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입원 공화국’은 이제 없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10.0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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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강제입원’ 정신보건법 관련 헌법소원에 ‘헌법불합치’

사법시험 폐지에 대해 헌법재판소(헌재)가 ‘합헌’이라고 발표한 9월29일은 또 하나의 중요한 헌재 결정이 나온 날이다. 본인 동의 없이 정신질환자 입원을 가능하게 한 정신보건법 24조에 대해 헌재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재는 이 법이 해당 조항을 악용하는 경우에 대한 보완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이 상위법인 헌법에 맞지 않다는 사실상의 위헌 결정이다. 다만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해당 법에 대해 잠정적으로 효력을 인정하고, 입법부가 법률을 개정하도록 할 때 내리는 헌재의 판단이 ‘헌법불합치’다.  

 

이 결정은 사법시험 이슈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헌재가 정신보건법 24조에 내린 ‘헌법불합치’는 다른 사안 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중요한 결정이었다. 

 

특히 중년 남성 A씨(48)와 같은 정신질환 강제입원 피해자에게는 더 그랬다. A씨는 애초에 정신질환자가 아니었다. 사람과 쉽게 친하게 지내지 않는 성격 탓에 사회생활에 조금 어려움을 느끼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인 A씨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간 의료 수송을 활용해 아들을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려 했다. 

 

이 과정을 병원은 도왔다. 이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는 아들과 해야 할 면담을 아버지가 대신 작성하도록 했다. 그렇게 강제로 들어간 정신병원. A씨는 6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곳을 나올 수 있었다. A씨는 병원과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줘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 연합뉴스

A씨처럼 정신보건법이 악용돼 피해를 본 사례는 그동안 다수 보고됐다. 10월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09년 1월1일부터 2014년 12월31일까지 정신보건시설 인권침해 관련 진정 접수 건수는 총 1만여 건으로, 동일한 기간 전체 진정 접수건수(5만4059건)의 18.5%를 차지했다.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이하 정피모)라는 모임도 있을 정도다.  

 

한국이 정신질환자를 부당하게 강제입원시키는 사례가 많다는 점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13년을 기준으로 정신의료기관에 입원 중인 환자는 8만462명이었다. 이중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입원된 환자는 전체의 73.5%에 달했다. 이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다. 외국의 경우 강제입원된 정신질환자는 10~30% 수준에 불과하다.

 

정신병원 강제입원 피해자를 만드는 법의 허점은 어디에서 생길까. 정신보건법 24조는 환자의 의사능력과 정신과 치료 정도에 상관없이 이들의 가족 등 보호자 2명이 입원을 의뢰하면 전문의 한 명의 동의만으로도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다보니 병원의 매출을 높이려는 전문의와 강제입원을 시키려는 2명의 보호자들이 합의만 하면 사실상 그 누구라도 정신질환자로 규정돼 병동에 갇힐 수 있다. 

 

정신병원 강제입원 피해가 커진 데는 정신보건법 24조의 퇴원과 관련된 조항 탓이기도 하다. 강제입원 당한 환자가 막상 퇴원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법은 정신질환자의 입원 계속 여부를 입원한 뒤 6개월 뒤에서야 판단하도록 했다. 결국 일단 강제로 들어오면 최소 반년은 갇혀있어야 하고, 반년이 지나더라도 또 다시 자신을 입원시킨 전문의에게 퇴원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구조다. 

 

문제가 된 정신보건법 24조는 1996년 시행됐으니 이미 20년이 지난 법이다. 2015년까지 피해 당사자와 인권단체․국가인권위원회의 숱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개선되지 못했다. 국회에서는 2006년부터 2015년 초까지 더불어민주당 김춘진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일부의원들이 수십 회에 걸쳐 개정안을 제안됐지만 계류됐다. 헌법소원도 2015년까지 10여 차례 가까이 제기됐지만 모두 ‘각하’ 처리됐다. 법령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은 문제 개선의 원년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재가 정신보건법의 허점을 인정했고 정신보건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본 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에 따르면 이제 환자가 본인이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을 때만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될 수 있다. 최대 입원 기간도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어든다. 환자가 입원하고 2주가 지난 뒤에 소속이 다른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이 일치된 소견을 보여야 정신병원에 입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신병원 강제입원 문제를 현실적으로 개선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요양병원들이 정신질환자를 데리고 있으면 매출이 상승하는 상황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정신병원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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