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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시인·교사의 탈을 쓰고 우리를 짓밟았다”

배용제 시인 성폭행 피해자들이 밝힌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7(Mon) 13:46:14 | 14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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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배용제씨가 제자인 학생들을 성추행과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 시사저널 미술팀


최근 문단 내 성폭력 논란으로 시끄럽다. 소설 《은교》로 유명한 작가 박범신, 시인 박진성·백상웅·배용제씨 등 문인들의 성추문이 연이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폭로되고 있다. 이렇게 폭로된 문인만 10여 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행동에 속죄하겠다는 뜻으로 ‘사과문’을 내거나 ‘작품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인들의 사과문과 작품활동 중단이 여론의 비난과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지금까지 폭로된 문인들 중 ‘배용제 시인’의 성폭력 사건은 경악할 정도다. 10월22일 트위터에 ‘고발자5’를 시작으로 ‘생존자’ ‘HateB’ 등의 계정이 잇따라 개설됐다. 모두 하나의 사건 고발을 위해 피해자들이 만든 것이다. ‘고발자5’는 “B시인의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계정”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 가해자의 실명 대신 ‘B시인’이라고 표기했다.

 

‘고발자5’는 “미성년자였던 저희들에게 한 시인이 행한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합니다. 피해자는 5명이 전부가 아닙니다”라며 과거 B시인에게 당했던 피해자들의 성추행과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글은 최소 수백에서 수천 개의 리트윗(RT)으로 온라인상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10월26일 오전 한 시인이 사과문을 통해 성폭력 사실을 인정했는데, 그가 바로 배용제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과문’을 올렸다가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자, 계정을 삭제한 후 블로그를 개설해 두 번째 사과문을 올렸다.

 

배씨는 사과문에서 “SNS상에 피해자들에 의해 제가 저지른 폭력들이 드러난 일련의 사태의 장본인”이라고 밝힌 후 “예고에 재직하던 수년 전부터 그만둔 후까지 폭력이라는 자각도 없이, 단 한 번의 자기 성찰도 하려 하지 않은 채, 많은 일들을 저질러왔다”며 피해자들이 제기한 성추행·성폭행 등을 인정했다. “몇몇 아이들과는 성관계를 가졌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향후 시집 출간 등을 모두 포기하고,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배씨의 사과문은 오히려 피해자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이들은 배씨의 사과문에 대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위계(僞計)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합의된 행위’였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카카오톡 화면은 피해자들이 배씨로부터 받았다는 대화 내용


피해자 대부분 여고생들

 

피해자들은 또 “배용제는 정규 교육시설인 한 고등학교의 ‘실기교사’ 재직 시 만난 수많은 미성년자이자 학생들을 대학입시와 등단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무허가 개인 창작실’로 찾아오게 해 그들의 미래를 담보로 ‘직간접적인 협박’을 일삼으면서 오랜 기간 반복적인 성적 착취, 즉 성추행과 성폭행을 저질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시인 배용제와 학생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자는 피해자들과 접촉해 피해 사실과 진술서, 카카오톡 대화내용, 음성 녹취록 등 사건 전말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입수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자들 대부분은 경기도의 한 예고 졸업생들이다. 배씨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약 5년 동안 이 학교 문예창작과 실기교사로 재직했다. 배씨가 ‘시 담당’ 교사로 오면서 나름 성과도 거뒀다. 2009년에 열린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에서 이 학교 학생 2명이 입상했고, 배씨는 지도교사상을 받았다. 같은 해 한 2학년 학생이 계간 ‘시인세계’의  신인작품 공모에 당선돼 등단을 하기도 했다.

 

시를 전공하는 예고 학생들은 백일장에 나가 수상하는 것을 최고의 스펙으로 여긴다. 배씨가 실기교사로 부임한 후 시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백일장에 나가 상을 타는 횟수가 늘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더욱더 배씨를 시인이자 교사로서 신뢰했고 의지했다.

 

배씨는 예고 재직 때인 2011년 12월 서울 종로에 문예창작실 ‘동상이몽’을 오픈하고 학생(습작생)들을 모았다. 여기에는 예고 학생이나 졸업생들이 수강생으로 다수 참여했다. 문예창작실에 가입했던 한 졸업생은 “재학생들은 ‘대학입시’를 위해, 졸업생들은 ‘등단’을 위해 레슨비를 내고 창작실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학생(습작생)들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장소는 시를 가르친다는 ‘창작실’이었다. 외부로부터 은폐·엄폐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장기간 상습적인 성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위장막’이 있기에 가능했다.

 

배씨는 또 ‘창작지도’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이곳으로 혼자 불렀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배씨는 여러 명을 함께 부르지 않고 특별히 아끼는 것처럼, 편애하는 것처럼,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현혹했다. ‘시인의 가르침’에 목말라 했던 학생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창작실을 찾았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배씨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성폭력을 끊임없이 합리화시켰다. 특별한 것이 아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세뇌시켰다. 배씨가 학생들과 대화한 것을 보면 “너랑 섹스하고 싶다” “남자친구 없으면 내가 대신 역할을 해 주겠다” “너 자위는 해 봤니?” “너는 가슴 모양이 예쁠 것 같다. 만져도 되냐?” “시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경험을 해 봐야 한다” “교복 입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의외로 살결이 희다” “너는 정말로 섹스가 싫냐?” 등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들이 등장한다. 학생들은 애써 시인의 ‘자유로운 문학적 언어 표현’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기자가 입수한 배씨와 피해 학생의 음성녹취록을 보면 “(너한테) 가끔가다 음란한 생각도 들었고, 진짜로 너하고 자고 싶고, 느껴보고 싶었다”며 노골적으로 말한다. 카카오톡 대화록에는 “그럼 쌤이 너 꼬드겨 연애나 할까?”라거나 “난 학교에서도 대충하면서 내 글 많이 쓰고 내 여자 만들어 그 여자에게 정성이나 쏟을랜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피해자들의 진술을 보면 배씨의 성폭력 밑바탕에는 뿌리 깊은 ‘여성 혐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는 물론이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다. 학생(습작생)들에 대한 성적 비하는 일상적인 언어였다.

 

배씨에게 성폭행당한 학생들은 아직 성경험이 없는 소녀들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성폭행하면서 변태 행위를 강요했고, 점점 그 강도도 높아졌다. 피해 학생들이 당황하거나 무서워하면 “네가 소설에서 벽을 마주하는 이유는 틀을 깨지 못해서 그렇다. 탈선해야 한다. 내 주변엔 미성년자인데도 처녀가 아닌 애들도 많다” “네가 아직 안 익숙해서 그렇다. 부끄러워하지 마라. 이걸 깨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소설이나 시를 잘 쓰려면 성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배용제 시인의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들의 SNS 글 ⓒ 고발자5 커뮤니티 캡쳐


나체 사진에 성폭행 동영상까지 촬영

 

배씨는 학생들이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이간질시키거나 ‘배은망덕한 애’로 몰아갔다.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철저하게 배척하는 수법으로 순종을 강요했던 것이다. ‘입시’와 ‘등단’을 앞두고 있었던 학생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반발하면 찾아올 불이익 때문에 항상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런 사실은 피해 학생들의 진술서에도 잘 나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씨는 학생들을 성추행이나 성폭행하면서 자신의 문단 영향력을 내세웠다. 피해 학생들에 따르면 “나는 문단에서 영향력이 있다”며 과시했다고 한다. 배씨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이것을 ‘너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상의 협박으로 받아들였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배씨는 미성년자 제자들을 성폭행하면서 나체 사진이나 성관계 장면을 촬영했다. 한 피해자(습작생 6)는 “자신의 문학실에서는 옷을 입을 수 없다며 그곳에 있는 동안엔 아무것도 입지 못하게 했다. 담요로 몸을 가리고 있으면 그것을 가슴과 성기가 보이게 젖혀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습작생 7)는 “그는 서너 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제가 모르게 휴대폰을 만지는 척하며 저를 촬영했다. 몇 번 카메라 화면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알아챘다. 그는 또한 창작실에서 외부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며 자신의 컴퓨터에 여성의 나체·성기 사진을 슬라이드로 돌리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배씨는 학생들이 제기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사과문을 통해 인정했다. 지금까지 사과문 외에는 어떠한 문제도 제기하지 않은 채 칩거 중이다. 기자는 배씨의 자세한 입장을 듣기 위해 세 번에 걸쳐 전화하고, 두 번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현재 배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당 예고 졸업생들이 연대해서 ‘공동성명서’를 채택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죄를 지었으면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다”

시인 배용제 성폭력 피해자연대 대표  

 

사과문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는가.

전혀 없다고 본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성관계는 합의였다는 뉘앙스를 표하고 있지 않나. 자신이 가진 젠더, 기성문인, 스승으로서의 기득권이나 휘두른 권력에 대한 자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상처가 회복됐으면 한다는 부분도 황당하다. 배씨가 그렇게 쉽게 논할 문제가 아니다. 설마 상처 회복이 그저 사과문 몇 줄 쓰면 된다고 생각한 건 아니길 바란다. 

 

사과문에 법적 처벌을 받겠다는 내용이 없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법적 처벌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성폭력 수법으로 봐서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의한다. 앞으로 ‘고발자5’를 비롯한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연대가 더 커진다면, 지금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또 다른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해자인 배용제 시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숙과 절필이라는 형벌은 누가 내린 것인가. 그에 누가 동의했는가. 당신 스스로 내린 형벌이 아닌가. 언론을 고소하겠다는 뉴스를 봤는데 황당하다. 이게 아직도 개인 대 개인의 작은 갈등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말해 달라.

여러 논의가 있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 다만 더 많은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지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우리는 규탄 대상을 넓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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