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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언론상-우수상] 신수동 철거민 12시간 동행취재…7년 전 그들과 다를 게 없었다

용산 참사 그 후…‘용산 난민’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양문선(전남대 신문방송학과)·최연준(전북대 신문방송학과)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8(Fri) 13:46:36 |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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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6일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철거민들이 마포구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양문선·최연준 제공

 

 

“물이 다 떨어졌어. 아침부터 밑에서 불을 얼마나 지펴대던지. 숨을 쉴 수가 없어.”

2009년 1월19일 늦은 오후, 남편에게 급하게 전화가 왔다. 망루에 올라가 있는 남편은 밑에서 지피는 불을 끄느라 물이 바닥났다고 했다.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 가족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남일당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망루에서 시아버지의 시체가 발견됐을 때 가슴 안쪽 주머니에 종이가 있었다. 구청에 보낸 공문이었다. 시아버지가 구청에 보낸 민원은 ‘세입자 보상 합의가 되지 않은 채 관리처분을 인가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구청의 답변도 있었다. ‘법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고, 보상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관리처분 인가를 중단할 수 없다’는 거절이었다. 용산 참사로 여섯 명이 죽고 모든 건물이 철거된 후에야 법원은 ‘용산 4구역의 관리처분이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다’며 무효 판결을 내렸다.

 

올해 3월 전까지 용산역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다. 바로 용산 참사가 일어난 용산4구역이었다. 용산4구역은 2006년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후 10년 동안 방치돼 왔다. 그러던 중 3월 서울시는 용산4구역의 재개발을 재개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수 언론은 경제적 파급효과, 공공 인프라 구축과 부동산 시장 활성화 등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됐다

 

하지만 재개발 담론의 주체여야 할 주거민들의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자본과 거시적인 주체들에 대한 기사뿐이었다. 2006년 재개발 계획 발표 당시 약속했던 철거민 23가구에 대한 생계 대책은 여전히 이행되지 않아 용산 참사 이전의 철거민들은 빚더미에 앉는 등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용산 철거민들은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소극적인 정부의 대처로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이른바 ‘용산 난민’이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날. 지겹고도 끈질긴 굴레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참사가 일어나고 7년이 지났다. 삶 자체가 뒤바뀌었다. 싸워야 할 대상은 있지만 너무도 멀었다. 원망의 화살은 안으로 날아왔다. 세입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됐다. “왜 그때 나랑 같이 싸우자고 했어? 차라리 싸우지 말걸.” 삶이 힘들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 상처는 점점 깊어졌다. 작은 가게라도 사장님 소리 들으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던 삶을 지금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경비를 서거나 화장품 외판원, 파출부, 식당일을 하는 등 세월은 그들의 삶을 옥죄었다.

 

그들의 대상은 분명히 있었다. 삶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은 있는데, 그 사람들과 직접 싸우기에는 벽이 높다. 끊임없는 원망의 되풀이는 지금도 힘들다. “유가족들은 그래도 돈 받았잖아”라는 말에 “그럼 돈 줄 게 너도 죽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유가족들은 그럴 수 없었다. “하나로 뭉쳐 싸워야지” 하고 다독이고 뒤돌아서 눈물을 흘렸다.

 

토지보상법 78조 조례와 시행령은 주거용 건축물 소유자에 대해서만 이주 대책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가 세입자들은 아예 이주 대책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용산 참사 당시 토지보상법 관련 규정에 따라 상가 세입자들에게는 아무런 이주 대책이 세워지지 않은 채 수입 등에 대한 감정평가를 거쳐 월수입의 3개월분 휴업 보상금만 지급했다.

 

상가의 영업권을 인수하면서 지출한 각종 비용(권리금, 인테리어 비용 등)과 그동안 형성한 상권에 대한 보상은 완전히 도외시됐다. 현재 법과 제도는 조합이 선정한 감정평가사의 감정평가에 따른 보상금만을 지급한다. 평가를 하는 실질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산 철거민 김아무개씨는 “그냥 사람들이 와서 쭉 둘러보고, 정말로 평가원들이 내키는 대로 한다. 예를 들어 위원장 하나가 포기해야 회원들이 와해된다는 생각에 위원장네 가게니깐 조금 더 쳐주는 식이다”고 밝혔다.

 

2003년 7월1일 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지금까지 76번의 개정을 거쳤다. 재개발과 재건축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거나 상가 세입자들의 의견 참여를 좀 더 가능하게 하는 절차적인 개선이 있었다. 하지만 상가 세입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정 개선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공익사업으로 인해 근로자가 휴직 또는 실직을 하게 된 경우 최대 90일분에 대해 보상하던 것을 120일분까지 보상할 수 있도록 보상기간을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5월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의 권리 보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재건축을 사유로 건물주가 강제퇴거를 요구할 경우 세입자는 무조건 나갈 수밖에 없는 예외 조항이 있다. 이외에 18·19대 국회에서 세입자 보호를 위한 ‘강제퇴거 금지법’이 발의는 됐지만 입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입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용산 참사 희생자의 품속에서 발견된 용산구청 공문 © 양문선·최연준 제공


여전히 쫓겨나 싸우고 있는 철거 난민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7년.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서 제2의 용산 참사가 예고되고 있다. 신수동 93-102번지 일대(4만7501㎡)에서 재개발을 추진하자 기존에 살고 있던 세입자들과 재개발조합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철거 용역들은 신수상가 세입자들을 내쫓기 위해 소화기를 뿌리고 폭력을 가했다. 7년 전 용산에서 용역질을 했던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소화기 분말 때문에 폐에 이상이 생겼다. 옷가게를 하던 위원장, 횟집을 운영하던 조직위원장은 천막생활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침 7시30분. 그들은 평소처럼 피켓을 들고 마포구청 앞으로 향했다. 마포구청 앞 천막생활을 시작한 지 넉 달째 접어드는 날이었다. 지나가는 공무원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포구청장은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시간의 피켓 시위 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신수동 재개발조합장의 집 앞이다. 이곳에서의 시위는 허가받은 정식 시위였다. 마포구청 보안과 직원들과 경찰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소음 측정기를 놓고 80데시벨이 넘으면 제재한다며 위협했다.

 

불현듯 전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정 12시. 천막으로 묵직한 것이 날아왔다. “누구야?” 소리쳤다. 반응은 없었다. 다시 천막이 흔들렸다. 술에 잔뜩 취한 행인이었다. 경찰서로 갔다. “저는 단지 지나가는 행인이었을 뿐입니다.” 천막을 부순 사람은 평범한 시민이라고 했다. 신원조회를 해 보니 마포구청 직원이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침 9시30분. 마포구청 앞 천막으로 향하기 전 재건축지역에 들렀다. 주차하자마자 펜스 문을 열고 용역들과 공사장 직원들이 나왔다. 그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었다. “소화기로 우리 다 쏜 사람들이잖아.” “해결했어? 세입자 문제 해결하고 이러는 거냐고?” 울부짖었지만 반응은 없었다. 용역과 공사장 직원들은 다시 굳게 자물쇠를 잠그고 펜스 안으로 사라졌다.

 

오전 10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콩밥에 김치와 상추. 상가에서 쫓겨난 후 생계가 기울었다. 쌀과 김치마저도 남들이 준 것이다. 밥값이라도 벌려고 물건을 팔면 마포구청 직원들이 남김없이 수거해 갔다. “죽지 못해 먹는 거지.” 옆에서 밥을 먹던 조직위원장이 한탄을 했다.

 

밥을 먹던 중 위원장이 쪽지를 건넸다. 아들이 쓴 편지였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모습”이란 말이 가슴을 후볐다. 천막에서 생활한 지 121일, 계절이 세 번 바뀌도록 여기에 있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오후 4시. 천막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주위 아파트 단지에서 폐(廢)스티로폼을 주워왔다. 천막이 도로 옆에 있는 탓에 24시간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를 듣는다. 스티로폼을 쌓으면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는 내내 들리는 차 소리에 조직위원장은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집중력이 약해지고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밤 10시. 매일 반복되는 끔찍한 일상이 또 끝났다. 딱 네 달 전 따뜻한 집에서 발 뻗고 누웠지만 지금 그들의 몸은 차디찬 콘크리트 위에 눕혀져 있다. 밖에선 여전히 차 소리와 경적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철거민들은 왜 계속 생겨날까’란 물음에서 출발

취재는 용산역을 지나다니며 품었던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2016년 5월10일 처음으로 취재원과 인터뷰했다. 용산 참사 당시 시아버지를 잃고 남편도 잃을 뻔한 정영신씨(44)였다. 그녀에게 용산 참사 당시 참혹함과 현재 철거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용산 참사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제2의 용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현재 철거 상태에 놓여 있는 철거민들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그 후 철거민들이 계속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에는 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철거민 관련법이 어떤 식으로 제정되어 있는지 살펴봤다. 잘못된 법과 기사만으로는 철거민들의 상황을 느끼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철거민들을 직접 찾기로 했다. 서울시내에서 철거 농성을 하고 있는 신수동 철거민들과 12시간을 함께 보냈다. 마포구청 앞 천막에서 지내고 있는 신수동 철거민들이었다.

 

양문선(왼쪽), 최연준(오른쪽) © 시사저널 임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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