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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리더십] 브렉시트의 원조는 헨리 8세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 경영연구원장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1(Sat) 07:00:36 | 14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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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1491~1547)는 유럽의 변방 섬나라 잉글랜드를 로마 교황이 주도하는 대륙의 종교적 질서에서 분리시키고 절대왕정을 수립하는 정치사회적 개혁을 단행해 후일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발전하는 초석을 놓았다. 변덕스러운 성격에 평생 6번 결혼하고 2명의 아내를 처형했다.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는 종교개혁도 자신의 이혼문제로 촉발시킨 문제적 인간이었지만 영국을 근대 국가로 성장시키는 기반을 닦았던 유능한 정치가였다.

 

 

로마 교황 입지 약화…헨리 8세, 개혁 추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초석을 놓은 헨리 8세의 초상화

기원전 55년 8월26일 로마 장군 카이사르 휘하의 선박이 브리타니아 해안에 도착하면서 대영제국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로마군은 론도니움(후일의 런던)에 군단기지를 설치했고, 야만 상태의 토착 켈트족 일부는 로마에 저항하다가 스코틀랜드·아일랜드로 쫓겨났고, 다른 일부는 로마의 지배를 받아들이면서 문명화가 시작됐다. 5세기에 서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로마군이 철수하면서 생겨난 군사적 공백에서 켈트 부족 간 내전이 시작됐다. 남부 켈트족은 현재 독일 지방에 있던 게르만 계열의 앵글로족과 색슨족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일종의 용병으로 참전한 앵글로-색슨은 기존의 토착부족을 제압하고 정착하면서 왕조를 성립시켰다. 주객이 전도된 브리타니아는 앵글로족의 나라인 잉글랜드로 불리게 된다. 

 

이후 1066년 북유럽 게르만 계열로 프랑스에 근거지를 뒀던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침공해 노르만 왕조를 수립하면서 잉글랜드는 본격적으로 중세 봉건제 단계로 발전한다. 노르만 왕조와 프랑스 간의 영토분쟁은 백년전쟁(1337~1453)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일단락되고, 이어서 영국은 귀족들 간의 내전인 장미전쟁(1455~1485)에 돌입한다. 붉은 장미 문장의 랭커스터 가문 출신 헨리 튜더가 흰 장미 문장의 요크 가문에게 승리한 후 상대방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면서 헨리 7세로 튜더 왕조가 출범한다. 

 

내부를 안정시킨 헨리 7세는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장남 아서를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 통일왕국을 수립하고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에스파냐 페르디난드 2세의 딸인 캐서린과 결혼시킨다. 그러나 결혼한 다음 해에 병약한 아서가 세상을 떠나면서 차남 헨리 8세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고, 정치외교적 고려에 따라 형수였던 캐서린을 아내로 맞이한다. 

 

1509년 18세에 즉위한 헨리 8세는 자유분방하고 다재다능한 청년으로 국내외적으로 안정된 권력기반에서 통치를 시작한 행운아였다. 그러나 정치적 안정의 필수요소인 왕자의 부재로 헨리 8세의 개인적 삶과 잉글랜드의 정치는 격랑에 휩싸인다. 연상의 캐서린 왕비는 아들 2명을 포함해 6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딸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아기에 사망했고, 나이가 들면서 출산이 어려워졌다. 헨리 8세는 이혼을 결심하고 당시 교회법에 따라 교황에게 승인을 요청했으나, 교황은 강력한 후원자였던 에스파냐 출신 왕비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헨리 8세는 1531년 교황의 승인 없이 캐서린과 이혼 후 앤 불린이라는 궁녀와 결혼하고 1534년에는 수장령(首長令)을 선포해 국왕이 직접 교회의 수장이 되는 성공회를 출범시키면서 영국 교회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정교일치 체제를 확립했다.

 

세속의 황제가 교회의 수장을 겸하는 기독교의 정교일치 체제는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313년 기독교 공인으로 시작돼, 동로마 지역에서는 비잔틴제국이 1453년 패망하기까지 유지돼 왔다. 그러나 서로마 지역에서는 800년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교황에게 영지를 기증하고 황제의 관(冠)을 받으면서 정치 수장 황제와 종교 수장 교황이 병립해 왔다. 중세에 교황권이 강해지면서 황제를 비롯한 세속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으나 세속과 종교의 상호 간 독자영역은 인정하고 있었던 전통에 헨리 8세는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는 르네상스에 이어 1450년대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발명이라는 기술혁신이 발화점이 돼 전개된 대륙의 종교개혁으로 교황권이 급속히 약화되던 시대적 흐름과도 연관성이 있었다. 스위스의 츠빙글리는 1516년부터 독자적 성서 해석에 기반한 설교로 명성을 얻고 있었고,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교회 재산 민간 이전·정교 분리 등 개혁 추진

 

대륙에서 확산되는 종교개혁의 흐름으로 로마 교황의 입지가 약화되는 와중에 헨리 8세는 신속하게 정치사회적 개혁을 추진했다. 국왕이 성직자를 임명하고 성직자들에게 왕과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따르게 해 세속법을 로마 교회법의 우위에 두었고, 교회와 수도원의 재산을 몰수해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켰다. 당시 막대한 토지와 자산을 보유한 800개 이상의 수도원은 세속의 왕권이 미치지 않는 로마 교황의 실질적인 직할 영지였다. 몰수한 재산을 왕권 지지 세력에게 분배해 충성심을 확보하는 한편, 빈민법과 실업지원책을 발표해 성공회를 통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신체 건강한 빈민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헨리 8세는 첫 번째 왕비 캐서린과 이혼 후에도 5번을 결혼해 2명과 이혼하고 2명을 처형하는 개인적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 1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이 장성해 후일 에드워드 1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로 왕좌에 올랐으나 모두 후손을 남기지 못하면서 튜더 왕조(1485〜1603)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이혼이라는 개인적 동기로 시작된 로마 교회와의 결별은 당시의 시대적 조류인 종교혁명의 흐름을 타고 대륙의 종교적 질서를 이탈하는 일종의 브렉시트(Bl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였다. 결과적으로 정교를 분리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교회 재산을 민간으로 이전시켜 산업 분야로 유입시키는 개혁이었다. 그 결과, 잉글랜드는 중세 봉건시대를 벗어나 근대 절대왕정으로 발전한다. 헨리 8세가 뿌린 씨앗은 그의 둘째 딸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결실을 맺어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대영제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한다.

 

헨리 8세는 극적인 삶과 종교적 갈등, 정치적 대립으로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드라마, 연극, 영화의 단골손님으로 대중적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정치가로서 그의 통치기간은 영국의 근대를 형성한 분기점이었고, 역대 영국 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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