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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음식인류학] 발효식품의 매력에 빠져든 인류

한국의 김치, 그리스의 요구르트·일본의 낫토와 함께 ‘세계 5대 건강식품’에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6(Sun) 08:00:33 | 14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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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미국의 한 건강전문지에서 ‘세계 5대 건강식품’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그중 한국의 김치가 끼어 있었다. 다른 네 가지 식품은 그리스의 요구르트, 일본의 낫토, 지중해 지방 음식인 올리브유, 그리고 인도가 주산지인 렌틸콩이었다. 다섯 가지 중 세 가지가 발효식품인 것으로 봐서, 이 건강식품을 선정하는 데 참여한 사람은 발효음식을 높이 평가했던 것 같다.

 

요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발효음식은 대표적 건강음식으로 새로운 평가를 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닮아보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냄새가 고약한 후진국 음식이라고 창피하게 여겼던 김치다. 다른 곳도 아닌 미국의 명망 있는 건강 잡지로부터, 그 무수한 세계 음식 후보들을 제치고 5위 안에 들었다니, 발효식품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라는 맥락이 없었다면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 시사저널


요구르트와 낫토, 국내에서도 사랑받아

 

발효(醱酵)라는 한자 단어도, 영어인 ‘퍼먼테이션’(fermentation)이란 단어도, 술이 익어 부글부글 괴어오르는 모양을 가리키는 데서 출발한 것으로 보아, 인간이 발효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기후가 아주 춥지 않은 곳이라면 과일이나 곡물 익힌 것을 그냥 놔두기만 해도 저절로 술이 되었을 테고, 호기심에 그걸 먹어본 사람들은 그 짜릿한, 미각을 넘어서는 어떤 감각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 역사의 시발점은 인간이 야생에서 먹거리를 채취하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중 하나인 포도주의 역사는 그리스 신화의 형태로 전해진다.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의 하나인 디오니소스가 포도주의 창시자라는 것이다. 인간이었던 테베의 공주 세멜레와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질투심 강한 제우스의 본처 헤라의 계략으로 태아인 상태에서 거의 죽을 뻔한 처지에 놓인다. 마지막 순간 제우스가 구해서 자신의 허벅지 안에 넣어 키워 완성된 아기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술은 처음엔 원래의 식품 모습이 사라지고, 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변형된다. 그러다가 일정 기간 정성을 들이면 기가 막힌 다른 식품으로 변하는 것이다.

 

술뿐 아니라 모든 발효식품이 그런 과정을 거친다. 일단 처음엔 원래의 식품이 분해되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그 과정 중에 맛을 보면 불쾌한 냄새와 입맛을 느끼게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충분히 진행된다면, 원래 음식과는 전혀 다르지만 다른 어떤 음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을 갖춘 매력적인 식품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매력’이라는 개념에 주목하자. 좀 더 보편적인 ‘아름다움’과 달라서, 매력은 그걸 느끼는 사람에게만 어필이 된다. 즉 누구나 똑같이 잡아끄는 힘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개의 발효식품은 그것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누구에게나 대체로 사랑을 받지만, 그 고장을 떠나면 이 식품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반면 좋아하는 사람에겐 정말 미치도록 좋은 식품이 된다. 다시 디오니소스의 신화를 빌려서 포도주의 위력을 생각해 보자. 끝까지 자신을 해치려는 헤라의 악의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려는 헤르메스 등 신적 존재의 도움을 받아, 젊은 시절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일대뿐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방랑의 길을 헤쳐 간다. 그 사이에 디오니소스를 주신으로 모시는 숭배자의 무리가 형성되는데, 이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광적인 컬트를 거행한다. 그 오버하는 모습이 사회에 해악이 된다고 하여 디오니소스를 탄압하려 했던 어떤 왕은 그 광란의 제의(祭儀) 속에서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위력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드물다 하더라도, 일생 동안 어떤 종류든 발효식품의 노예가 되는 경험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른 고장의 발효식품이어서 처음에는 잘 먹지 못했다가도 일단 입맛이 길들여지면, 배고플 때마다 그 음식이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요구르트가 한국 시장에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70년대. 불과 반세기 만에 요구르트는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디저트 재료 중 하나가 되었다. 잘 삶은 대두를 발효시켜 만드는 일본 식품 낫토 역시 한국 도시의 음식점에서 다양한 메뉴로 사랑받고 있다.

 

 

김장철의 김치, 발효 장점 극대화시킨 식품

 

무엇이 발효식품에 이런 매력을 주는 걸까? 생화학 과정으로서 ‘발효’는 복잡한 분자구조를 가진 영양성분이 발효미생물의 도움으로 단순한 분자구조를 가진 성분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발효미생물은 복잡한 구조의 물질을 쪼개 단순한 구조의 물질로 바꾸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로 살아가는 존재다. 술의 경우엔 당분이나 전분 등 복합 탄수화물이 알코올이라는 단순하고 체내에 잘 흡수되는 성분으로 변하는 것이고, 낫토나 된장은 견고하고 복잡한 콩 단백질을 단순하고 분해되기 쉬운 상태로 바꾸어 소화흡수가 잘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자구조가 단순화된 성분은 위장에 부담을 덜 주고 체내에 쉽게 흡수되어 에너지원으로 신속하게 전환되기 때문에, 음식을 먹었을 때 속이 편할 뿐 아니라 금방 기운이 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음식 속에 포함됐을 수 있는 유해성분(독성)을 분해해서 무해한 단순 물질로 만들어 대사에 이용되거나 체외로 배출되기 쉽게 해 준다. 그렇게 되면 독성을 체내에 돌리지 않으려고 명치 아래 부분 소화관의 혈관이 좁혀지는 현상, 즉 체기(滯氣)가 생기지 않고 독성분해를 위해 불필요하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더 쌩쌩해질 수 있다.

 

이렇게 음식에 기적을 부려주는 고마운 발효미생물이 음식 성분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백질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역겨운 냄새로 다가올 수 있다. 발효식품에 대해 호오(好惡)가 갈리는 일이 많은 이유고, 그렇게 우수한 식품인 김치가 한동안 세계무대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이유다. 그래도 어떤 음식이든 자주 접하다 보면 우리 몸속에서는 그 음식에 대한 적응 체계가 발달한다. 아주 나쁜 음식이라면 몰라도 인체에 해로운 성분들을 다 잡아놓은 발효음식의 경우, 어느 정도 적응기간만 지나면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식품이 될 수 있다. 곧 김장철이 다가온다. 고추·배추·무·파·마늘·생강. 그 자체로서 식물성 항산화물질의 함량이 높은 몸에 좋은 재료들을 모아, 여러 날 발효시켜 더 장점을 극대화시킨 식품이다. 몸이 위축되기 쉬운 겨울철, 식사 때마다 체력 회복의 좋은 도우미가 되어줄 김장 김치의 맛. 오랜 세월 동안 우리를 매료시켰고, 이제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대표적 발효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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