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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상규명 흐지부지, 피해 보상도 전무…악명 떨친 원장 박인근 사망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7(Thu) 10:48:09 |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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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김대우씨가 11월11일 부산진경찰서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김대우 제공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정동에 사는 김대우씨(45)는 요즘 부산진경찰서와 부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피켓에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폭력에 책임을 묻는다’고 적었다. 김씨는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 생존자다. 그는 초등학생 때 세 번이나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첫 번째는 3학년 때인 1981년 부전역 근처였다. 김씨를 발견한 경찰관들이 무작정 부전역 파출소로 잡아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탑차(피해자들은 닭장차로 명명)에 실어 형제복지원으로 끌고 갔다. 김씨는 “도와주세요!”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아저씨, 저는 집도 있고 초등학생이라고 했으나 대답 대신 무차별 구타 세례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김씨는 10살의 나이에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그는 이곳에서 1년 정도 막노동을 했다. 어른들과 같이 벽돌을 찍고 날랐다. 구타와 기합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심지어 성추행까지 당했다. 김씨는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피똥까지 쌌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가 형제복지원을 나온 것은 1년 정도 지났을 때다. 김씨가 갑자기 사라지자 그의 이모가 수소문 끝에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데려갔다. 그러나 김씨의 ‘지옥 탈출’은 시한부였다. 한 달도 안 돼 다시 끌려왔다. 당시 부전역 파출소 옆에 살았던 김씨는 어느 날 경찰관들에게 붙잡혔고, 1차 때처럼 다짜고짜 차에 실려 형제복지원으로 갔다. 그는 이렇게 형제복지원에서의 생지옥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다시 1년 정도 지날 때쯤 이번에는 원양어선 선원이던 아버지가 와서야 두 번째로 지옥문을 나설 수 있었다.

 

 

생지옥에 끌려간 피해자들

 

그러나 김씨와 형제복지원의 질긴 악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배를 타러 간 후 서면 시립도서관 앞에 있다가 또 경찰관들에게 붙잡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왔던 것이다. 이번이 세 번째다. 김씨가 형제복지원을 완전히 나온 것은 1985년 10월쯤이다. 서울 ‘소년의 집’으로 옮겨갔다가 한 달 만에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요한보스꼬 기술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그는 이렇게 약 5년 동안 형제복지원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김씨보다 두 살 위인 형도 같은 처지의 신세였다고 한다. 그는 “내가 끌려온 후 우연찮게 형제복지원에서 형을 목격했다. 형도 나처럼 세 번이나 각기 다른 곳에서 끌려갔다. 그 안에서 식사시간이나 교회 갈 때 마주쳤지만 말을 못하게 막았다”고 밝혔다.

 

그가 사회에 나왔을 때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다시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성지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학교를 다녔다. 김씨는 “학교에 다니고 가족들과 지낼 어린 나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성추행에 구타까지,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것이 가장 분하고 억울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잃어버린 5년’으로 인해 김씨의 삶은 꼬일 대로 꼬였다. 어릴 적 꿈도 짓밟혔고, 모든 것이 뒤틀렸다.

 

김씨는 경찰에 묻고 있다. “경찰은 초등학생인 나를 형제복지원에 한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끌고 갔다. 나는 아직 그 이유를 듣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 이유를 말해 달라고 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들이 2015년 4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대부분이 김씨의 처지와 비슷하다.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형제복지원이 운영되던 12년 동안 551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들이 왜 죽었는지 또 죽어서 어디로 갔는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형제복지원 실태에 대한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가해자도 면죄부를 받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검찰은 형제복지원 설립자인 박인근씨를 국고보조금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그러나 검찰의 구형은 20년에서 15년으로 줄어들었고, 재판부는 징역 10년(1심)에서 4년(2심)으로, 다시 2년6개월(대법 파기환송심)로 형을 감경했다. 박씨가 횡령한 국고보조금이 12억원에 이르지만 검찰은 7억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박씨의 혐의도 7번의 재판 끝에 업무상 횡령, 초지법 위반, 외화관리법 위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됐고, 불법구금, 폭행, 살인 등에 대해서는 재판조차 받지 않았다. 말 그대로 ‘솜방망이 처벌’로 끝이 난 것이다.

 

박씨는 출소 후 형제복지원 땅을 매각해 1000억원대 재산을 축적했다. 이후 형제복지원을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변경하는 등 재단 이름을 바꿔가며 이사장직을 유지했다. 사회복지법인대표자협의체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5년에는 재단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118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사실이 부산시의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복지시설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한 수익사업체를 갖고 있고, 국가보조금을 받고 있으면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의 돈을 대출받은 것이다.

 

이 돈은 국고보조금 횡령뿐만 아니라 3000여 명의 수용자들을 봉제공장과 목공소, 철공소 등에 무보수로 투입해 번 것이다. 수용자들의 고혈을 빨아 고급 아파트, 골프 회원권, 콘도미니엄 등을 소유하고 단자회사 등에 수십억원의 예금을 가진 재벌 아닌 재벌이 됐던 것이다. 박씨는 2011년 셋째 아들에게 법인 대표직을 물려주고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지난 6월27일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87살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형제복지원 사건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의 결정판이다.

 

 

국가 폭력에 침묵하는 정부

 

형제복지원은 엄밀히 따져 국가에 의한 폭력이다. 1971년 부산시의 업무협약과 1975년에 발표된 박정희 정권의 내무부 ‘훈령 410호’가 탄생 배경이다. 전두환 정권 때는 ‘부랑인 복지시설 운영개선 종합대책’(보건사회부 훈령 523호)과 ‘부랑인 등에 관한 업무처리지침’(내무부)을 만들어 부랑인 등의 강제수용이 가능하도록 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건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졌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적은 금액이지만 피해보상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가족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다. 김대우씨의 경우처럼 당시 10대의 소년과 소녀도 많았는데, 너무 오래 갇힌 채 피동적인 삶을 살아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피해자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이들은 2013년 12월 ‘형제복지원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상대로 인권침해에 대한 진상조사와 배상을 요구했다. 19대 국회 때인 2014년에는 2회에 걸쳐 야당 의원 54명이 발의했던 ‘형제복지원진상규명’ 법안이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해 4월에는 피해자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체 삭발식까지 가졌다.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7월6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법을 재발의한 상태지만 통과는 미지수다.

 

 

“진상규명 위한 특별법 재정돼야”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의 반대 입장도 걸림돌이다. 행자부는 특별법 제정에 따른 사회적 비용 발생과 개별 사건의 별도 법 제정에 따른 형평성 문제를 들고 있다. 통과가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행자부가 반대하는 속내를 보면 결국은 자신들의 치부를 스스로 들춰내는 데 따른 부담이 존재한다. 생존 피해자인 김대우씨는 “이 사건은 명백하게 국가가 주도하고 방조했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지금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지금까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삭발식, 단식, 거리 시위, 다음 아고라 청원 등을 진행했지만 여론의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500명 이상이 의문사를 당했지만, 이들이 왜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억울할 뿐이다.  

 

 

군대식으로 운영된 작은 왕국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은 형제복지원은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으며 3000여 명의 부랑인을 수용했던 전국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기관이었다. 부랑인 선도를 목적으로 해마다 20억원씩 국고 지원을 받고 있었다. 형제복지원은 트럭을 이용해 전국 각지를 돌며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이나 노숙자 등을 강제로 끌고 가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켰다.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것은 부랑인들만이 아니었다. 길을 잃은 어린 남매, 중학생, 고등학생, 일반인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트럭에 강제로 태워 끌고 갔다. 이렇게 무차별로 사람들을 끌고 간 이유는 인원수만큼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형제복지원은 무법지대였다. 마치 군대와도 같았다. 수용자들에게는 ‘번호’가 붙여졌고, 머리를 짧게 깎인 채 아동소대, 여성소대, 성인소대로 분류돼 ‘내무반’ 생활을 해야만 했다. 똑같은 파란색 운동복을 입고 ‘소대장’과 ‘중대장’의 감시 아래, 매일 강도 높은 제식훈련이 이어졌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폭행하거나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폭행이 만연했다.

 

경북 울주군에서 촬영된 형제복지원 강제노역 현장 © 김용원 변호사 제공


심지어는 죽이고 암매장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12년 동안 무려 513명이 사망했고, 일부 시신은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또한 원장 박인근은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했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한종선씨는 저서 《살아남은 아이》를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히 묘사했다. 한씨가 가족과 함께 복지원에 수용된 것은 9살 때인 1984년이다. 그는 그곳에서 지옥을 목격했다. 일상화된 구타와 고문, 기합 등은 어린 한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한씨의 누나는 성폭행을 당한 뒤 정신분열증을 얻었다. 한씨의 아버지는 정신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한씨의 가족처럼 멀쩡한 상태로 잡혀와 복지원에서 정신이상자가 되거나 지체장애를 얻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모든 원생들의 손과 발이 퉁퉁 부어 동상이 걸리는 날이면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고된 노역에도 사료나 다를 바 없는 식사가 제공됐다. 썩은 젓갈과 깍두기가 반찬의 전부였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이들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했다. 학대를 견디다 못한 몇몇 원생들은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조교에게 발각돼 죽임을 당했다. 시체는 아무도 모르게 인근 야산에 매장됐다. 당시 형제복지원 수사를 담당했던 김용원 변호사는 “형제복지원은 군대식으로 운영되는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고, 원장은 왕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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