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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회고록] 탄핵 역풍…오만과 내분으로 자멸한 여야

국민 무서운 줄 금방 잊는 ‘조두(鳥頭)’ 정치꾼들

박관용│前 국회의장 정리=김현일 대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4(Fri) 13:03:32 | 14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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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야당의 ‘3일 천하’였다. 국회는 ‘탄핵안은 국회본회의 보고 24시간에서 72시간 이내 무기명 투표’ 규정을 지켰고, 압도적 다수의 야당은 ‘잠시나마 한때’를 풍미(風靡)했다. 그러나 목적을 이룬 그 순간부터 사태는 반전됐다. 여의도에서 불붙은 탄핵 반대 시위는 전국으로 옮겨 붙어 거세게 타올랐다. 열린우리당의 ‘정권 찬탈’ ‘의회 쿠데타’ 구호가 그대로 먹혀들었다. 파렴치한 본인과 측근들 비리에다 국가원수로서의 자질과 역량 부족 등 탄핵소추안에 담긴 소추 사유만 보면 탄핵이 아니라 하야(下野)와 사후 형사적 책임까지 물어 마땅했지만 국민 다수의 생각은 그게 아님이 분명했다. 청렴 등에선 나을 게 없는 야당이 다수를 무기로 대통령 길들이기에 나선 것쯤으로 봤기에 반발 강도도 높았다.

 

“국회 내에선 소수일지라도 명색이 여권이다. 그냥 당하고만 있겠는가. 게다가 대중 동원의 고수들이다. TV방송이 탄핵 반대 열기를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 그뿐이겠는가. 청와대와 열린당의 절치부심(切齒腐心) 반격도 반격이지만 민심(民心)이 절대적이었다. 70% 이상의 국민이 반대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70%가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탄핵은 ‘아니다’라는 게 일찍이 확인됐는데도 야당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당시를 지켜봤던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여러모로 ‘과(過)했다’는 데에는 야당 사람들 상당수도 공감한다.

 

2004년 5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열린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초청 만찬. 노무현 대통령이 김현미 당선자와 파안대소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4·15 총선 승리 이후 속개된 헌법재판소의 5·14 탄핵 기각 결정으로 현직에 복귀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하등 나을 게 없는 야당’ 여론은 치명타

 

“지금 와서 이런저런 소리를 하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엔 문제가 많았다. 그렇지만 나 자신 탄핵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거듭 권유했고 열린당 내부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왔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이를 걷어찼고 뒤늦게 시늉만 냈으니 도리가 없었다. 총선 결과는 다른 얘기다. 의회민주주의 절차상 탄핵 의결은 불가피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술회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3월12일, 이날 아침 청와대를 떠났던 대통령은 탄핵 소식에 “지금 이 과정은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위한 진통이라 생각하며 그저 괴롭기만 한 진통은 아닐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리곤 “오늘 저녁까지는 괜찮다(아직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니까. 국회는 탄핵소추서 정본은 헌법재판소에, 사본은 청와대에 보내는데 청와대 접수와 동시에 권한 중지)”며 예정된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 “마지막일지 모르겠는데 내년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와대로 돌아온 직후의 ‘국무회의가 아닌 국무위원 간담회’에선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데 시간을 잘 활용하겠다”는 말로 대통령 지위는 유지되지만 권한이 없는 처지를 완곡하게 표시했다. 이후 관저에서 칩거했다는 게 공식 브리핑이지만 이를 악문 대통령이 어땠을까는 미뤄 짐작된다. 그는 헌재의 탄핵 기각 직후 “역사를 성찰하고 자아를 충전하며 국정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학습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목소린 나직했지만 실은 포효(咆哮)였다.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설움 받던 소수파에서 절대 다수파 여당을 거느린 국가원수로 당당하게 귀환했다.

 

대규모 촛불시위와 함께 불어 닥친 탄핵 역풍은 가공할 그런 것이었다. 야당의 득의양양은 단 이틀도 못 가서 경악으로 변했다. 총선이 불과 1개월 앞이었기에 손쓸 겨를조차 없던 야당은 태풍 만난 난파선 신세였다. 5적(賊)으로 지목된 탄핵 주도 한나라·민주 양대 야당의 지도부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민주당은 추미애 선대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사령탑을 맡았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 이미 대표 임기가 끝났고 공천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논외로 하더라도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처지는 더욱 한심했다. 한나라당은 영남이라는 텃밭이 있지만 민주당은 열린당과 지지기반이 겹쳤기에 그랬다. 놀란 소속 의원들의 지도부 총사퇴 요구 속에 조 대표를 제외한 모두가 물러났다. “조 대표 사퇴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탄핵 자체를 부정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천시(天時)와 민시(民時)가 안 따랐으니 그에 대한 유감표명은 가능하지만 ‘(탄핵이) 다 잘못했다거나 취소한다’는 안 됨을 추 위원장에게 분명히 했다. 추 위원장이 ‘탄핵 유감을 말로 하지 않으면 되겠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겉으로 말을 않는 대신 호남에 내려가 삼보일배를 했다.” 5적의 하나로 지목됐던 김경재 전 의원의 회고다. “조 대표가 추 위원장에게 선거 지휘봉을 넘기면서 당인(黨印)까지 맡긴 것은 문제였다. 공천 등록 등에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인을 돌려주지 않아 조 대표를 앞세워 중앙선관위에 달려가 도장을 바꿨다.” 그 와중에도 권력의 끄트머리나마 확보하기 위해 벌인 ‘개인(改印) 해프닝’은 정치권의 속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다.

 

이랬으니 총선 결과는 뻔했다. 열린당은 152석을 차지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당의 과반수 확보는 처음이다. 정동영 당의장의 ‘60~70대는 퇴장할 분들…투표 않고 쉬셔도 된다’는 노인 폄하 발언이 없었다면(정 의장은 즉각 당직과 비례대표 후보 사퇴로 비판여론 확산 차단) 그 이상의 의석 획득이 가능했으리라는 게 정설이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표가 지휘한 한나라당은 영남 텃밭에서의 60석 덕에 121석(지역 100, 비례 21)을 확보했다. ‘차떼기’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국민 사과와 여당 견제 호소가 그런대로 먹혀든 결과였다. 민주당은 궤멸했다. 전남에서 5석 등 비례대표를 포함, 9석이 전부였다. 지역구 당선자는 2명에 불과했으나 13.0%의 득표율을 기록, 비례 의석 8석을 따낸 민주노동당에게 원내 3당 지위마저 넘겨야 했다. 본인도 탄핵 유탄을 맞고 낙선한 추 위원장은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광주·전북에서의 전멸은 20대 총선에서의 국민의당 출현을 예고한 듯하다.

 

 

텃밭 호남에서도 쫄딱 망한 민주당 교훈

 

뒤늦게 탄핵에 동참한 자민련은 충남에서 4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텃밭이라는 대전·충북에서 단 한 석도 못 챙겼으니 그럴 만했다. 비례대표 배분 기준인 ‘3% 득표-지역구 5석’에도 미달(2.8%)하는 바람에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한 김종필(JP) 총재의 10선 기록도 무산됐다. “사흘간 두문불출했다. 민심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최초의 패배를 마지막 패배로 삼기로 했다.” JP는 총선 나흘 뒤 서울 신수동 당사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제 완전히 연소돼 재가 됐다. 일찌감치 떠날 수도 있었지만 무엇인가 세워놓고 떠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피력했다. 그가 말한 ‘무엇인가’는 내각책임제다. 정치를 전투의 장으로 만드는 대통령제는 고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장엄하게 정치와 이별하고 싶다는 JP의 마지막 소망은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개헌 물꼬를 정식으로 트면서 새로운 국면(실현과는 별개로)을 맞고 있다.

 

탄핵정국은 노 대통령과 열린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아니 상식으로만 이해가 되는 결과다. 그 상식의 바탕엔 민심이 자리한다. 민심을 거역, 오만방자했다간 용서받지 못한다는 지엄한 경고였다. 하지만 이 땅의 새대가리(鳥頭) 정치꾼들은 이내 그 교훈을 잊었다. 알량한 권력에 취해 국민들을 졸(卒)로 봤다. 17대 총선에서 모인 152명의 의원은 힘이 아니라 내분을 조장하는 고질이 됐고 “한나라당에서 터질 것 같은 폭탄이 당내에서 터졌다(노 대통령 개탄).” 총선 승리 이후 3년여 동안에만도 6명의 당 대표(임시 3명 제외)가 명멸했으니 그 정도가 어땠는지는 상상이 간다. 재보선 때마다 참패를 거듭하더니 2006년 지방선거에선 전북지사 하나 달랑 건졌고, 혐오탈당이 이어지면서 노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6월엔 7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3년 전 총선에서 얻은 의석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두 달 뒤엔 아예 당 간판을 내렸다. 싫다고 나간 의원들이 주축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된 것이다. ‘대(大)’니 ‘통합’이니 하는 수식어로 흉한 모습을 가리려고 했지만 국민들이 속을 리 없었고 대선 이후엔 폐족(廢族)을 자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누차 검증된 철칙임에도 권력의 ‘오만(傲慢)’ ‘조두(鳥頭)’ 행태가 시공(時空)을 초월해 반복되니 딱할 따름이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감히~”는 ‘정치적’ 구호…국회만이 탄핵할 수 있어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는 헌법재판소(헌재)의 기각(棄却) 결정으로 막을 내렸다. 거두절미(去頭截尾), 야당이 졌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이겼다. 아니 야당의 완패(完敗), 여권의 완승(完勝)이었다. 거기에 탄핵심판이 계속되는 가운데 치러진 4·15 총선에서 절대 과반을 넘는 대승을 거두었으니 ‘완승’이란 표현도 부족하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으나~’라는 헌재 결정의 전제는 야당에게 ‘일부나마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위안거리는 될지언정  대세를 논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

 

2004년 3월12일 오후 진해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이날 오전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지만 청와대 도착 직전까지는 ‘아직’ 대통령이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어차피 헌재 심판 전에 치러진 4·15 총선 등으로 ‘결정 방향’이 가시화됐기 때문에 탄핵소추 사유를 더 치밀하게 다듬었다고 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지만 탄핵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결정이 달라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싶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복기할 여지는 있다. 무엇보다 ‘총선에서 열린당이 지면 대통령직을 내려놓겠다’는 대목이다. 이는 입법부 구성과 행정부 수장의 진퇴를 연결시킨 것으로 헌법상의 3권분립 원칙 위배(의회를 겁박했다는)의 확실한 증거라는 것. 그러나 이 부분은 국회의 탄핵소추안과 헌재에 제출한 심판 청구서에 반영되지 않았다. 탄핵심판 청구인 대표 격인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이 뒤늦게 사유 추가를 요청했지만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사실 애당초 소추 사유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야당 안팎에서 나왔고, 따라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탄핵안을 폐기시킨 뒤 다시 소추안을 만들어 가결시켰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그러나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 특히 3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민주당의 위기감이 ‘차제에 확실하게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한나라당 지도부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수적 우위 등에 힘입어 기세등등했던 야당 지도부의 강공과 기왕에 적시된 내용만으로도 탄핵이 충분하다고 방심한 게 사태를 그르쳤다는 평가는 새겨볼 만하다.

 

이와 함께 헌재의 심판이 절차상 흠결 등 최소한에 그쳐야지, 형평 등을 명분으로 전체를 재단하려 들면 결국 ‘정치재판’이 된다는 반론도 심심치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대통령 탄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헌재 구성 때문이라는 것. 9명의 헌법재판관은 국회 선출 3명과 대법원장 지명 3명을 포함, 대통령이 임명하고 재판소장도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구성체가 포괄적 권한을 갖는다면 탄핵은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탄핵소추로 권한은 중지되지만 지위는 유지하는 ‘탄핵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할 충분한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탄핵 반대 구호 중 국민감정에 가장 잘 다가선 것은 ‘우리(국민)가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왜 감히 탄핵하느냐’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폐(語弊)가 있다. 탄핵은 국회만이 하도록 헌법에 명문화돼 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라는 의미라면 몰라도 ‘국회가 감히 탄핵을’이라는 주장은 억지다. 그런 논리라면 그 구성이 국민 의지와 직접 상관없는 헌재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 결정을 가타부타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옳을 수도 있다.

 

 야당 측은 당초 헌재의 분위기는 탄핵 찬성 재판관이 압도적이었으나 여권의 직간접적 회유와 ‘압력’이 기각 결정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다 끝난 일이다. ‘2004헌나1’은 판례로 굳어졌고, 이젠 대통령 탄핵 청구 때 헌재는 소추 사유 전반을 심판할 수 있다. 이후 달라진 것은 소수 의견을 공개한다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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