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차세대 리더 - 안희정> “나는 장미꽃 옆에 핀 튤립이 아니다”
  • 김지영·유지만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6.10.17 19:47
  • 호수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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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잠룡들’과 차별화 역설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시사저널의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 조사에서 전체 및 정치 분야 모두 1위에 올랐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차세대 최고 리더로 등극한 것이다. 기자는 그동안 안 지사와 여러 차례 직접 대면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인연이 닿지 않았다. ‘마침내’ 지난 10월6일 오전 충남 홍성에 있는 충남도청에서 안 지사를 만났다. 본지와의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다.

 

기자는 평소 안 지사에게 궁금했던 ‘소소한’ 의문이 하나 있었다. 2004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던 그는 당시 1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은 그와 인터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출소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그해 12월말, 기자는 그가 살고 있던 경기도 과천시의 주공아파트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외출하고 없었다. 부인 민주원씨는 기자의 느닷없는 방문에 당혹스러워했다. 아들 정균(당시 12세)과 형균(9세)군은 거실에서 뛰놀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낯선 불청객을 힐끔힐끔 건너다봤다. 순간, 거실 안쪽에서 깃대에 내걸린 대형 태극기가 기자의 눈에 박혔다. 그날 인터뷰는 실패했지만 대형 태극기의 잔상은 그 후에도 오래 남았다. ‘대형 태극기를 집 안에 내걸 정도로 안희정의 애국심이 그리 대단한가’라는 혼자만의 추측만 간직한 채. 

 

그래서 10월6일 만난 안 지사에게 각종 현안은 제쳐둔 채 태극기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다. 안 지사의 답변. “당시 우리 둘째 아이(형균)가 태극기를 무척 좋아했다. 유치원 때부터 태극기를 좋아해서 거실에 걸어놨던 거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텐데 태극기를 흔들며 놀았다.” ‘애국심’ 운운했던 기자의 거창한 추측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안 지사도 취재진도 웃으며 넘어갔다.

 

이날 인터뷰에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영원한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화제에 올랐다. 강 회장은 2012년 8월2일, 2007년부터 6년여 동안 앓아온 뇌종양으로 향년 60세로 별세했다. 기자는 2011년 5월24일 강 회장을 서울 강남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다. 강 회장은 당시 핵심 친노(親盧) 인사로 정치권에서 맹활약하던 몇몇 인사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친노 인사들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자기가 언제부터 친노였냐” “쥐새끼 같은 정치를 해선 안 된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희정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안쓰럽다”고 했다. 기자는 강 회장과 만났던 당시 분위기를 안 지사에게 전하며 ‘강 회장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강금원 회장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나에겐 정말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분은 사업가로 열심히 사셨다. 당시 기업가든 정치인이든 학자든 양심과 정의를 갖고 반듯하게 살려고 했던 사람들과 우정, 의리를 나눴다. 그래선지 가끔 시간 날 때마다 강 회장님 묘소를 찾아뵙는다. 아직도 묘소에 들어서면 눈물이 난다. 정말 보고 싶다.” 이 말과 함께 안 지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목소리도 잠겼다. 먹먹한 표정이었다. “정말 보고 싶다. 강 회장은 지금도 정말 보고 싶다”며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많아진다”고 겸연쩍어했다. 인터뷰 장소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안 지사와의 이날 인터뷰는 때론 웃음이, 때론 눈물이, 때론 진지함이 교차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 시사저널 이종현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 전체와 정치 분야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정치 분야 1위도 영광스러운 기분이었다. 올해도 좋은 평가를 받게 돼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 저를 주목해 주시는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좀 더 좋은 정치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차세대 리더로 왜 지목됐다고 보나.

 

근본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모든 문제에 던지며 살려고 한다. 쉽게 가기보다는 ‘왜’ 그런지 물으려 한다. 도지사로 일하면서도 더 묻고 또 묻는다. 직업 정치인과 정당인 역할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그런 물음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관성과 타성으로부터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저의 그러한 노력에 대해 평가해 주시고, 기대해 주시는 게 아닌가 싶다.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됐지만, 국민이 체감하기론 정치 행태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청와대는 무조건 권위를 앞세워 끌고 간다는 통치력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의회는 끊임없이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의식에 빠져 있다. 야당은 더더욱 정부·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식에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공론장에서 합리적인 대화가 어렵다. 그런 정치 문화가 국민에게 굉장히 불신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와 대통령 리더십이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의회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도 대화와 토론, 타협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내년 대선에 출마하나.

 

시대적 소명 의식과 목표를 분명하게 자각하고, 준비가 돼 있다면 언제든지 도전해야 한다. 내 모든 인생의 경험과 평생 정치를 해 오면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토대로 현재 대한민국과 미래 대한민국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체로 걸러내고 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양이 되고 모양이 잡히면 도전할 것이다. (대선 출마) 공식 선언은 내년 초쯤으로 미룬 상태다. 그렇다 해도 실질적으로 도전한 상태나 마찬가지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일정이 나와야 한다. 모집공고가 나와야 원서를 쓰지 않겠는가.

 

     

‘원서’를 내지 않을 수도 있나.

 

그럴 가능성은 없다.

 

 

“내년 초쯤 대선 출마 공식 선언”

 

‘시대적 소명 의식’을 언급했는데, 내년 대선에서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 보나. 

 

시대정신은 늘 똑같다. ‘공정했으면 좋겠다’ ‘먹고살기 편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번영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신뢰와 정의의 확장이다. 사회 사건이나 자연 재난, 외교·안보 분야에서 불의의 사고로 너무 많은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 그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재난과 외교·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똑같다. 국민이 늘 요구해 온 부분이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 빈곤과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늘 똑같은 국민의 요구였다. 이 과정에서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북한을 혼내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화하자’는 주장이 있다.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은 ‘혼내겠다’고 한다. 혼찌검을 내서 안전한 사회가 될지는 주권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말하는 것인가.

 

주권자들이 봤을 때 과연 안전해질까. 제가 봤을 때, 그렇게 해서 안전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힘들다. 화풀이는 될지 모르겠다. 국민은 화풀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안전한 나라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에) 너무 끌려가는 것도 싫어한다. 이 중에서 답을 내야 한다. 지도자들마다 주장하는 것이 다르다. 그것을 선거 때마다 유권자가 꼼꼼하게 챙겨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야 한다. 상대 후보와 다른 견해나 주장을 내놓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밑도 끝도 없이 상대를 꺾으려고 싸울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저는 그 어떠한 정파라 할지라도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을 자신 정파의 이익에 귀속시키지 말 것을 강조해 왔다. 모든 정치인이 당장의 유불리에 이용하지 말 것을 제안해 왔다. 정파를 넘어서 서로가 합의해야 하며 그래야만 지속 가능한 우리 전략을 펼 수 있다. (남북관계) 해결의 가장 핵심은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그대로 하면 된다. 7·4성명, (1991년) 제네바 기본 합의서, (2002년) 6·15선언, (2007년) 10·4선언까지 골자(骨子)는 ‘전쟁은 안 된다’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자’는 것이었다. 거기에 ‘우리 민족 주도적으로 노력하자’까지 포함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우린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역대 선거에서 새누리당을 찍었다는 충청 출신 인사를 만났는데, 내년 대선에 안 지사가 출마하면 찍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안희정은 좋은데, 더불어민주당은 마음에 안 든다. 안희정이 문재인과 각을 세워야 한다’고 하던데.

 

많은 분들이 당은 마음에 안 들지만 도지사 안희정은 좋다고 얘기한다. 대단한 영광이다. 미래에 희망을 갖게 된다. ‘안희정이 이끄는 당’을 좋아하게 만들겠다. 한 집안의 장성(長成)한 장자가 돼서 집안을 이끌게 되면 구원(舊怨)과 과거 서운했던 감정들, 불편했거나 불신했던 마음들은 극복될 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더민주의 외연은 더 넓어질 것이다. 한국 진보 진영에 대한 국민 신뢰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충남 지역 민심탐방을 위해 충남 논산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이 2008년 11월25일 강경젓갈시장에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안희정이 이끄는 당’은 무엇을 의미하나. 

 

저는 10년 전 더민주 속에서 미미한 당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민주를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하나다. 이 당에 대한 국민 불신도 나의 좋은 정치 활동에 의해 신뢰로 바뀔 것이다.

 

 

국민 신뢰를 받으려면 안 지사가 현재의 더민주 체제와 노선을 부정해야 할 부분도 있을 텐데.

 

모든 변화는 시나브로 오는 것이다. 석양이 지거나 여명이 밝아올 때 갑자기 확 밝아지거나 어두워지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는 상황에서 서서히 변하게 된다. 지금 진보 진영과 더민주 모두 변화 과정 안에 있다.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야당에서 저나 송영길·김부겸 의원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 것이다. 과거와 다른 여야 정당 체계를 만들 것이다. 과거처럼 대립과 갈등, 적대적 관계까지 수반됐던 여야 관계에서 벗어나 견해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공존과 상호 존중이 가능한 정치 문화로 바꿀 것이다.

 

 

“남북관계, 7·4 남북성명대로 하면 된다”

 

안 지사가 문재인 전 대표의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만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불펜투수론’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불펜투수라고 해서 릴리프(구원), 보조 타이어 이런 것은 아니다. 저는 특정후보의 대체자(代替者)가 아니다. 제가 불펜투수라고 표현한 것은 그런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선배님들에 대한 예의를 갖춘  표현이다. 튤립을 그대로 튤립으로 표현해야지, 장미꽃 옆에 있는 튤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누구와 비교를 통해, 누구와 경쟁을 통해 이름 붙여지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저는 저다움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고 도전하는 사람이다. 있는 그대로 평가해 주길 바란다.

 

 

여야 다른 대권 잠룡들에 비해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올림픽을 보면 무명 선수라도 몇 게임 하고 나면 온 국민이 그 선수를 알게 된다. 선거도 그렇다. 선거 전에는 대다수 국민이 생업과 삶 속에서 바쁘지만 선거 정국이 되면 국민이 알아줄 것이다. 인맥과 친소(親疎) 관계 중심의 정치 지도자가 서면 정치는 매우 비생산적이고 미래 역사를 열지 못한다. 따라서 소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공론의 광장에서 자기를 선언해야 한다. 다만 그 선언이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안티테제로 서지 말고 타인의 모든 비판과 비난도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나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지율이 높다. 그 이유를 뭐라 보나.

 

반기문 총장님에 대해 제가 평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책과 소신을 가지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 반 총장님 역시 그분의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국민에게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결국 국민이 모든 것을 판단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반기문 대세론’과 함께 ‘충청대망론’이 제기되고 있다. 안 지사(충남 논산)도 해당되는데.

 

대한민국 5000만 명의 지도자가 되는 일이다. 지역 대표성으로 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자에 도전하는 모든 분들은 지역주의나 지역 대표성으로 도전하면 안 된다. 영호남 지역주의 정치에서 중부권이 통합 정치를 해 달라는 국민적 요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요구 때문에 그런 단어가 만들어진 것 아닐까 싶다. 지역 정치가 아닌 통합 정치를 하자는 일에 충청도민이 앞장서주길 바란다. 또 다른 지역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통합 정치를 만들자는 의미다.

 

© 시사저널 이종현

 

그럼에도 야권은 호남의 절대지지가 없으면 정권교체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저는 김대중·노무현 정통성을 이어받은 정통성 있는 지도자다. 언제나 당을 지켰고 당에 있었다. 청년 시절엔 김대중과 함께, 본격적인 정당 활동을 통해선 노무현과 정권재창출의 주역이 됐다. 이후에도 당의 어려움 속에 감옥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당의 총선 전략에 따라 공천을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당을 배반한 적이 없다. 더민주에서 김대중·노무현의 역사를 이어가는 젊은 정치인이다. 전통적으로 더민주를 지지했던 분들이 저를 지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 지지 기반인 호남을 비롯해 노무현을 지지했던 부산, 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지지했던 충청권의 많은 유권자, 진보 진영 지지자들에게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야권 후보군 가운데 문재인 전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과 경쟁해야 한다. 그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곤란한 질문이다. 경쟁자들에 대해 평가해 보라는 얘긴데, 그게 일반적인 관심인 것을 모르진 않는다. 그런데 지도자 선출은 역사와 국가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일이다. 누구와 도토리 키 재기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나의 소신과 포부를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한테 일을 맡길지는 국민이 결정하면 된다.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은 내 영역과 소임이 아닌 것 같다.

 

 

만약 야권 주자들이 비슷한 정책과 공약을 들고나오면, 후보 간 차별화가 안 될 텐데.

 

주권자들의 결정사항이다. 우리 모두가 개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차별화를 의식할 필요는 없다. 자기 생각과 자기 소신으로 한 송이 꽃처럼 예쁘게 피어나면 그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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