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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한국의 사형수들] “내 아내 내놔라!” 예배당 불 질러 15명 사망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 방화범 원언식…24년째 수감 중 국내 최장기수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9(Sat) 18:00:31 | 1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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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은 이제 상징적인 의미의 형벌이 됐다. 법률상 사형이 존재하지만 19년째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사형이 집행될 확률은 거의 없다. 현재까지 사형이 확정된 미결수는 군 사형수를 포함해 총 65명이다. 대부분 반인륜적인 흉악범들이다. 시사저널은 강력범죄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국내 사형수들을 연재를 통해 집중 조명한다.

# 1992년 10월4일 오후 2시30분쯤.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의 한 건물 2층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 출입문을 누군가 박차고 들어왔다. 한국지적공사 직원인 원언식씨(당시 35세)였다. 예배당에는 90여 명의 신도들이 순회강사의 성경강해를 듣고 있었다. 원씨는 다짜고짜 “내 아내를 내놓아라!”며 연거푸 세 번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원씨의 등장에 놀란 신도들은 “부인은 오지 않았다”며 모른 체했다. 그러자 격분한 원씨는 한쪽 손에 들고 있던 휘발유통을 거꾸로 세우고는 예배당 계단과 안쪽에 마구 뿌렸다. 그래도 신도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원씨는 “끝내 아내를 내놓지 않으면 교회를 불태워버리겠다”고 말한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은 삽시간에 교회 내부로 번지기 시작했다. 벽과 천장이 목재인 데다 바닥에 깔린 카펫에 불이 붙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27평의 좁은 교회인 데다 출입문마저 쪽문 하나밖에 없었다. 더욱이 바닥에 깔린 카펫이 타면서 악취와 연기를 내뿜었다. 신도들은 출입구로 한꺼번에 몰려들었으나 문과 계단이 좁고 불길이 건물 전체로 번져 대피가 어려웠다. 

 

교회 안은 서로 먼저 빠져나오려고 밀치고 당기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연단 쪽의 신도들은 제대로 대피하지 못한 채 서로 엉켜 까맣게 타 죽어갔다. 창문 쪽에 있던 신도 10여 명은 당황해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골절상 등 중상을 입었다. 일부는 쪽문을 통해 1층 슬레이트지붕으로 올라갔으나 슬레이트가 깨지는 바람에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화재 발생 10분 후 경찰과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불길이 워낙 맹렬해 쉽게 잡히지 않았다. 불은 이날 오후 3시10분쯤  40여 분 만에 간신히 진화됐다. 왕국회관 내부가 완전히 소실되면서 사망자들 역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에 탔다. 교회 측은 뒤늦게 신원확인에 나섰으나 사망자를 확인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최종 집계된 사망자는 14명(수혈을 거부해 사망한 사람까지 총 15명), 그리고 36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에는 10살 이하 2명, 10대 4명, 20대 5명, 60대 1명 등이었다. 가족과 함께 온 어린아이들까지 희생된 것이다. 왕국회관에 불을 지른 원씨는 재빨리 뛰어나온 신도 5~6명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원씨는 이들을 뿌리치고 우산동 파출소 쪽으로 달아난 뒤 자수했다.

 

원씨는 1957년 강원도 원성군(원주시)에서 가난한 농민의 1남4녀 중 외아들이자 8대 독자로 태어났다. 11세 때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방송통신고를 다녔다. 1977년 9월1일 대한지적공사에 임시직으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1년 10월 삼척군출장소에서 원주출장소로 전근해 지적 측량을 담당했다. 

 

© 일러스트 황영진


아내와 종교문제로 불화

 

원씨는 성실한 가장이자 모범 사원이었다. 원주로 전근하면서 4000만원을 주고 25평짜리 아파트도 구입했다. 회사에는 결근 한 번 하지 않았다. 최우수사원으로 뽑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원씨는 평소 성실한 가장, 효성이 지극한 아들, 모범적인 직장인으로 알려졌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었던 원씨의 범행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충격은 컸다. 사건 직후 원주시민 1만여 명이 그의 구명을 위해 자발적으로 서명에 나서기도 했다.

 

천사 같은 원씨가 어쩌다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일까. 아내의 종교가 문제였다. 그는 방송통신고를 다니면서 부인 신아무개씨(당시 33세)와 만나 1982년 결혼했다. 사건 당시 원씨 부부에게는 12살과 9살 초등학생 딸이 있었다. 신씨가 여호와의 증인에 심취하기 전까지 원씨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신씨가 여호와의 증인에 빠지기 시작한 1991년 5월쯤부터 부부는 심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원씨에게는 중풍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노모가 있었는데 고부갈등도 심했다. 신씨가 왕국회관에 나가면서 자주 집을 비우자 어머니와 사이도 극도로 나빠졌다. 결국 노모는 며느리인 신씨와 더 이상 함께 지낼 수 없다며 딸이 사는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원씨는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실 때면 “나는 어머니를 못 모시는 불효자다. 미칠 것 같다”면서 신세 한탄을 했다. 단란했던 가정에 불화가 잦자 원씨는 모든 게 여호와의 증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에게 왕국회관에 그만 나가라며 사정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아내 마음을 돌리기 위해 1992년 6월에는 원주 시내에 방 한 칸을 얻어 약 두 달간 혼자 지내면서 아내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신씨는 남편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한 채 더욱 종교에 빠져들었다.

 

원씨는 평소 좋아하지 않던 술을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 1992년 10월4일 일요일 아침 숙직을 마친 원씨는 집에 돌아와 아내를 설득했다. 이미 종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내 신씨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결국 부부싸움으로 번졌다. 원씨는 “오늘부터는 절대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말했지만 신씨는 “가정보다도 하나님이 먼저이니 교회에 가야 한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화가 난 그는 밖으로 나와 소주 2병을 마신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왕국회관에 나가고 없었고 두 딸만 울고 있었다.

 

순간 원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의 분노는 이미 절제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그는 교회에 불을 지르기로 결심했다. 원씨는 석유가 들어 있던 흰색 플라스틱통을 창고에서 꺼내 보일러 기름통에 석유를 부은 뒤 빈 통을 들고 집에서 1km쯤 떨어진 주유소까지 걸어가 휘발유 10리터를 구입해 곧바로 왕국회관으로 향했다. 이때 신씨도 이곳에 있었다. 예배를 보고 있던 신씨는 교회 계단 쪽에서 남편의 고함소리가 들리자 예배당 뒷문을 통해 급히 빠져나갔다.

 

왕국회관에 휘발유통을 들고 온 원씨는 돌이킬 수 없는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원씨는 가정불화·고부갈등 그리고 자신의 범행이 모두 ‘종교에 빠진 아내’가 원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신씨의 말은 달랐다. 사건 후 종적을 감췄던 신씨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경찰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은 뒤 돌아갔다.

 

신씨는 왕국회관에 다니게 된 이유에 대해 “시어머니와 갈등이 빚어지면 남편은 어머니 편을 들고 나를 몰아세워 큰 갈등을 느꼈다. 친정어머니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니 성경공부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성경책을 주어 교리공부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신씨는 고부갈등이 있을 때마다 남편이 어머니 편을 들어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됐다고 했다. ‘집안일을 소홀히 했다’는 것에 대해 신씨는 “일주일에 3번 교회에 간다. 화요일과 일요일은 낮에 예배와 성경공부를 해 별문제가 없었으나 목요일에는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교회에서 예배 보고 10시나 11시쯤 집에 들어가 남편과 자주 다퉜다. 남편이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잘 돌보지 않는다고 화를 내 고부갈등을 느꼈고 이 때문에 교회 일에 더욱 열심히 매달렸다”고 말했다.

 

 

간암 말기 진단 받고 11년째 투병 중

 

경찰은 원씨에 대해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혐의만을 적용할 방침이었으나 원씨가 “집을 나설 때 교회를 불태우기로 마음먹고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함에 따라 살인 혐의를 추가했다. 원씨는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1심과 2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고 1993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2005년 9월에는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수술로 간의 절반가량을 잘라냈다. 당시 의사는 길어야 2~3개월 산다고 했지만 수술 후 11년째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현재 미결수 신분으로 24년째 광주교도소에 구금돼 있는 국내 최장기 수감자다. ​ 

 

 

해외의 살인마들

미국 최초의 연쇄살인마 ‘해리 하워드 홈즈’ 

 

해리 하워드 홈즈

해리 하워드 홈즈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본명은 ‘허먼 웹스터 머젯’이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학대를 받아 폐쇄적인 성격이 됐다. 어릴 적부터 사람을 속이는 것에 능숙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금융사기로 돈을 벌었다. 1882년 미시간 의과대학에 입학해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강한 살인 충동을 느끼게 된다. 본격적인 살인을 위해 시카고로 이주한 후 이름까지 바꾼다. 당시 시카고에서는 만국박람회가 열리고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해리는 1883년 살인을 위해 특수 설계된 호텔을 신축했다. 100개가 넘는 방마다 완벽한 방음장치를 했다. 모든 방 안을 감시할 수 있도록 비밀 구멍도 만들었다. 또 방 안에는 가스 파이프를 설치했다. 죽은 시신들을 지하실로 떨어뜨릴 수 있도록 낙하장치도 설치했다. 지하에는 시체를 소각할 수 있는 소각로까지 만들었다.

 

해리는 이 살인호텔을 ‘캐슬 호텔’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호텔 투숙객들을 밀실로 유인해 온갖 보험 서류에 서명하게 한 후 독가스를 이용해 살해했다. 시신은 지하로 떨어뜨렸다. 죽은 투숙객들을 해부하고 시신은 의과대학에 팔아넘겼다. 실종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살인행각이 들통날 것을 두려워한 해리는 다른 지역으로 터전을 옮기기로 하고 보험금을 노려 자신의 호텔에 불을 질렀다.

 

화재 원인을 조사하던 소방관은 호텔 지하에서 수많은 유골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부터 해리는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고 석 달 뒤 보스턴에서 검거됐다. 그는 재판에 넘겨져 27건의 살인과 9건의 살인미수를 자백했다. 실제로는 살해당한 피해자가 최대 2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해리는 1896년 5월7일 교수형을 당한다. 사형집행관의 실수로 교수대가 고장 나 15분 동안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해리의 마지막 유언은 ‘시멘트로 채워진 관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피해자와 가족들의 복수를 두려워한 것인데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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