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예우법’으로 러브콜 하는 새누리당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6.10.09 21:52
  • 호수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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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의원 12명 ‘전직 국제기구 대표 예우법’ 발의 추진 야권 “국회통과는 힘들 듯”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임기 만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반 총장 임기는 오는 12월31일까지다. 60일가량 남았다. 2007년 1월 공식 취임한 지 10년 만에 귀향길에 오른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전 포르투갈 총리가 반 총장 후임으로 제9대 유엔 사무총장에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남은 것은 후임 총장과의 인수인계 그리고 귀국 준비다.

 

2017년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 반 총장이 돌아온다. 정치권에선 이미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반 총장 본인은 출마 여부를 가타부타 ‘명확하게’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언행을 비춰봤을 때 출마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 총장은 국내에서 ‘반기문 대세론’이 확산되는데도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시인(是認)도 부인(否認)도 하지 않을 경우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가 있다. 대선 출마 의사가 없다면 ‘없다’는 입장을 밝혔을 텐데, 아직 그런 목소리가 나오진 않았다. 정치권에선 “100% 출마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0월4일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와 개발, 인권개선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아프간 정부로부터 국가 최고 훈장인 ‘가지 아마눌라 칸 훈장’을 받고 환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기문法’, 비서관·운전기사·사무실 등 지원

 

반 총장 귀국이 다가오면서 측근들과 팬클럽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반기문 사단’으로 불리는 김숙 전 유엔 대사는 최근 서울에 사무실을 냈다. 김 전 대사는 “개인 사랑방”이라며 반 총장과의 관련성을 부인하지만 전직 외교관들로 구성된 싱크탱크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반 총장 팬클럽인 ‘반딧불이’는 오는 11월 국회에서 공식 창립대회를 열 예정이다. 반딧불이 외에도 여러 팬클럽이 결성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정치권 촉각이 더 예민해지고 있다. 야권에선 대체로 ‘반기문=여권 후보’로 보고 있다. 야권에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이 잠룡 반열에 올라 있다. 차기 대선 지지도 여론조사에서도 이들 대부분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링에 오를 야권 선수군은 비교적 두터운 편이다. 이에 맞서는 여권의 대선 주자군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인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대권에 강한 의욕을 드러내고 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선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시사저널이 최근 행정관료·교수·언론인·정치인·기업인 등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도 야권 후보들이 약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차기 대권의 가장 잠재력 있는 정치인’으로 문재인 전 대표(1위), 안철수 전 대표(3위), 박원순 시장(4위), 안희정 지사(5위) 등이 꼽혔다. 여권에선 김무성 전 대표(6위),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8위), 남경필 지사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공동 10위) 등이 이름을 올렸다. 아직 입장 표명을 보류하고 있는 반 총장이 그나마 2위에 올랐다. ‘이렇다 할 후보’가 아직 부상하지 않은 여권이 ‘반기문 모셔오기’에 신경을 쓰는 배경이기도 하다.

 

반면 야권에선 ‘반기문 견제하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도 여야가 반 총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10월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주(駐)유엔 한국 대표부 국정감사장에선 반 총장을 향한 야당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새누리당이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는 바람에 야당 의원들로만 구성된 국감단은 반 총장이 사무총장을 퇴임한 후 공직 취임을 제한하는 1946년 유엔총회 결의에 저촉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설훈 더민주 의원은 반 총장의 최측근인 오준 유엔대사에게 “1946년 1월1일 유엔 총회 결의안에 사무총장은 각국 비밀 상담역을 하기 때문에 퇴임 직후 어떤 자리도 맡지 말라고 돼 있다”며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각국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설 것인데 굳이 결의안을 무시해야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외통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재권 더민주 의원 역시 “반 총장의 대선 출마론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10월4일 뉴욕 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오준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대사 © 연합뉴스

“야당 반대로 국회통과 못할 것”

 

이런 와중에 새누리당이 반 총장을 향한 러브콜로 해석될 만한 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충북 충주시가 지역구인 이종배 새누리당 의원은 ‘전직 국제기구대표 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기 위해 같은 당 의원들로부터 서명을 받고 있다. 10월7일 현재까지 이 법안 발의에 찬성한 의원은 새누리당만 12명이다. 이 의원은 법안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유엔 사무총장이나 이에 준하는 국제기구 대표는 재임 시 국위 선양, 세계 평화, 국제질서 수호 등에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퇴임 후 국가 원로로서의 예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법안에 따르면 전직 국제기구 대표는 비서관 1명과 운전기사 1명을 둘 수 있고 예산 범위에서 경호 및 경비, 교통·통신 및 사무실 제공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예우와 지원 기간은 해당 국제기구 대표의 임기 종료일부터 그 국제기구 대표로서의 재임기간과 같은 기간까지로 설정했다. 다만 ‘공직선거법’이나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시되는 선거에 후보자로 등록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엔 예우와 지원을 제한한다고 명시했다. 향후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반 총장은 사무총장으로 10년 재임했기 때문에 10년 동안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년에 대선 후보로 등록할 경우에는 지원이 중단된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야당이 이 법안 발의의 저의에 대해 강하게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민주의 고위 당직자는 “해당 법안이 아직 발의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두고 볼 일”이라면서도 “새누리당이 반기문 총장을 모셔가기 위한 의도가 담긴 법안이기 때문에 야당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소야대 구도이기 때문에 야당의 동의 없이 국회를 통과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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