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충족 안 되면 백남기 부검 영장은 무효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9.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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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부검 안 된다’ 전제한 백남기씨 부검영장 분석

경찰이 직격으로 쏜 물대포를 맞아 사망한 고(故) 백남기씨에 대한 부검영장(시신부검이 포함된 압수수색영장)이 9월28일 발부됐다. 9월25일 한 차례 기각된 이후다. 영장 발부에 앞서 수사 당국이 필요하지도 않은 백씨의 부검을 통해 백씨 사망의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백씨를 부검할 의료적 필요와 유족 동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의료·법률전문가는 “백씨의 사인(死因)이 의료기록과 물대포를 직사한 영상 등을 통해 입증됐다. 부검은 사인이 잘못됐거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을 때만 필요한 것”이라면서 부검영장의 요청과 발부 모두 잘못됐다는 견해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부검영장 발부를 결정했다. 수사 당국의 손을 일차적으로 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론 수사 당국을 일방적으로 편든 게 아니다. 법원은 영장 발부와 함께 수사 당국의 ‘강제부검’ 시도에 제동을 거는 조치를 했다. 영장 발부에 ‘조건’을 포함시킨 것이다. 법원의 주장대로라면 ‘조건부’ 영장 발부다.

 

부검영장에 전제된 조건은 네 가지다. △부검 장소는 유족 의사를 확인하고 서울대병원에서 부검을 원하면 서울대병원으로 변경할 것 △유족이 희망할 경우 유족 1~2명, 유족 추천 의사 1~2명, 변호사 1명의 참관을 허용할 것 △부검 절차 영상을 촬영할 것 △부검 실시 시기·방법·절차·경과에 관해 유족 측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이다. 

 

ⓒ 시사저널 최준필


“사망 원인 등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하되, 부검의 객관성과 공정성·투명성 등을 제고하기 위해 부검의 방법과 절차에 관하여 구체적인 조건을 명시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가 설명한 조건부 영장 발부 이유는 이랬다. 

 

영장 발부에 조건을 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법적 효력을 낼까.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조건들이 사실상 유족 동의 없이 강제부검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많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CBS를 통해 “조건부 영장의 핵심은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경의 영장 집행이 불법이라는 것”이라면서 “그 불법적 영장 집행을 통해서 어떤 증거가 확보되면 위법 수집 증거이기 때문에 우리 현행법과 판례에 따라서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견해를 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같은 의견을 냈다. 조건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부검영장 자체가 무효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영장은 허가장이다. 즉, 강제수사를 하는 것을 허가해 준다는 것이다. 허가의 조건이 붙을 경우 조건이 붙은 채로 유효하다”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조건이 중요한 부분일 경우 이행하지 않으면 영장 자체가 무효가 돼 버린다”고 분석했다.

 

 

"법원이 검경 눈치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


법원이 조건부 부검영장을 발부할 바엔 차라리 기각하는 게 낫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건을 다는 것은 혼선의 우려가 있다. 조건을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의적 해석이 동반되면 영장 자체는 발부됐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유족 동의 없는 ‘강제부검’의 길을 터줄 수도 있다. 

 

이정렬 전 판사는 오마이뉴스 기고를 통해 “불명확한 영장 때문에 많은 분들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적법한 행동인지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 그래서 (조건부 부검영장은) 분쟁을 조장하는 영장”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의문은 법원이 결국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눈치 보기’ 결정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백남기씨 변호인 이정일 변호사는 “이런 결정을 내리며 법원도 고민했을 것이다. 그냥 조건 없이 영장을 발부해 버리기엔 여론이 무섭기에 눈치 보기를 한 것 같다”면서 “법원이 내린 비겁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백남기씨) 유족이 이런 조건을 해 줬는데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식으로 책임을 유족에게 떠넘길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유족에게 백씨의 부검을 허락하도록 강요하는 모양새다”라고 지적했다.

 

조국 교수도 “법원에서는 검경에 대해 일종의 눈치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양측의 눈치를 보면서 절충수를 던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안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한편 부검영장 공개 여부를 두고 또 다른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검찰이 수차례 공개요구에도 조건부 부검영장의 전체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법원이 설명한 ‘네 가지 조건’이 영장에는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기재돼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변호인단과 유족도 법원과 검찰의 설명, 언론보도만 참고할 뿐 부검영장의 전부를 정확히 읽어보지 못한 상황이다.

 

한상희 교수는 “부검영장의 정확한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안다. ‘조건부’에 대해서 법원이 영장에 모두 적시해 놓은 게 아니라 일반인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면서 “부검영장의 내용을 알아야 정확한 법적 검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백남기씨 변호인단은 9월30일 오전 검찰에 부검영장 내용 전체에 대한 열람·등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정일 변호사는 “부검을 하는 데 있어 영장 내용 확인은 최소한의 기본권으로 허용돼야 한다”면서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조건’이 유족과 협의해 실시하라는 취지라면 유족들의 절차적 기본권의 내용이므로 무엇을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인지 등을 알기 위해서라도 영장에 대한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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