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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의 무뎌진 공감능력에 성추문이 와르르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0.25(Tue) 07:00:32 | 1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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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잖아요. 예술가를 일반인의 사고방식을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서울 소재 00미술관 큐레이터)


“예술가는 사람 아닙니까? 성추행 문제 있어 무풍지대는 없습니다.” 

(방송작가 신 아무개씨)

 

예술가와 성(性)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사회적 통념은 ‘지식, 정서, 도덕 등을 바탕으로 길러진 고상하고 원만한 품성’이라는 뜻의 ‘교양’이란 이름 아래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드러내놓고 좇는 것을 금기시해왔다. 이 같은 본능 가운데 성욕(性慾)은 특히나 은밀하고 미천한 것으로 치부돼왔다. 일정한 교육을 받은 시민에게 있어서 성욕은 개인의 내밀한 내면 속에 감춘 채 남몰래 추구해야 할 것이었다. 어쩌다 그 욕망이 공공연히 드러나 보일 때면 그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판은 으레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이런 상식과 통념이 조금 다르게 작동하는 영역이 예술가 집단이었다. 작가, 화가, 시인, 음악가 등 소위 예술가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추기에 바빴던 인간의 본능을 작품을 통해 끄집어냈다. 예술 활동에 있어서 성(性)은 숨길 것이 아닌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기자 주변도 그랬다. 대학의 문예창작가 입시생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고등학생 정아무개양은 지금껏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게 가장 큰 콤플렉스라고 말했다. 갓 대학에 들어와 연극 연출을 공부하는 이아무개씨는 “더 진솔한 작품 창작을 위해 (이성관계에 있어) 진흙처럼 살겠다”며 주변인들에게 선포하기도 했다. 예술가의 역할 가운데엔 분명 사회가 금기시하던 인간의 본질적인 면모를 정면으로 다루며 기존의 통념을 박살내는 역할이 있었다. 

 

과거부터 예술가들은 욕망에 충실했고 특히 성도덕 관념에 있어선 사회적 통념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또 이런 예술가의 ‘기질’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한 법정 판례에 따르면 부인을 두고 여러 여성과 상습적으로 성적 관계를 맺어온 한 예술가에 대해 “자유분방한 예술가이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다”며 참작하는 사례도 있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는 “현대에 들어와서는 욕망에 충실한 것이 예술가의 특권이고, 사회인습에 반기를 드는 것이 저항이라는 인식까지 생겨났다”며 “거기에 봉건적인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도 온존하며 불합리한 권력구조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적나라한 성 인식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읽는 혹은 바라보는 대상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선에서 용인되는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작품에 대한 인간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가려운 구석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숨겼던 부분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작가의 작품을 읽는, 혹은 보는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것이다.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소설가 박범신. © 연합뉴스


최근 소설가 박범신 씨로부터 시작된 문단계의 성추문 논란은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인 박진성씨는 시를 배우려는 여성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활동 중단을 밝혔다. 10월23일에는 서울 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인 함영준(38)씨가 미술계 여성들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트위터 글이 올라왔으며 다음날인 24일 함씨의 성추행 피해자가 언론 인터뷰를 하며 파장이 이어졌다.

 

예술계를 포함한 여론은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문단 내 고착화돼있던 스승과 제자, 문단권력과 일종의 추종자들 사이에 형성된 상하주종의 관계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작가들 사이에서는 당연시되고 있던 권력적 관계가 오랫동안 고착화되며 무뎌진 것이 고름이 돼 터져 나왔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가는 “박범신 작가 정도 되면 문단에선 거의 한류스타급이다”라며 “그런 분이 술 마시러 나오라면 당연히 뛰어나가고 그 자리에서 한번이라도 자기 이름을 부르며 친한 척이라도 해주는 게 큰 영광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위에 계신 분들도 이런 분위기를 당연히 여겼지만 우리 같은 새내기 작가도 무비판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수용했었다”며 “젊은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과거 문단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고 이번 일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작가는 작품 활동 속에서는 무한대로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 윤리나 삶의 방식과 혼동돼선 안 된다”며 “작품 속 아름다운 관계가 현실세계에선 범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의 의식이 작품이란 매개체를 통해 드러나고 그것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과 실제 세계에 적용되는 건 엄연히 다르다는 지적이다. 이조차 바로 보지 못하고 자기 부정만 반복하는 것은 문화예술계의 무뎌진 ‘사회적 공감대’를 드러낼 뿐이라는 비판이다. 

 

실제 일련의 성추문 파문을 두고 문단의 권력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과거 문단을 통해야만 작품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권력구조가 문단 없이도 작품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대중들 역시 편견 없이 즐기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시대착오적인 부분들이 도려내지는 것”이라며 “이번의 일은 한국의 문단이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정상화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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