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마다 단풍 들 듯 대선 앞두고 ‘또’ 고개 드는 색깔론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10.24 13:10
  • 호수 14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민순 회고록’ 공방 계기로 본 역대 대선 색깔론

‘송민순 회고록’ 공방으로 정치권에 때 이른 ‘북풍’(北風)이 불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빙하는 움직인다》에 포함돼 있는 참여정부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에 얽힌 막후 이야기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 이해관계자들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북한과 관련된 ‘색깔론’은 사실 여부를 떠나 부추기면 부추길수록 정치권의 유불리가 명확해지기 때문에 이번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현재의 정치 지형상 여당인 새누리당이 내년 대선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여당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내년 12월에 있을 대선까지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송민순 회고록을 신호탄으로 해서 제2, 제3의 북한 이슈가 계속 터져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전망은 역대 대선 전에 불거졌던 각종 북한 관련 이슈들이 대선 판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전례’에 근거한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189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KAL기 폭파 사건’이다. 대선을 열흘 앞두고 터진 이 사건은 당시 군사정권 교체를 열망하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사건의 테러범으로 지목된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15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됐고, 이 모습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리고 그다음 날 대선에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됐다. 당시만 해도 첫 대통령 직선제여서 군사정권 종식을 열망하는 국민적 분위기가 고조됐는데, KAL기 폭파 사건은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1987년 13대 대선을 하루 앞두고 국내로 이송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1987년 대선 전날 압송된 KAL기 폭파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후보로 나섰던 14대와 15대 대선에서도 색깔론은 어김없이 불거져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중부지역당 연루 의혹, 1997년 오익제 전 천도교 도령 월북 연루 및 자금 유입 논란에 시달렸다. 중부지역당 사건은 1992년 14대 대선을 두 달여 앞둔 10월6일 국가안전기획부가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95명을 간첩 혐의로 적발한 사건이다. 당시 안기부는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 95명을 적발해 이 가운데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씨 등 62명을 구속하고 300여 명을 추적 중이다”고 발표했다. 또한 당시 평민당 대선후보였던 김대중 후보의 비서가 관여됐다는 사실을 안기부 측이 유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추후 ‘남조선 노동당’의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판결했다. 1997년에는 15대 대선을 4개월 앞두고 오익제 전 한국천도교 교령이 월북했다. 오씨는 평양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대선 승리를 기원한다는 편지를 보내고, 선거 직전 북한 방송에 출연해 김 후보의 통일 방안이 북한 고려연방제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여당은 이를 이용해 김 후보를 공격했으나, 김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 바 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색깔론’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 색깔론으로 정부 여당을 공격한 것은 물론이고, 여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색깔론이 주요 화두였다. 신호탄은 2001년 있었던 언론사 세무조사였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언론사 23곳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주로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언론이 타깃이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실제로 세무조사를 통해 세 언론사의 오너 일가가 사법처리됐다. 이를 두고 권철현·이재오 등 한나라당 의원은 “(언론사 세무조사는) 비판언론 죽이기를 통해 북한의 환심을 사서 김정일 답방을 성사시키려는 음모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경선에서는 여론조사 1위 후보였던 이인제 후보가 자신을 턱밑까지 쫓아온 노무현 후보를 향해 색깔론을 제기했다. 이 후보는 노 후보를 겨냥해 “노 후보의 정책노선이 급진적이며 대중선동적”이라며 “나라의 장래를 위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후보는 노 후보 장인의 한국전쟁 당시 좌익 전력을 문제 삼기도 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색깔론이 비교적 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여론조사 1위 후보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2위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컸던 것이 이유로 꼽힌다. 색깔론을 자주 꺼내 들었던 보수 정당 입장에서는 굳이 이를 꺼낼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2007년 8월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을지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NLL 대화록’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가능성

 

가깝게만 봐도 2012년 12월 치러진 18대 대선에서도 선거판의 표심을 흔들었던 가장 큰 이슈는 북방한계선(NLL) 관련 대화록이었다. NLL 대화록 논란은 2012년 10월 대선을 불과 2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정문헌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면서 발언 내용이 담긴 비공개 대화록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불거졌다. 이어 총괄선대본부장이던 김무성 의원이 대선 닷새 전 유세장에서 추가 폭로에 나섰다. 추후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김 의원이 유세장에서 읽었던 내용은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것과 거의 똑같았지만, 김 의원은 이것을 “찌라시에서 봤다”고 주장했다. 이 폭로가 대선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는 엇갈리지만 보수 세력 결집에 큰 몫을 했다. 

 

대선이 모두 끝난 후 드러난 사실이지만 당시 NLL 논란은 다분히 기획성 폭로였다. 정문헌 전 의원이 이명박 정부에서 통일비서관을 역임할 때 열람한 대화록 내용을 당 지도부에 전달하고, 이를 대선 이슈로 부각시켰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새누리당은 정상회담 대화록 폐기를 ‘사초(史草) 실종 사건’으로 재점화시켰고,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 전 의원만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고, 회의록 폐기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조명균 전 비서관은 지난해 말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물론 이번 송민순 회고록 논란은 성격이 좀 다른 면이 없지 않다. 색깔론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다름 아닌 참여정부 외교수장이었던 송 전 장관이란 점 때문이다. 하지만 송 전 장관이 현재 여당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연결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면서 회고록의 순수성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