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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리》가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리더 부재

클린턴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우리에게 영화로 보이지 않는 이유

허남웅 영화 평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1(Sat) 16:00:36 | 14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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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자연재해라 어느 정도 피해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후의 대처가 문제였다.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는 불통이었고, 국가재난 주관 방송사는 신속한 정보 제공과는 무관한 보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국민은 우왕좌왕하며 불안에 떨었다.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한국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풍경은 익숙하다. 이젠 ‘외양간’을 고칠 때도 되었건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시스템은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때마침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설리》)을 보고 있으면 한국 사회에 부재한 그 ‘무엇’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2009년 1월15일 미국 뉴욕 라과디아공항을 출발한 US항공 1549편 여객기가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한다. 양쪽 엔진에 손상을 입은 여객기는 뉴욕 도심 위를 아슬아슬하게 선회하다 센트럴파크 인근 허드슨강에 비상 착륙을 시도한다. 결과는? 강에 불시착한 비행기 탑승객 155명 전원이 생존했다. 전 세계 언론은 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기적을 이끈 여객기의 기장에 주목한다.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영화 《설리》의 비행기 승객들이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뉴욕, 그곳에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이 실존인물 역을 영화에서 톰 행크스가 맡았다. 설리는 언론에 의해 영웅으로 대서특필되었지만, 미국의 국가운수안전위원회는 기장의 선택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며 그를 청문회에 제소했다. 비행기 사고 당시를 자체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보니 인근 공항으로 무사 회항이 가능했다는 것. 운수안전위원들은 설리를 상대로 위험천만하게 강에 불시착한 이유를 따져 묻는다.

 

《설리》를 연출한 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이오지마(硫黃島)에서 발생한 전투를 각각 미군과 일본군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상 2006)를 연출한 적이 있다. 《설리》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엔진 사고 이후 설리 기장이 조종석에서 취한 일련의 행동을 두 차례 반복한다. 사고 당시 실시간으로 한 번, 청문회의 시뮬레이션과 비교하는 차원에서 또 한 번 제시하며 설리의 판단이 옳았는지 관객이 결정토록 한다.

 

결정이 어렵지는 않다. 설리의 판단은 유효적절했다. 운수안전위원회가 설리의 판단에 딴죽을 걸었던 것은 엔진 사고의 책임을 그에게 넘겨 국가가 보상해야 할 액수를 줄여보자는 심산에서였다. 운수안전위원회는 설리의 판단에 대해 이렇게 걸고넘어진다. “엔진 사고 즉시 항로를 인근 공항으로 잡았으면 무사 착륙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허드슨강으로 향했나요?”

 

“우린 모르고 당했습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역사상 최저고도에서 양쪽 엔진을 잃을 거라고 알려주지 않았죠.” 설리의 답변이다. 여기에는 행간이 숨어 있다. 국가운수안전위원회의 지적처럼 엔진 사고와 동시에 인근 공항으로 향했다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그런 비상 상황에서, 더군다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즉각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리가 유일하게 믿었던 건 40년의 비행 경험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잠시 위축됐지만, 몸과 마음을 추스른 설리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감에 의존, 강에 비상 착륙하는 것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확신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도 모두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은 설리가 오랜 비행시간 동안 터득한 기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설리는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후 150명의 승객과 5명의 승무원 모두가 무사히 탈출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행기 밖으로 피신했다.

 

영화 《설리》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한국, 이곳에는 리더가 부재했다

 

설리가 청문회에 참석하자 그를 지지하는 동료는 그에게 힘을 실어주며 이런 얘기를 한다. “비행기와 관련해서는 가장 기분 좋은 소식이었어요.” 안 그래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청문회에 출석하기 전 설리가 빌딩 밖을 내다보며 뉴욕 도심에 비행기가 추락하는 상상으로 진저리 치는 장면을 부러 노출한다. 

 

여전히 대다수의 미국인은 9·11 테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와 같은 정신적 외상이 더욱 심해지는 상황을 막는 것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 여객기가 허드슨강으로 하강하는 것을 지켜본 뉴욕 시민들은 9·11의 악몽을 떠올리며 긴장했지만, 테러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안도했다. 무엇보다 9·11 이후 2008년도에 발생한 금융위기를 비롯해 안 좋은 뉴스로 가득했던 미국인들에게 ‘허드슨강의 기적’은 희망을 주는 일이었다.

 

할리우드 작품이지만, 《설리》를 보는 한국인의 심정은 남다르다. 영화가 단순히 영화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안전과 관련한 비극이 한국에서는 현재형으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인양되지 않은 채 바닷속에 수장된 상태다. 지진은 또 어떤가.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4.5의 여진이 다시 경주를 강타했지만, 안전에 대한 조치는 단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설리》에 주목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혼란에 빠지지 않으며,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인물은 정말 뛰어난 위인입니다. 영화에서 설리의 행동을 보는 것 자체로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얘기를 전해 들은 실제 인물 설리는 공을 구조 활동에 이바지한 모든 이들에게 돌렸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자신들이 할 일을 대단히 잘 해냈어요. 그게 우리 모두의 생명을 구한 거죠. 단결된 모습이 있었기에 그날의 비행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해요.”

 

허드슨강의 기적은 설리를 비롯해 탑승객 전원의 침착한 대응과 시민들의 협조로 이뤄진 것이었다. 첫 구조선은 4분도 채 되지 않아서 도착했다. 1200여 명의 뉴욕시 구조대원들과 해안경비대는 잠수부를 동원해 구조작업에 나섰다. 구조용 보트와 130명의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7대의 출근 보트도 구조에 합류해 승객들을 배로 옮겼다. 이는 불과 24분 동안 이뤄진 일이었다. 더는 뉴욕에 비극이 생기기를 원하지 않았던 시민들은 설리를 리더로 안전이라는 목표 아래 책임감으로 하나 되어 기적을 일구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 한국의 지금 뉴스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기상청의 지진 대응 매뉴얼 중에는 ‘밤에는 장관을 깨우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는 보도였다. 이런 뉴스도 있었다. 잇따라 발생한 경주 지진 관련 정부의 대응이 부실하다는 반응에 대해 국민안전처 장관은 “재난 대비 매뉴얼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의 분노를 불렀다. 리더들이 가장 먼저 빠져나간 한국호(號)에서 우리의 안전은 대체 누가 책임지는 것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설리》가 우리에게 판타지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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