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의 ‘국뽕’ 코드, 박근혜 정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 한광범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5 14:50
  • 호수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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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경제수석 내세워 CJ 경영진에 노골적인 퇴진 압박 가해
CJ그룹이 현 정권에 낙인이 찍혀 각종 압력을 받았다는 주장이 CJ 전 고위 임원에게서도 나왔다. CJ가 ‘미운털’이 박힌 것은 여러 이유가 거론되지만 2014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한국의 밤’ 행사 때 이미경 부회장이 부각되면서 같은 자리에 있던 박 대통령이 불편해했다는 말도 나온다. 사진은 당시 행사 때 모습이며 맨 오른쪽이 이 부회장이다. © 연합뉴스

‘최순실 게이트’ 파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청와대의 노골적인 CJ그룹 압박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정상적인 경영 활동 중인 재벌 총수 일가에게 노골적인 퇴진 압박을 가했다는 점에서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초유의 사태라는 평가다. CJ가 ‘국뽕(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지나치게 몰입돼 있는 상태를 뜻하는 속어) 코드’라는 조롱 속에서도 노골적인 정권 코드 맞추기에 나선 배경에 이 같은 박근혜 정부의 거센 압력이 있었던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정치권과 재계에선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부터 CJ가 효성·롯데그룹과 함께 사정의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주된 이유는 친MB(이명박) 기업이라는 이유였다. CJ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온미디어·대한통운 인수 등을 포함해 빠르게 사세(社勢)를 확장해 자산총액을 2배 이상 불렸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출범 3개월 후인 2013년 5월, CJ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를 본격화했다. 이 회장은 수사 5주 만인 6월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로 검찰에 출석했다. 그는 6월1일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 말 그대로 속전속결이었다. 이 회장은 네 번의 재판에서 피해 액수가 조금씩 달라진 것을 제외하곤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유죄로 인정된 조세포탈·횡령 금액만 수백억원에 달한 만큼 CJ로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건이었다. 이 회장 구속 후 CJ는 ‘국뽕’이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박근혜 정부 코드 맞추기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이며, 문화계 등으로부터 조롱을 받았다. CJ는 2013년 12월부터 ‘창조경제와 함께합니다’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 등의 그룹 이미지 광고를 내보냈다. 이 밖에도 문화창조융합센터·K-컬처밸리 투자 등 정권 입맛에 맞는 문화산업에 적극 투자했다. 일각에선 CJ 계열사들이 배급을 맡은 영화 《국제시장》과 《인천상륙작전》에 대해서도 코드 맞추기라는 비판을 가했다. 당시엔 이런 ‘국뽕 코드’의 목적에 대해 이 회장 특별사면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추측까지 제기됐다.

 

 

경제수석, “VIP 뜻” 이미경 부회장 퇴진 요구

 

하지만 이번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그동안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의 CJ에 대한 압력이 정치권과 재계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직접 나서 재벌 총수 일가를 상대로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경제수석은 국내 경제정책을 관장하는 막강한 자리이다. MBN 보도 등에 따르면, 2013년 7월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자 조원동 당시 경제수석은 손경식 CJ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VIP(대통령) 뜻’이라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총수가 구속된 그룹에서 경제단체장을 맡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결국 손 회장은 같은 달 대한상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직전 7년 동안 대한상의 회장으로 재임했고, 임기도 2년가량 남아 있었다. 손 회장은 이 회장 모친 손복남 고문의 남동생으로, 이 회장이 구속과 와병으로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뗀 상황에서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손 회장의 대한상의 회장직 사임 후에도 박근혜 정부의 CJ에 대한 압력은 더욱 노골화됐다. 다음 차례는 이미경 부회장이었다. 이 부회장은 CJ가 문화기업으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문화계 거물급 인사다. 그는 미국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사인 드림웍스 설립에도 상당히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CJ의 문화·엔터테인먼트 계열사 경영을 총괄했다. 조원동 당시 경제수석은 2013년 10월께 손 회장을 통해 이 부회장의 경영 퇴진을 요구했다. 이 부회장은 손 회장에게 이를 직접 전해 듣고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손 회장에게 공개적인 확인 전화까지 요구했다. 결국 손 회장은 이 부회장이 보는 앞에서 조 수석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통화를 했다. 조 수석은 통화에서 “VIP 말씀”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너무 늦으면 진짜 난리가 난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조 수석은 같은 해 12월 특정한 날짜를 사퇴시한으로 언급하며 사퇴를 거부할 경우 검찰수사와 국세청 세무조사가 들어갈 것이라는 경고까지 더했다. 실제 국세청은 이후 CJ 계열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고, 이 부회장은 결국 2014년 10월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015년 12월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015년 12월1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CJ가 ‘좌파영화’에 판 깔아준다” 불신

 

이 같은 정권 차원의 CJ에 대한 압박 배경에는 CJ 문화사업 계열사들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뿌리 깊은 반감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컸다. 지난 2012년 9월, 대선을 3개월가량 앞두고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개봉하자 보수층을 중심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이 제기됐다. CJ에 대해선 ‘좌파영화’에 판을 깔아준다는 비난을 가했다. 이들은 좌파들이 한국영화계를 주도한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정부도 이 같은 인식을 공유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는 유명 영화배우와 감독이 다수 포함됐다. CJ 소유 방송국 tvN이 《SNL코리아》에서 2012년 대선후보들에 대한 풍자 코미디를 선보인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SNL코리아》는 당시 ‘여의도 텔레토비’ 등을 통해 대선후보 패러디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를 희화화한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제기했다. 홍지만 전 의원은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SNL코리아》에 대한 제재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권이 사정을 경고하며 대기업 총수 일가를 쫓아냈다는 점에서 정치권과 재계는 이번 사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공중분해된 국제그룹과 비교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문민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재계단체 관계자도 “충격적”이라며 “이 정권하에서 얼마나 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거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당사자인 CJ 측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CJ 관계자는 “그 문제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이번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압력 당사자인 조 전 수석은 현재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취재진의 연락을 회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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