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성 우울증은 햇볕이 특효약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10.13 10:40
  • 호수 14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양한 우울증 치료법도 제각각…환자 공통점 ‘부정적인 생각’ 떨쳐내야

50대 주부 이영수씨는 가을과 겨울만 되면 사람이 바뀐다.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혼자 있으려고 한다. 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 생활로 돌아온다. 전형적인 계절성 우울증이다.

 

사람은 가을이 되면 쓸쓸함과 허무함을 느낀다. 직접적인 원인은 줄어든 햇빛 양에 있다. 신경전달물질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줄어들어 신체 리듬이 깨지면서 우울증이 생긴 것이다. 멜라토닌은 뇌에서 밤에 집중적으로 분비되는데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은 멜라토닌이 줄어도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이 드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정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울증세가 뚜렷이 나타난다. 이것이 계절성 우울증이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과 겨울에 우울증이 시작하고 봄과 여름에 회복된다. 일조량의 차이가 적은 적도 부근에서는 우울증이 드물며 위도가 높아질수록 많아진다. 실제로 북유럽에서 우울증이 가장 많이 보고된다. 이런 계절성 우울증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2배 이상 많이 발생한다.

 

계절성 우울증은 일반 우울증과 다른 증상을 보인다. 잠이 많아져서 종일 무기력하다. 누워서 지내려 하고 식욕도 왕성해져 탄수화물 섭취가 늘어나면서 살이 찐다. 일반 우울증은 불면증, 식욕 저하 증상을 나타낸다. 물론 계절성 우울증도 일반 우울증처럼 기분이 우울해지고 쉽게 피로하고 의욕도 없어진다.

 

© 시사저널 우태윤

 

갱년기 우울증의 ‘빈 새 둥지 증후군’ 증세

 

계절성 우울증 치료는 항우울제 치료와 동시에 광 치료를 한다. 광 치료에 쓰는 빛은 일상에서 접하는 빛의 양보다 강한 2500룩스 이상의 강한 빛이다(실내조명 300룩스, 축구경기장 조명 2000룩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정 기간 규칙적으로 강한 빛을 쏘아주면 멜라토닌 분비량이 늘어 생체리듬이 회복되면서 우울 증상이 줄어든다”며 “따라서 계절성 우울증을 심하게 반복하는 환자는 햇빛 양이 줄어드는 가을과 겨울에 매일 1~2시간씩 햇볕을 쬐는 것이 우울증을 예방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최금이씨(여·55)는 최근 조용한 바닷가에서 삶과 이별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처음에는 쉽게 피곤하고 잠을 설치는 일이 잦더니 최근 들어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쓰이고 걱정거리가 많아졌다. 더 괴로운 것은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만사가 귀찮아진 점이다. 4년 전 폐경이 왔고, 2년 전 은행원이던 남편이 퇴직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딸이 결혼했다.

 

이 사례는 대표적인 갱년기 우울증이다. 정성껏 키운 자식이 결혼해서 집을 떠나면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부모는 빈 둥우리에 앉아 있는 어미 새와 같이 허전한 마음과 인생 무상감을 느끼는데 이를 ‘빈 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소화가 안 되거나 가슴이 뛰는 신체 증상,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심해지는 등 인지 기능 장애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과거에는 갱년기 우울증의 원인을 상실감 등 사회 심리적 원인으로 설명했다. 최근에는 신경생물학적 원인이 갱년기 우울증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밝혀지고 있다. 폐경을 전후해서 여성의 난포(卵胞) 호르몬 분비는 급격히 떨어진다. 또 심장 관상동맥 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대뇌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와 같은 신체적 변화는 백질뇌병증(대뇌 미세 동맥의 경화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즉 갱년기 후 내분비계의 변화로 대뇌의 전두엽과 기저핵에 산재한 신경세포군이 손상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우울 증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갱년기 우울증 환자의 대뇌 전두엽과 기저핵 부위를 MRI(자기공명영상) 촬영해보면 백질뇌병증이 관찰되고 이 부위의 대사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홍진 교수는 “18세기 무렵까지만 해도 인간 수명은 짧아서 여성은 살아 있는 동안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의학이 발전하고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인간은 갱년기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다행히도 갱년기 우울증은 항우울제나 전자파동요법 등의 치료로 회복된다”고 말했다.

 

최근 계절성 우울증과 갱년기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는 사람이 많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과 모습. © 시사저널 이종현

 

스트레스 쌓이면 중요한 일 잊어야

 

가벼운 우울증은 일상에서 극복할 수 있다. 우선 말없이 감정을 참지 말아야 한다. 우울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 말없이 속에 감정을 쌓아두면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정신과 의사·부모·친척·친구·이웃·성직자 등 누구라도 편한 사람에게 불편한 감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로는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지만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스트레스가 쌓이면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큰 결정이나 중요한 일을 잠시 잊고 지내는 편이 좋다. 규칙적인 생활과 활동을 하고 균형 잡힌 식습관을 갖고 운동을 계속하면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기분이 우울하고 머리가 복잡할 땐 전문 서적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책보다는 가벼운 소설이나 잡지를 읽으면서 기분을 전환하는 게 좋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억지로 잠을 청할 필요가 없다. 우울증이 있으면 밤에 잠을 잘못 자거나 기분이 침울해진다. 식구·친구·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면 기분이 밝아진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한결같이 부정적인 생각에 빠진 것을 볼 수 있다. 부정적 생각은 모든 일에 흥미를 떨어뜨리고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여기게 한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자신이 좋아하거나 즐거운 생각만을 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울증 체크리스트

 

• 계속되는 우울, 불안, 공허감

• 성생활을 포함해 한때 즐거웠던 일이나 취미생활에서의 의욕 상실

• 절망감, 염세적 사고

• 죄책감, 무기력함, 무가치

• 불면, 아침에 일찍 깨거나 과다한 수면

• 식욕 저하나 체중 감소, 과식이나 체중 증가

• 힘이 없고 피로하며 몸이 처지는 기분

•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 자살 기도

• 초조감, 쉽게 짜증이 남

• 집중력 및 기억력 저하, 의사결정에 어려움

• 두통, 소화기 장애 또는 만성 통증 등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계속되는 신체 증상

 

2주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2가지 이상이면 초기 우울증, 5가지 이상이면 심한 우울증 의심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