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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음식인류학]집단의 경계선 역할 ‘구별짓기’의 음식

음식 취향, 사회경제적 계급 차이를 구별하는 방식으로 발달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3(Sun) 14:00:32 | 14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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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대단히 사회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사회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음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경험을 조금만 돌아봐도, 사회관계 때문에 특정한 방식으로 식사를 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 피자나 햄버거 가게는 누군가의 생일파티로 친구와 어울렸던 장소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생일 턱으로 유명한 피자나 햄버거를 ‘쏘는’ 정도의 사회경제적 역량이 있는 집의 아이와 사회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고, 또 그 사회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생일에도 역시 그렇게 관계를 맺어온 친구들에게 피자나 햄버거를 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때 특정 브랜드의 피자나 햄버거가 선택되는 것은 맛이나 영양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브랜드가 갖는 사회경제적인 메시지 때문이다. “그 비싸고 고급스러운 피자를 여러 명의 친구에게 쏠 수 있다는 건, 그 아이의 집이 부유할 뿐 아니라 그 아이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상류층은 배를 부르게 하는 음식보다는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의 우아하고 깔끔한 음식을 선호한다. © 연합뉴스


음식을 통한 ‘구별짓기’, 다른 행동들 유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집단을 만드는가 하는 점, 또 그 집단이 어떤 성격의 것이어서 다른 집단과는 다르게 구별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야 필요한 경우 강한 단결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집단과 경쟁할 때 살아남기 쉬울 것이다. 그런 ‘구별짓기’에서 음식은 종종 한 집단의 멤버십 카드 같은 역할을 한다. 생일에 브랜드 피자를 쏠 수 있는 아이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며, 그 생일에 초대되는 아이들과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진다.

 

20세기 마지막 석학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La Distinction)》라는 유명한 책에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람들의 취향을 조사한다. 그의 결론은 취향(taste)이란 결국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집단의 차이, 즉 사회경제적인 계급의 차이를 구별하는 방식으로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예 중에 음식에 관련된 것도 있다.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상류층은 배를 부르게 하는 음식보다는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의 우아하고 깔끔한 음식을 선호했으며, 교육 정도가 낮은 저소득층은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적은 돈으로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하는 사회집단에서 공유되는 가치관을 내면화해서, 마음으로부터 그 가치를 믿게 되기 때문이다.

 

음식을 통한 구별짓기는 여러 상황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옛날 서울의 사대부 집안에서는 설음식으로 떡국 떡을 장만할 때, 요즘 우리가 흔히 보는 비스듬한 타원형이 아니라 동전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썰었다고 한다. 음식이 늘 부족했던 상민들은 같은 양이라도 푸짐하게 보이려고 길쭉하게 비스듬히 썰었으나, 양반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작고 동그랗게 썰었다는 것이다. 요즘도 다를 게 없다. 드라마에서 보면, 잘생기고 많이 배워 잘나가는 주인공은 어떻게 그렇게 긴긴 이름의 와인을 아주 자연스럽게 주문하는지 모르겠다. 실제 상황으로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주눅 들지 않을 수 없는 시추에이션이다. 그런 와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자동적으로 ‘구별짓기’를 당하는 것이다.

 

‘구별짓기’ 행동은 그와 연관되는 다른 행동들을 유발한다.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구별’을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그 사회에서 상위 집단에 속하고 싶은 사람은 그 사실을 뚜렷이 표현해서 자기가 그렇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마님은 도련님에게 열심으로 푸념을 하고 있으나, 도련님은 비싼 박래품 오트밀이 먹기 싫고 바나나 먹기에 바빠 마님의 말은 귀 너머로 듣는 모양이었다. “너 학교 가면 선생님한테 아침에는 밥 먹지 않고 오트밀을 먹는다고 해야 된다. 알았니?” “응. 보리죽 먹는다고 그랬어.” “이 자식 보리죽이라면 그까짓 선생이 오트밀인 줄 아니? 이제부터는 꼭 오트밀을 먹는다고 해야 돼. 알겠니?” “알았어. 바나나하고 커피차하고.” “그래, ‘오트밀 한 그릇, 바나나 두 개, 커피 한 잔을 먹습니다’라고 해.” 도련님이 학교 간 후 이 젊은 마님의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 보리쌀 섞은 밥과 장찌개와 간청어 꽁지뿐이다. 한 통에 육십 전 하는 오트밀을 먹는 아들의 식사와는 영 뚝 떨어진 밥상이다.

대구 출신으로 요절한 천재 여성 소설가 백신애의 1938년 단편소설 《일여인》의 한 대목이다. 1930년대에 ‘60전’이라면 지금 돈으로는 약 300만원에 해당한다. 이 어마어마한 값의 음식을 싫어하는 아들에게 억지로 먹이고, 그걸 꼭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알리라고 압박하는 엄마.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상황 같지만 백신애의 소설 세계는 엄정한 리얼리즘이다. 인간의 ‘구별짓기’ 심리를 이해한다면 이 상황도 리얼일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아이가 엄마 말대로 학교에 가서 그 사실을 전했다면, 그 교사는 그 아이 집안의 경제력과 함께, 그 엄청난 경제력으로 아이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향후 학교에서 아이의 생활이 대단히 편해지게 될 것이다.

 

최상류층 사회를 다룬 영화 <돈의 맛>의 한 장면 © 시너지·롯데엔터테인먼트


흔들리는 대접문화, ‘가격’ 아닌 ‘방식’ 찾을 때

 

구별짓기의 표현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타인에게 알리는 데도 역할을 하지만, 방향을 바꾸어서 자신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시사하는 데도 한몫한다. 어떤 사람이 식사를 하자고 해서 함께했다가 생각보다 융숭한 대접에 감동해서, 이후 그 사람과의 관계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김영란법이 시행 전부터 세간의 화제를 모아왔다. 가장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은 역시 이 법의 시행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타격을 입는 입장일 테다. 대충 생각해 봐도 요식업소, 그것도 1인당 3만원 선을 넘는 고급 요식업소의 운영자들이 그런 편에 속할 것이다. 음식으로 구별 짓고, 그렇게 구별 지어 상대방을 생각해 준다는 마음을 표현해 왔던 인간의 오랜 습성을 기초로 형성돼 온 ‘대접문화’가 흔들리고 있다. ‘가격’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진정성’을 표현할 길을 찾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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