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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파격'으로 돌아온 배우 윤여정

데뷔 50주년의 베테랑 “이젠 나한테 별걸 다 시키는구나 싶었다”

나원정 ‘매거진M’ 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0(Thu) 13:00:33 | 14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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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한테 별걸 다 시키는구나 싶었어요(웃음).” 

10월15일 폐막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 윤여정은 젊은 관객들에게 누구보다 인기 있었던 스타였다. 해운대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관객과의 ‘오픈토크’ 시간. 10월6일 개봉한 신작 《죽여주는 여자》에서 “고된 삶에 치여 종로 일대로 나가 ‘죽여주는 서비스’를 하게 된 박카스 할머니 소영 역(役)을 맡았다”고 소개한 그는 이재용 감독에게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그런 심정이었다며 웃었다. 생각한 바를 깜짝 놀랄 만큼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의 화법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런데 그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죽여주는 여자》에는 성소수자를 비롯해서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극중 소영은 한국전쟁 때문에 힘들게 살다가 성매매까지 하게 돼요. 그리고 이제 소영은 자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노인들의 숨통을 끊어줘요. 정작 소영 자신은 죽지 못해서 이승을 연연하죠. 시나리오를 보니 이재용 감독은 그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았어요. 소외당하는 이들의 삶, 내가 모르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의 삶을 공감하고 공부하고 싶다”는 건 윤여정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화두다. 얼마 전 그런 그의 연기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의 데뷔 50주년을 맞아, 몇몇 예술영화관에서 대표작을 상영하는 기획전을 열었다. 1971년 영화 데뷔작 《화녀》부터 최신작 《최악의 여자》까지 고루 화제가 됐다. 어느 멀티플렉스 계열 극장이 개최한 기획전은 예매가 오픈되자마자 《여배우들》 《최악의 여자》 등이 앞다퉈 매진 사례를 이뤘다. 결국 이 극장은 앙코르 상영까지 진행했다.

 

 

© CGV아트하우스뉴스

배우 윤여정 © CGV아트하우스뉴스

 

극중 맡은 캐릭터마다 겹치는 게 없어

 

상영작들을 살펴보면 “감독들이 별걸 다 시킨다”는 윤여정의 말이 새삼 실감난다. 60살에 늦바람이 나 섹스의 ‘참맛’을 발견한 시어머니(《바람난 가족》)부터 재벌가의 숨은 권력자(《돈의 맛》), 까칠한 여배우(《여배우들》), 그리고 주위의 후미진 삶을 제 손으로 거두는 박카스 할머니(《죽여주는 여자》)까지 극중 맡은 캐릭터마다 겹치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굳이 꼽자면, 요즘 은어로 성격이 강한 캐릭터를 뜻하는 ‘센캐’(센 캐릭터의 줄임말)라는 게 공통점이랄까. 어쩌면 이건 다른 중견 여배우들과 그를 구분 짓는 특징이다. 윤여정에게도 물론 자애로운 모성애를 드러낸 출연작들이 있다. 올해만 해도 그는 영화 《계춘할망》에서 손녀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제주도 해녀를 연기했다. 그러나 흔히 윤여정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 그가 삶의 어떤 최전방을 향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던진 작품들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 늘 존재했지만, 아무도 몰랐던, 혹은 직시하길 꺼려온 삶들을 몸소 살아냄으로써 관객들의 이해와 관심을 쟁취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그의 연기가 잃지 않은 ‘동시대성’은 윤여정을 대체 불가능한 뮤즈로 끊임없이 재발견되도록 했다.

 

그 출발점을 되짚어보면 김기영 감독의 1971년작 《화녀》가 있다. 김 감독이 자신의 1960년 흑백영화 《하녀》를 새롭게 각색한 컬러 영화로, 윤여정은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영화에서 명자(윤여정)가 동식(남궁원) 일가를 위협하는 도구로 거대한 닭 모이 분쇄기가 자주 등장한다. 무엇을 넣고 갈았는지 모를 걸쭉한 모이통 안을 들여다보는 윤여정의 눈빛은 불과 스물네 살 여배우의 그것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광기가 넘쳤다. 애초 김기영 감독이 신인이었던 윤여정을 발탁한 건 TV 드라마에서 백바지 차림의 여고생 깡패로 등장한 그의 괄괄한 에너지를 눈여겨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명감독의 안목은 이후 윤여정의 배우 인생을 어떤 ‘궤도’에 올려놨다. 《화녀》와 같은 해 윤여정은 TV 드라마 《장희빈》(1971, MBC)에 주연으로 캐스팅됐고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극 중 장희빈 역에 몰입한 사람들이 “저기, 나쁜 년 지나간다!”고 몰려드는 통에 윤여정이 바깥출입도 못했다는 건 지금도 전해 오는 유명한 일화다.

 

1966년 TBC 탤런트 3기로 데뷔해 배우로 살아온 시간이 50년. 정작 윤여정 본인은 “세월 따지는 거 싫고 창피하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70대에 이르기까지 드라마부터 상업영화, 저예산 예술영화를 넘나들며 그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는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여배우로 범주를 좁히면 그의 입지는 더욱 독보적이다. 단지 50년의 연륜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역시 데뷔 50주년을 맞은 배우 윤정희와 나란히 놓고 보면 윤여정의 독특함은 두드러진다.

 

 

“최선 다하는 후배들 보면 같이하고 싶다”

 

그러나 윤여정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매번 다른 얼굴로.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그에게 각별한 해였다. 영화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에 이어 TV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선 노년과 죽음에 대해 사려 깊은 담론을 끄집어냈다. 할리우드의 워쇼스키 자매 감독이 연출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센스 8》에선 극중 감옥에서 배두나를 돕는 조력자로 출연했다. ‘매거진M’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죄수 A, B, C 중에 하나 하라는 거 아니냐’고 거절했는데, 한국 캐스팅 디렉터가 ‘한국에도 선생님 같은 배우가 있다는 걸 꼭 알리고 싶다’며 어찌나 애를 쓰는지 거기에 넘어갔다”고 했다.

 

워쇼스키 자매가 그의 연기에서 영감을 받은 터라, 시즌2부터는 분량도 늘어났다. 넷플릭스는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유료 가입자만 총 5700만 명에 이른다. 윤여정의 또 다른 할리우드 진출작을 기대해 봐도 좋다는 얘기다. 아직 “차기작은 없다”는 그는 ‘매거진M’과의 인터뷰에서 넌지시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순 되던 해에 결심한 게 있어요. 이제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하고만 일하리라.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사치스럽게 나의 커리어를 마감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생각은 변함없어요. 다만 이러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후배들을 보면 또 선뜻 나서겠죠. 같이하겠다고.” 이 배우의 다음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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