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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증권 관련 집단 소송 첫 사례 될까

금융委 조사에, 검찰수사에 사면초가…내부직원·기관투자가 공모해 내부정보 유출 정황

이석 기자 ㅣ ls@sisapress.com | 승인 2016.11.10(Thu) 16:00:30 | 14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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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임준선·Pixabay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29일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8500억원 상당의 신약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다음 날 오전 회사 주가는 10% 가까이 급등했다. 한미약품은 이날 오후 2분기 영업이익이 71% 감소했다는 악재성 공시를 내보냈다. 주가는 20%나 하락했다. 하루 만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투자자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한미약품이 투자자를 우롱하고 있다”는 글들로 당시 주주 게시판이 도배가 됐다.

 

 

투자자들의 대규모 소송 불가피할 듯

 

한미약품은 올해에도 역시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다. 9월29일 장 마감 후 미국 제넨텍사와 1조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다음 날 한미약품 주가는 전날보다 10%나 증가한 65만4000원에서 출발했다. 최근 3개월 내에 가장 높았다. 그러나 장 시작 30분 후에 한미약품은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계약 해지 사실을 공시했고, 주가는 20% 넘게 하락한 50만8000원을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1년 전의 악몽을 떠올렸다.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로 또다시 30% 가까운 손실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계약 취소 사실이 공시 전부터 SNS를 통해 나돌았다”며 “악재성 공시가 사전에 유출된 것 아닌지 의심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금융 당국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호재성 공시가 나면서 개미투자자들은 ‘사자세’로 일관했지만,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호재성 공시에도 불구하고 ‘팔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9월30일 한미약품의 주식 공매도는 회사 상장 이래 최대 규모인 10만4327주에 달했다. 장 개시부터 30분 사이에 전체 공매도의 48%인 5만471주가 거래됐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전날의 호재 공시로 주가 상승이 예상됐음에도 대량의 공매도가 이뤄졌다”며 “상식적으로 악재성 공시가 사전에 유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공매도 세력이 당일 최고가(65만4000원)에 팔아 최저가(50만2000원)에 되샀다면 이들은 하루 만에 30%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증권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패스트트랙(사건 조기 이첩)을 통해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검찰은 10월17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약품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공시 관련 부서뿐 아니라 임원실과 임성기 회장실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틀 후 NH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등 10여 곳의 금융회사에 대해서도 60여 명의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벌였다. 논란이 확산되자 한미약품은 “회사 차원의 의도적인 내부정보 유출이나 공시 지연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수사 과정에서 일부 직원이 사건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10월22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한미약품 계약담당 직원 김아무개씨와 남자친구 정아무개씨, 정씨의 지인이자 A증권사 직원 조아무개씨 등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음 날 법원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지만, 내부직원이 사건에 개입한 이상 회사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약품 이관순 대표이사가 10월2일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법조계에서는 한미약품을 상대로 한 투자자들의 대규모 소송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내부자들’이 미공개 중요 정보를 증권거래에 이용하거나 타인에게 이용하게 하는 등의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자는 형사처벌과 함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지게 된다. 검찰은 현재 한미약품 직원이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피한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이다. 혐의가 명백해지면 투자자들은 회사를 피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남덕희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8000억원대의 계약해지 사실은 미공개 중요 정보”라며 “이번 사건이 내부자 거래라면 투자자들 역시 처음으로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열리게 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의 성공 신화 역시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와 8조원 규모의 초대형 기술 수출 계약을 연이어 성사시켰다. 한미약품 주가는 지난해에만 600% 넘게 상승했다. 한때 시가총액은 7조원대로 제약업계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임 회장의 주식가치 역시 3조원대로 재계 총수 및 2·3세를 통틀어 톱10에 올랐다. 평소 R&D(연구·개발)를 중시하는 임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그 배경으로 거론된다. 2013년 한미약품은 코스피 상장 제약사 중 최초로 ‘연간 R&D 투자액 1000억원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계속되는 악재로 인해 임 회장의 성공 신화에도 ‘빨간불’이 켜질 전망이다.

 

 

기관투자가들도 검찰수사 대상에 올라

 

기관투자가들 역시 검찰수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은 이미 NH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등 증권사 10여 곳에 대해 추가로 압수수색을 단행한 상태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이들 증권사가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대규모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현행법상 내부자는 해당 법인의 임직원이나 주요 주주뿐 아니라 정보를 받은 ‘1차 수령자’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사실은 금융위의 행보다. 금융위는 현재 내부자 거래 사건을 별도로 조사 중이다. 금융 당국이 불공정거래 사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도 계속 조사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해 7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시장질서 교란행위가 신설되면서 2·3차 정보수령자 역시 처벌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날 경우 사법처리와 함께 대규모 과징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약품 사태의 이면, 거래소 ‘갑질’ 논란 수면 위로

 

한미약품 사태 이면에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9월30일 장 시작을 앞두고 한미약품과 한국거래소 관계자들이 만나 협의를 했다. 당시 거래소는 9시 이전에 계약 해지 사실을 공시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미약품은 30분이나 늦은 9시30분에 공시하면서 투자자 피해를 키웠다. 이에 대해 한미약품 측은 “이전에도 거래소 직원과 여러 차례 만나 공시 내용을 협의했다”며 “이날 협의 과정에서 불성실 공시 법인 지정 우려가 처음으로 불거졌다. 내부적인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공시가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거래소 측은 “한미약품이 거래소 잘못으로 실수를 물타기 하려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 30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미약품 관계자들의 말을 통해 사건을 복기하면 이렇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3월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7800억원대 신약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 별도로 공시는 하지 않고 보도자료만 배포했다. 그러자 거래소가 수출 계약은 앞으로 공시할 것을 요청했다. 문제는 수출 계약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회사 역시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한미약품은 여러 차례 거래소를 방문해 질의를 했다. 그때마다 거래소 측은 “정정공시를 하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9월30일 아침 거래소 직원과 협의 과정에서 회사가 불성실 공시 법인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관련 조항을 찾아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공시가 늦어졌다. 증권시장을 보호하고 불공정 거래를 막아야 하는 거래소가 오히려 ‘갑질’을 통해 시장의 혼선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거래소 측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한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기업 공시는 회사의 결정 사항이다. 거래소가 일일이 관여할 수 없다”며 “거래소 때문에 공시가 늦었다는 주장은 면피용일 뿐이다. 백번을 양보해도 한미약품이 장 시작 전에 공시할 의지가 있었다면 그 전에 연락할 수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한미약품 사태로 시장에 역행하는 거래소 관행도 지적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하지만 거래소는 얼마 전 H증권사의 주문 실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거래소는 당시 H증권사의 사고 손실분 403억원을 각 증권사들이 갹출한 손해배상공동기금으로 처리했다. 손해배상공동기금은 주문 사고 등에 대비해 증권사들이 거래소에 적립하는 일종의 보험금이었다. 기금을 집행하려면 증권사와 협의하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거래소는 일방적인 통보가 담긴 공문 한 장만을 증권사에 보내고 기금을 집행했다. 12월 결산을 앞두고 머리를 싸매던 증권사의 직원들이 이 때문에 적지 않게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한 A기업의 사모펀드(PEF) 투자자(LP) 명단을 요구해 뒷말이 나왔다. 통상적으로 사모펀드는 LP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거래소의 요구를 거절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A사는 상장 심사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거래소에 ‘울며 겨자 먹기’로 LP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거래소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거래소는 개혁 1순위로 꼽혔다. 고질적인 방만 경영과 기강해이로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을 받아야 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거래소 직원의 평균 연봉은 ‘억대’로 웬만한 대기업 임원 못지않다”며 “시장에 역행하는 업무를 막기 위해 거래소 조직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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