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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리더십] 미혼을 활용해 외교 실익 챙기다

엘리자베스 1세, 대영제국 발판 마련…영어의 세계화 기여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 경영연구원장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16(Sun) 08:00:33 | 14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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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1533~1603년)는 유럽의 강대국 에스파냐가 자랑하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대항해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해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고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는 등 대외진출을 본격화해 변방의 섬나라 잉글랜드 왕국이 후일 대영제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닦았다. ‘영국과 결혼했다’는 표현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제국의 기틀을 다진 처녀 여왕이다.

 

헨리 8세는 6명의 아내에게서 1남2녀를 남기고 1547년 세상을 떠났고 뒤이어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에게서 태어난 에드워드 6세가 9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그는 어린 시절 영민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미래의 군주로서 기대가 컸지만 선천적인 병약함으로 1533년 16세로 요절했고,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 캐서린의 딸인 메리 1세가 뒤를 이었다. 에스파냐 출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성장했고, 이혼하면서 자신을 공주에서 사생아로 전락시켰던 부친 헨리 8세에 대한 반감도 깊었던 메리 1세는 영국이 다시 가톨릭의 전통으로 복귀하는 것을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의회에서 부친 헨리 8세와 모친 캐서린 왕비의 이혼을 무효로 선언했으며  가톨릭 성직자들을 대거 복귀시키고 몰수한 수도원 재산을 반환하는 등 헨리 8세 종교개혁 이전으로 회귀했다. 국가적 관심사로 부상한 미혼인 여왕의 결혼에 대해 의회는 잉글랜드 출신과 진행하기를 청원했으나 에스파냐의 왕자와 혼인했다. 신교도에 대한 가혹한 박해와 처형으로 반발이 심해지는 가운데 에스파냐 왕이 된 남편 펠리페 2세가 프랑스와 벌인 전쟁에 휘말려 패전하고 1577년 프랑스의 영국령이었던 칼레까지 빼앗기면서 사면초가의 처지에 몰린 여왕은 1578년 병사한다.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교회 수장임을 선언

 

메리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 앤 불린의 딸이었다. 어머니가 결혼 3년 만에 간통과 반역죄로 처형당하고, 아버지 헨리 8세가 앤 불린과의 결혼도 무효라고 선포하면서 사생아로 전락했으나 성장기에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면서 타고난 총명함으로 군주로서의 기본 역량을 갖출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먼저 성공회 교도로서 부친 헨리 8세의 유산인 정교일치의 국가주도 종교체제를 확고히 했다. 1559년 새로운 수장령(首長令)을 선포해 여왕이 교회의 수장임을 명확히 선언하고, 언니 메리 1세가 제정한 가톨릭 회귀 법령들을 모두 철회했다.

 

내정을 안정시킨 후 새로운 시장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대외진출에 나섰다. 당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신대륙과 아프리카, 인도를 잇는 독점적인 대양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대양무역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상태에서 국가의 승인을 얻은 해적인 사략선(Privateer) 사업 투자에 나섰다. 사략선 해적은 적국의 함선과 해외 근거지를 약탈해 얻은 수익을 국가와 나누는 대신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일종의 비공식적 공생관계였다. 평민 출신 프랜시스 드레이크(1545~1596년)는 1570년대 서인도 제도에서 에스파냐 함선과 식민지를 약탈해 거둔 막대한 수익을 엘리자베스 1세에게 남겨줬고 영국인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사략선 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자연히 에스파냐와는 적대적 관계가 되면서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 전개됐다. 에스파냐 권역이었던 네덜란드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종교적 갈등이 빌미가 돼 발생한 내전에 영국이 개신교를 지원하자 전쟁이 발발했다. 

 

1588년 7월 프랑스 칼레 앞바다에서 벌어진 잉글랜드 함대와 에스파냐 무적함대의 교전에서 예상을 뒤엎고 잉글랜드 함대가 승리했다. 지휘관으로 참전해 큰 공을 세운 해적 출신 드레이크는 귀족의 작위를 받으며 국가적 영웅이 됐다. 당대 최강국 에스파냐와의 정면승부에서 이겨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대양항해의 주도권을 확보한 잉글랜드는 아시아 교역로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후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발판을 만들었다.

 

영국을 해상강국으로 도약시킨 엘리자베스 시대는 ‘영국 르네상스’로 불리는 문예부흥의 시기였다. 강대국 에스파냐에 승리하면서 국가적 자긍심이 높아지면서 영국인들 사이에 생겨난 스스로의 능력과 운명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양항해를 통한 미래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됐다. 또한 가톨릭의 영향권을 벗어난 개신교 국가로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인간과 이성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문학, 예술의 각 방면에서 큰 발전을 보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셰익스피어는 변방의 하급언어였던 영어를 사용해 최고 수준의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면서 후일 영어가 세계어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아시아 교역로 개척…동인도회사 설립

 

미혼으로 25세에 즉위한 여왕 엘리자베스는 젊은 시절 유럽 각지의 군주들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부친 헨리 8세의 직계로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여왕과 결혼하면 잉글랜드를 실질적으로 병합할 수 있었다. 여왕의 결혼에 따라 서유럽의 판도가 변동할 수 있는 국제적 관심사였다. 그러나 언니인 메리 1세가 에스파냐 왕자와 결혼해 결과적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본 젊은 여왕은 자신의 결혼 문제를 적절히 활용해 외교적 실익을 얻을 정도로 노련했다. 나이가 들어 결혼 적령기가 지나자 “한 시대를 통치했던 여왕이 평생 처녀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는 비석을 세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선언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45년간 재위하고 1603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처녀 여왕이었기에 자식이 없어 튜더 왕조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국가는 번영해 군사·외교·경제적 역량을 축적한 섬나라 잉글랜드는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했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영국 르네상스는 100여 년 후 전개되는 산업혁명의 기반을 형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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