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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항공 마니아’ 김정은의 첫 에어쇼 공개 노림수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9(Sun) 15:00:34 | 14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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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말 북한의 강원도 원산에서는 에어쇼가 열렸다. 수천 명의 주민은 물론 해외에서 찾아온 관련 전문가와 마니아들에겐 진기한 행사였다. 폐쇄적인 체제로 알려진 북한이 개최한 첫 에어쇼란 점에서다. 몇 백 명 규모인 외국 참관자들을 놀라게 한 건 이 자리에서 선보인 북한의 항공기였다. 최신 모델을 선보이며 뽐내는 게 아니라 골동품에 가까운 옛 소련 시절 생산된 기종 등을 등장시킨 것이다.

 

소련제 미그-29 펄크럼 초기모델과 수호이-25 전투기가 관중 위로 날아다녔고, 고려항공의 노후기종들도 선회비행을 했다. 캐세이 퍼시픽의 조종사로 일하는 애슐리 워커는 활주로에 있는 쌍발 프로펠러기인 안토노프AN-24를 지목하며 “이 같은 비행기가 실제로 움직이는 건 세계 어디에 가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AP 등 현장취재 외신은 전하고 있다. “마법과 같고 과거로 온 기분”이란 분위기까지 소개했다. 미국 휴스사의 MD-500 군용헬기도 줄지어 비행해 눈길을 끌었다. 한때 우리 군의 주력 헬기 역할을 하던 점을 노려 게릴라전 등에 써먹기 위해 북한이 1980~90년대 미국의 감시망을 피해 몰래 중고기를 제3국으로부터 구매한 것이란 설명이다.

 

9월25일 함경남도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개최된 ‘원산국제친선항공축전’


미국産 MD-500 군용헬기 비행 ‘눈길’

 

북한의 원산 에어쇼는 잇단 핵실험 감행으로 유엔과 국제사회가 초강도 대북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5차 핵실험 보름 만에 해외 관광객과 언론까지 불러 민간과 전투용 항공장비를 공개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항공유 공급중단과 같은 제재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움직임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북제재에도 끄떡없다는 걸 과시하려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제스처란 얘기다. 미국산 전투헬기와 함께 우리 군의 주력인 F-16 전투기 축소모형을 만들어 관람객에게 보여준 것도 이런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항공 분야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김정은의 개인 취향이 작용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집권한 이후 항공·우주 분야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왔다.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비행기 타는 걸 꺼리고 중국·러시아 등을 여행할 때도 열차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과 확연히 다르다.

 

‘항공 마니아’로서의 김정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직접 조종간을 잡은 그의 모습이다. 북한 관영매체는 세스나 경비행기에 올라 조종석에 앉은 김정은의 영상을 공개한 적이 있다. 물론 다른 조종사를 태우고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이었지만 비행기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대북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정은이 미국산 소형 세스나(172 스카이 호크 모델)를 타고 평양에서 원산까지 오간 사실을 한·미가 첩보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측근 그룹이나 경호 관계자들은 만일의 사태 때문에 만류했지만 김정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7월에는 김정은의 지시로 건설된 평양 미림비행장에 전용 활주로가 건설된 사실이 민간 위성사진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정보 당국은 500m 길이의 이곳이 7번째 전용 활주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밖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무선조종 항공기나 군용 무인기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버지 김정일 사망 한 달 뒤 김정은은 평양의 수부지구 항공구락부를 방문해 무인기 운용을 관람했다. 원산에서 열린 무선조종기 시범공연을 부인 리설주와 함께 관람하거나, 군부대 방문 시 대남침투용 무인기를 직접 살펴보며 신기종 제작과 운용기술 개발에 나설 것을 독려하는 장면도 북한 관영매체로 공개됐다. 국가우주개발국(NADA)을 만들고, 공군사령관 출신 이병철 대장을 노동당 군수공업부 책임자로 발탁해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의 항공 분야에 대한 애착은 북한 유일의 민항인 고려항공의 변신에서도 확인된다. 집권 첫해인 2012년 5월 평양 순안공항을 방문한 김정은은 기내식 질을 높이고 스튜어디스의 의상 등을 세련된 스타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밋밋하던 붉은색·흰색 배합의 유니폼은 세련된 감색(紺色) 정장으로 바뀌었다. 구두굽이 높아지고 목걸이 등 액세서리 착용이 늘어나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북한은 “고려항공이 ‘때벗이’(낡은 것을 벗겨낸다는 의미의 북한말)를 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2014년 12월30일 김정은이 직접 비행기를 조종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고려항공 ‘때벗이’ 했다” 선전

 

첫 에어쇼 장소인 원산은 김정은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인 생모 고영희가 북한 땅을 처음 밟은 곳이기 때문이다. 오사카(大阪) 출신인 고영희는 1960년대 말 가족과 함께 북송선을 탔고, 원산을 거쳐 평양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일하다 김정일의 간택을 받았다. 북한 권력 핵심층들 사이에서 고영희가 ‘원산댁’으로 불린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인 것으로 관계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고영희는 김정은이 20살이던 2004년 유선암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치료받다 숨졌다. 김정은이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동해안 원산 지역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인구 36만의 원산을 세계적 관광명소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2014년 가을 공개했다. 이곳에서 25km 떨어진 문천시에 총 50km에 이르는 슬로프를 가진 마식령스키장을 지은 것도 그 일환이다. 지난해 말에는 원산의 군사공항인 갈마비행장을 민간공항으로 리모델링해 문을 열었다. 활주로 길이를 2050m에서 3500m로 늘리고, 계류시설도 확장해 모두 12대의 항공기를 동시 운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2억 달러(2268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항공 분야에 대한 김정은의 애정은 쉽게 식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공항을 새로 짓고, 신형 항공장비를 속속 개발토록 독려하는 움직임이 이어질 조짐이다. 워싱턴 등 미 본토를 겨냥해 장거리 미사일을 더 멀리 날리기 위한 행보도 계속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도 있다. 평양과 원산의 공항시설을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번듯하게 짓고, 고려항공의 유니폼을 바꿨지만 체제 고립은 심화되고 있다.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 때문이다. 개혁·개방 노선을 선택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대북 인식은 쉽게 바뀔 수 없다는 점을 원산 에어쇼는 그대로 보여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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