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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 10명 중 9명 치료 못 받는 나라

의사들 “항우울제 처방 제한 때문”…“처방 제한 폐지는 중증 환자 입장에서 검토해야” 신중론도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6.10.15(Sat) 08:00:34 | 14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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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다. 자살의 원인으로 우울증이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우울증 환자 10명 중 9명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 외에 다른 의사들은 특정 우울증 치료제를 60일 이상 처방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일반 의사들은 6년째 이른바 ‘항우울제 처방 60일 제한 규정’ 폐지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토론회와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2.1명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5명으로 10년 이상 OECD 회원국 중 1위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3년 1만 명을 넘은 자살자 수는 2011년 기준 1만5000명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하루에 40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특히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과 자살을 생각하거나 계획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약 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의학계는 추산한다. OECD 국가들의 자살률은 꾸준히 감소하는데 유독 한국의 자살률만 증가하는 배경에는 우울증이 있다. 홍승봉 대한신경계질환 우울증연구회 부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을 해보니 80% 이상에서 우울증이 진단됐다”며 “우울증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다가 심한 상태로 진행하고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울증은 자살 충동을 이겨낼 힘이 약해진 상태인데, 이때 극심한 스트레스나 사건을 당하면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4대 신경계 질환(뇌전증·치매·파킨슨병·뇌졸중)에 동반되는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기존 신경계 질환의 치료도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가족의 고통과 사회적·경제적 부담도 커진다. 실제로 60세 이상에서 알츠하이머 다음으로 흔한 파킨슨병(신경계 퇴행성 질환) 환자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보다 2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12년까지 파킨슨병으로 진단받은 환자 4326명 중 자살자는 29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파킨슨병으로 진단받은 지 평균 6년이 지난 시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런데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았거나 현재 앓고 있는 파킨슨병 환자는 자살 위험도가 3.2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진표 교수는 “파킨슨병 환자에게서 우울증은 흔한 증상”이라며 “환자의 마음건강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울증은 치매의 원인이기도 하다. 우울증 환자는 치매 위험이 일반인보다 2배 높다. 전체 치매의 3분의 1이 우울증으로 시작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치매 환자의 70%는 우울증을 경험한다는 보고도 있다. 김기웅 국립중앙치매센터장(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우울증 자체도 전두엽 기능을 떨어뜨리므로 심한 인지 기능 장애가 생겨 치매처럼 보이는 증상(가성 치매)을 나타내기도 한다”며 “따라서 치매 예방으로 우울증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WHO, 2020년 세계 질병 2위 우울증 대비 

 

자살 및 질환 발병과 관계가 있는 우울증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도 경고 메시지를 각국에 보냈다. 우울증은 2020년 세계 질병 부담 2위 질환이 될 전망이므로 이에 대해 대비하라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유병률은 당뇨를 앞질러 고혈압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WHO까지 나서서 우울증 예방과 치료를 강조한 이유는 우울증이 단지 기분이 우울한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모든 일에 대한 즐거움·흥미·의욕이 없어지고 불면증, 식욕 저하, 집중력 상실, 정신활동 저하 또는 불안과 초조가 동반돼 거의 정상 생활을 못하는 처참한 상태에 빠진다.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중증으로 진행돼 자살 경향(자살 기도+자살 사고)이 높아진다. 이는 사회적·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평생 성인 10명 중 1명은 우울증을 경험할 정도로 흔한 병이지만 치료를 받으면 70~90%가 완치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울증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해 병원을 찾지 않아 치료시기를 놓친다. 우울증을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지 않고 뒤늦게 치료하면 치료가 어렵고 다른 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 10명 중 1~2명만 병원 치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가 2011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전체 인구 가운데 ‘확실한 우울증(definite depression)’은 12.5%(약 600만 명), ‘유력한 우울증(probable depression)’은 30%(약 1500만 명)로 나타났다. 어림잡아 1000만 명 이상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단받고 치료를 받은 우울증 환자는 60만 명(2015년 기준)에 불과하다. ‘확실한 우울증’ 환자의 90%는 치료를 받지 못한 셈이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SSRI(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항우울제를 처방해 우울증을 치료하면 자살률을 5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외국에서도 이 약을 처방해 우울증을 줄여나가고 있는데 한국만 유독 이 약의 처방을 제한하고 있어서 우울증이 증가하고 자살까지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흔히 ‘행복 물질’로 알려진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원활해야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정상인에게 있어서 세로토닌은 분비됐다가 재흡수되기를 반복한다. 분비된 세로토닌이 많이 남아 있도록 재흡수를 억제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이 1990년대 초 개발됐다. 이 SSRI 항우울제는 국내에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사용했다. 홍승봉 교수는 “SSRI 항우울제는 기존 약에 비해 부작용이 없고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어서 1990년대 국내 처방이 늘어났다. 건강보험 예산에 압박을 느낀 보건복지부는 1998년 이 약의 처방 일수를 60일로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결국 환자에게 필요한 약 사용을 인위적으로 줄인 것인데, 왜 60일로 정했는지에 대한 근거도 없는 ‘나쁜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항우울제 처방 60일 제한 규정’에서 더 모호한 점은 의사에 따라 처방 일수에 차이를 둔 부분이다. 정신과 의사는 SSRI 항우울제를 자유롭게 처방할 수 있다. 나머지 비(非)정신과(내과·가정의학과 등) 의사들은 이 우울증 약을 60일까지만 처방하도록 돼 있다. 보통 항우울제를 환자에게 사용하면서 복용량을 조절하는 데에만 60~90일이 걸리고, 그 후에도 1~2개월 더 사용해야 치료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상 비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 환자를 장기적으로 치료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국내 SSRI 항우울제 사용량은 외국보다 낮은 편이다. OECD 회원국의 평균 SSRI 항우울제 사용량은 58DDD(인구 1000명당 하루 사용량)이다. 국내 사용량은 20DDD로 OECD 국가 중 칠레와 함께 가장 낮다. 영국·스웨덴·캐나다 등 선진국의 80DDD에 비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2015년 2월13일 서울 시민청에서 어린이들이 마음치유 자판기 ‘마음약방’을 사용해보고 있다. ‘마음약방’은 현대인의 20가지 우울증상을 살펴 소소한 재미와 스토리가 있는 물품을 처방하는 자판기다. © 연합뉴스


 

정신과 꺼리는 환자 유도가 핵심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우울증인지도 모른다. 단지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며 병원을 방문한다. 일본 국립정신센터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22~58%는 불면증, 피로, 목·허리 통증, 두통 등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능률저하·우울감·불안 등을 호소한 환자는 3~4%에 불과했다. 우울증 환자가 처음 찾는 병원은 내과가 64.7%로 가장 많고 정신과는 5.6%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모든 진료과 의사가 항우울제를 처방할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70%는 비정신과에서 담당하고 30%만 정신과에서 진료한다. 미국·프랑스·이탈리아·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다른 나라에서도 모든 의사가 기한 제한 없이 SSRI 항우울제를 처방한다.

 

그러나 우리 사정은 다르다. 2014년 건강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의사 수는 약 10만 명이고 이 가운데 정신과 전문의는 3%(약 3000명)다. 모든 우울증 환자를 담당하기에 역부족이다. 물론 가벼운 우울증 환자는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비정신과에서 다른 약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 환자는 정신과에 가야만 SSRI 항우울제를 장기간 투여받을 수 있다. 사실 일반인은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점과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우울증 환자이지만 정신과를 찾지 않는 사례도 있다. 홍승봉 교수는 “‘항우울제 처방 60일 제한 규정’은 사실상 의사들에게 우울증을 치료하지 말라는 의미와 같다”면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을 예방하려면 해당 규정을 풀고, 모든 의사를 대상으로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 교육도 해야 한다. 국민에게도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공익 캠페인을 벌이고 환자가 집 주변 병원에서 쉽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신경과학회 등은 2008년부터 SSRI 항우울제의 처방 60일 제한 규정을 폐지해줄 것을 정부 측에 요구해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김기웅 교수는 “가벼운 우울증은 일반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있다. 핵심은 심각한 우울증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의학적 전문성이 필요한 SSRI 항우울제의 처방 기한을 무조건 폐지할 것이 아니라 심각한 우울증 환자를 정신과 전문의로 보내는 등의 통제 체계를 우선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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