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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내고 잡일하는 예비 간호조무사 ‘자격페이’ 논란

‘실습 780시간’ 채워야 시험 자격 얻어…제도적으로 강요된 ‘노예생활’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1.10(Thu) 15:00:30 | 14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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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14일 서울진로직업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주사 놓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열정(熱情)이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면접관은 구직자에게,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에게 ‘당신은 과연 열정적으로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사회 진출을 준비 중인 이들에게 나태함을 이기고 스스로 채찍질할 것을 요구한다. 입사 면접은 물론 《슈퍼스타K》 《K팝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그렇다. ‘열정적으로 도전하면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어느 대통령의 말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논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논리에서 파생된 신조어가 ‘열정페이’다. 열정과 페이(pay)가 결합한 단어로, ‘돈(pay)’ 대신 ‘좋아하는 일(열정)’에 대한 경험을 주겠다는 의미다. 인턴이나 수습처럼 불안정한 형태로 고용된 후 저임금이나 무임금으로 일하게 된 청년층에 대한 노동 착취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된다. 주로 패션·미용·디자인·출판 업종에서 열정페이 논란이 불거졌다.

 

 

그들의 ‘실습’은 설거지·청소였다

 

하지만 열정페이보다 더욱 문제가 심각한 ‘자격페이’가 있다. 제도적으로 강요된 무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이다.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교통비나 식비조차 개인 주머니를 털어야 했다. 오히려 학원에 매월 20만원 정도의 실습비를 내며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을 얻기 위해 780시간의 실습시간을 채워야만 했다. 임금 대신 응시자격을 얻은 ‘자격페이’인 셈이다.

 

2015년 대학에 입학했던 홍아무개씨(여·21)는 올해 자퇴를 한 뒤 간호조무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지방에 위치한 4년제 대학이었지만 졸업 이후 취업이 어려울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편도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는 노력 대신 간호학원에 등록해 공부를 하기로 했다. “졸업 이후 100% 취업을 보장한다”는 간호학원의 말에 혹했다. 평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학원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도 벌 작정이었다. 학원 강사도 “1년만 고생하면 연봉 2400만원가량의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

 

2016년 3월부터 학원을 다니던 홍씨는 6월쯤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일정 시간(780시간)의 실습 과정을 거쳐야 간호조무사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무급’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론 수업만 받던 그는 병원에서 직접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첫 실습을 나가기 전날에는 설렘으로 인해 밤을 꼬박 지새웠다.

 

홍씨의 기대감은 실습 첫날에 완전히 무너졌다. 홍씨에게 주어진 첫 일은 병원에서 설거지를 하고 환자복을 개는 일이었다. 병원 간호사들이 식사를 한 뒤 청소를 하고 하수구를 뚫는 일까지 맡겨졌다. 학원에서 배웠던 내용들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간호조무사들을 잡일을 도와주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홍씨는 첫날이라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여겼지만, 보름이 지나도 그의 역할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홍씨는 실습기간 동안 학원에 20만원의 실습비를 냈다. 홍씨 어머니는 “돈을 내고 일하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당장 그만두라”고 성화였다. 그녀는 학원에 “다른 병원을 알아봐 달라”고 말했지만 “다른 병원도 다 마찬가지다. 시험을 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답변만 돌아왔다. 학원 관계자는 오히려 “실습 병원을 섭외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한지 아느냐”며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유독 트집이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홍씨는 결국 실습 두 달 만에 병원을 관두고 간호조무사의 꿈을 접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서울의 한 직업학교에 다니는 60여 명의 보건간호학과 학생들은 올해 여름방학 동안 11개 병원으로 나뉘어 실습을 나갔다. 서울 강남구의 한 개인병원으로 실습을 나갔던 A양(19)은 “사실상 병원의 온갖 잡무를 다 시켰다”며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종합병원으로 실습을 나간 B군(19)도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식사를 돕는 일을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며 “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이런 잡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11월 중순부터 나머지 실습시간을 채우기 위해 겨울방학이 끝날 때까지 또다시 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을 대하는 병원의 대우 또한 온당하지 못했다. 자원봉사자 수준으로 인식하는 곳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누군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해서 14층까지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너희는 짐짝”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느냐”는 말을 듣고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 일러스트 김세중


실습 끝나자 시간제 채용·수당 지급

 

“제가 그동안 했던 실습은 ‘구경’에 가까웠어요.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등의 ‘의료행위’는 일절 할 수 없어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무슨 일을 하냐고요? 제가 주로 했던 일은 ‘바이탈 체크’입니다. 환자들의 혈압이나 체온을 재며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죠. 80명이 넘는 환자들의 혈압을 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명확하게 ‘일’을 한 것이죠.”

 

실습자들은 한목소리로 일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당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실습생들이 근무한 병원들도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실습’이기 때문에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게 공통적인 설명이었다. 한 병원 관계자는 “학생들을 받으면 오히려 피곤해진다”며 “관리 부담 때문에 차라리 (실습생들을) 받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학원 강사나 학교 선생님들이 강하게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습을 경험한 이들의 말은 달랐다. 실습 기간이 끝난 후 ‘병원이 바쁘니 며칠 더 나와 달라’는 요구를 받은 경우가 있었다. 병원 측은 이들에게 6만원 내외의 일당을 지급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실습 기간에 받지 못했던 임금을 받게 된 것이다. 병원 측에서 실습생들의 ‘노동력’을 사용했고, 이에 따른 임금을 지급했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A양이나 B군이 다니는 직업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가 특정 기술을 배우려고 진로를 옮긴 학생들이 주로 찾는다. 13개 학과 가운데 자동차학과나 조리학과 등은 대부분 3학년 과정에서 실습을 나간다. 이들 가운데 최저임금(시간당 6030원)조차 지급하지 않는 분야는 간호조무사 실습밖에 없었다.

 

 

자격페이, 임금 대신 ‘응시자격’ 부여

 

병원들이 간호조무사 실습 학생들에게 ‘합법적인 노동 착취’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제도가 깔려 있다. 780시간의 실습시간을 충당해야만 시험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을 규정한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 제4조에는 “실습교육을 위탁한 의료기관(조산원은 제외한다) 또는 보건소에서 780시간 이상의 실습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고 규정돼 있다. 이론 시험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실습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실습을 해야만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자격페이’를 제도적으로 강요한 셈이다.

 

미국 연방공정노동 기준법(the Federal Fair Labor Standards Act)에는 무급 인턴의 기준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교육적인 환경 속에서 비슷하게 수행돼야 한다 ▲정규직의 업무를 대체해선 안 된다 ▲고용주는 인턴의 활동으로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 등의 내용이다. 사실상 현재 간호조무사들의 실습 현장을 미국 법에 대입해 보면 대부분 법 위반에 해당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간호조무사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인들도 유사하게 실습을 하고 있다”며 “환자를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임상 실습을 거쳐야 자격을 부여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나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들은 대학에서 양성되지만 간호조무사는 학원에서 배우는 실정”이라며 “임상 실습을 강제하기 위해 응시 조건에 실습시간을 명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간호조무사 실습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을 인정하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간호조무사 실습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며 “내년부터 간호조무사 학원 지정평가제 등을 통해 실습이 제대로 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론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에 한해 실습 의무를 부여하는 등 개선책에 대해선 “좋은 아이디어”라며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고 검토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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