비규환 상태에 빠진다. 서울·경기·인천을 비롯해 전국에서 67만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측정됐다. 서울에서만 42만 명(사망·부상 합계)으로 추산됐다. 경기 20만여 명, 인천 4만5000여 명 등 진앙지 인접 지역에 인명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예측됐다. 나머지 지역은 239명으로 나타났다. 이재민은 서울 29만 명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47만여 명이, 재산피해는 전국 664만여 동의 건물 중 93만 채가 파손됐다. 서울시에선 총 67만여 동 중 76%인 51만1000여 채의 건물이 붕괴 및 부분손실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스, 전력, 상·하수도 같은 생활기반시설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경주 지진 이후 세간의 관심은 더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느냐에 쏠렸다. ‘활성단층 지도 및 지진 위험 지도 제작’ 보고서를 보면, 활성단층 조사 결과로부터 최대 발생 가능한 지진의 규모가 양산단층은 6.8~7.6, 울산단층은 5.8~8.3까지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울산단층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규모 5.8에서 8.3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규모가 8 이상 되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만 배가 넘는 큰 에너지를 방출해 지상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된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은 아주 극단적인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을 때 적용되는 얘기다. 보고서에 언급된 수치 ‘8.3’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값으로 울산단층과 연결된 양산단층이 모두 깨졌을 때를 가정한 경우다.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정도의 힘이 가해졌을 경우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규모 9.0인 동일본대지진(2011년)보다 2배 이상의 단층 이동이 발생한다는 시나리오가 적용됐다. 사실상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규모 7.0 이상의 지진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일본 지진조사위원회 히라타 나오시(平田直) 도쿄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자료를 보면 한반도에서 100년, 200년마다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다”며 “앞으로 한국에서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역시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과거 역사 기록을 보면 규모 7 정도까지 발생한 전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기관에선 규모 6.5 이상의 지진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헌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장은 “6.5 이하의 지진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한반도 대지진의 전조(前兆)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최소 500년 동안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입장이다. 고윤화 기상청장 또한 “답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지금까지 봤을 때 여진으로 보면 3.5~4.0 규모의 여진이 날 수도 있지만 6.5 이상은 가능성이 적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에 대해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지진은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보수적으로 평가해야지, 낙관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9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경주 지진 대응과 관련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원전 때문에 지진 발생 가능성 숨겼나

 

정부는 경주 지진 가능성, 강도 등이 담긴 연구 결과를 보고받고도 지진 지도 제작은커녕 보고서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왜 지진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은폐하려 했던 것일까. 정부는 조사 결과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9월2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나라 활성단층 개수가 450개 이상인데 25개를 조사한 것으로는 지도(활성단층 지도 및 지진위험 지도)를 만들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그나마도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단층 450개를 ‘활성단층’으로 잘못 언급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면 보완해야 함에도 국민안전처는 추가 연구는 물론 해당 단층에 대한 모니터링 작업도 하지 않았다. 최근 경주 지진이 발생한 이후에야 2017년부터 25년간 525억원을 투입해 한반도 활성단층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2017년(15억7500만원)부터 경북 등 지진 빈발 지역, 인구밀집 대도시부터 우선적으로 활성단층 조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정부의 이 같은 태도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나 원자력학계의 반대로 보고서가 비공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보고서가 제출된 시점으로부터 2년 뒤인 2014년엔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대한 사업 승인이 떨어졌다. 한수원은 원전과 경주 방사성물질폐기장(방폐장) 건설 전 실시한 ‘활동성 단층’에 대한 조사 결과 공개를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설계사·제작사의 경영 정보 등 영업상 기밀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국회의 한 전직 보좌관은 유의미한 경험을 들려줬다. 정부가 경주 방폐장 건설 당시 지질 분석 자료 등이 포함된 보고서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것이다. 의원실에서 자료제출을 요구해도 비공개라며 버티다가 의원이 직접 상임위원회 의결을 거쳐 요구하자 ‘열람’만 허용했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이 보좌관의 주장에 따르면, 암반분석 결과 보고서 초안에는 “부지 안정성 확보가 불가능하므로 사일로(핵 물질의 지하 저장고)의 기본계획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최종 보고서에선 이 부분이 삭제됐다. 이 같은 내용이 밝혀지자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현 새누리당 의원)은 “기술적으로 보완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 보좌관은 최근 불거진 활성단층 문제에 대해서도 “방폐장 당시와 마찬가지로 원전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수원과 원자력학계의 파워가 작동했을 것”이라며 “지진이 발생해도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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