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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겸 배우 유지태로 불렸으면 좋겠다”

《굿와이프》의 ‘냉철한 검사’에서, 《스플릿》의 ‘찌질한 도박볼링꾼’으로 변신

이예지 ‘우먼센스’ 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20(Sun) 13:00:29 |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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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준》 《동감》 《봄날은 간다》 《올드보이》 《심야의FM》 《스타의 연인》 《힐러》까지, 유지태가 지금까지 출연한 33편의 영화와 5편의 드라마에는 이렇다 할 공통점이 없다. 악역과 선역(善役) 사이에서 널을 뛰었고, 멜로든 공포든 스릴러든 장르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작품을 고르는 데 특별한 기준을 두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 그가 드라마 《굿와이프》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게 볼링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플릿》이다. 전직 프로볼러이자 현직 도박볼링 ‘선수’ 철종 역이다. 불의의 사고 이후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자 프로 생활 대신 돈벌이 도박에 뛰어든 캐릭터다. 엉망으로 볶은 머리에 지저분한 운동복을 입고 다니며 말끝마다 욕을 쓰는 ‘밑바닥 인생’이다. 그간 진중하고 무거운 이미지였던 그가 이번에는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우리는 그저 영화를 만끽할 준비만 하면 된다.

 

감독 겸 배우 유지태 © 나무엑터스 제공


“배우로도 행복하지만, 영화 연출도 소중해”

 

“볼링을 연기가 아닌 진짜처럼 하고 싶었어요. 마치 진짜 그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볼링도 체계적 관리를 통해 연기에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바람을 다 담아내기에 4개월은 너무 짧았죠.”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어떤 작품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것. 그게 유지태가 배우인 이유다. 찢어진 손가락에 순간접착제를 바르면서까지 볼링에 매진했다는 일화도 들렸다. “퍼펙트게임은 아니지만 세븐 스트라이크까지 쳐본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다 놀라더라고요. 하나하나 실력이 늘어나는 기분이 드니 개인적인 희열도 들었죠. 프로 볼링선수에 도전할 뻔했다니까요(웃음).”

전작 《굿와이프》에서 그가 입은 캐릭터는 그 전 작품들에서 만났던 캐릭터들의 합집합이었다. 아내를 그윽이, 그리고 강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를 보던 눈빛과 닮았고, 야욕에 눈이 멀어 배신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올드보이》 속 비열한 악역의 모습이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총천연색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다. 

 

“마음 가는 작품이 제 기준입니다. 작품만 보고 연기하고 싶어요. 영화 《동감》으로 제가 ‘멜로남’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싫었어요. 배우로서 얻을 수 있는 재미의 폭도 줄어드는 것 같았고요. 연기 폭이 좁아서 현장에서 머뭇거리고 적응하지 못하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예전과 달리 무모하게 저를 캐릭터에 맞추지는 않으려고 해요. 저와 맞는 톤의 연기 안에서, 제 세계관 안에서 인물을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연기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이 된 자신감이다. 그가 그동안 매체나 장르, 캐릭터를 안 가리고 연기한 이유, 영화 연출에도 욕심을 부린 이유는 단 하나다. 연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저는 운동도 연기 때문에 해요. 체력이 좋아야 좋은 연기가 나오거든요. 무용을 전공한 것도 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어요. 사람들은 ‘원톱’이니 ‘투톱’이니 말을 만들어 끊임없이 경쟁을 유도하지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연기만 생각하고 싶어요.”

배우라는 틀에서 조금 벗어나면 예술인 유지태가 보인다. 2003년 《자전거 소년》, 2005년 《사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 《나도 모르게》, 2009년 《초대》 등 4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한 데 이어, 첫 장편 연출작 《마이 라띠마》(2013년)로는 제15회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지금도 그는 차기 연출작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규칙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요즘에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일과 연출 작업에 효율적으로 시간을 배분하죠. 틈틈이 책도 읽고요. 최근 탈북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앙까이》의 시나리오를 탈고했는데, 탈북자에 대해 공부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제 연기에도, 연출에도 충분히 묻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 뒤 잠시 숨을 고른 그가 ‘영화는 내 인생의 리스크’라고 표현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를 사랑해서 감독에 도전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백기가 생겼고요. 배우에게 공백기는 리스크가 될 수 있지만 감독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현장이든, 영화 현장이든, 연출 현장이든, 그곳이 어디든 간에 죽을 때까지 배우로, 감독으로 현장에 서고 싶은 게 소원이에요. 배우로서 연기하는 것도 행복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일도 제겐 그 못지않게 소중합니다. 연기는 제게 인생이에요. 죽을 때까지 할 거예요.”

감독 겸 배우 유지태 © 나무엑터스 제공

감독 겸 배우 유지태 © 나무엑터스 제공

 

유지태는 조만간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일도, 사랑도, 가정도, 이룬 게 많아 보이는데도 그는 10년 후를 그리고 있었다. 

 

“감독 겸 배우 유지태로 불렸으면 좋겠어요. 참, 10년 뒤면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겠네요. 그럼 감독 겸 배우 겸 학부모 유지태로 불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주어진 역할을 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드라마 《굿와이프》를 통해 ‘굿와이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는 유지태. 그는 ‘아내’ ‘남편’ ‘가정’이라는 말에 대한 책임감보다 ‘친구’ 같은 감정으로 사랑하는 게 좋다고 했다. 가족을 대하는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전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만들어낸 잣대를 아내에게 강요하지 않아요. 구속하지 않으려고 하죠. 순간순간의 감정을 사랑으로 발전시키려고 해요.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불행하지 않나요?”

 

그러면서도 기준은 있었다. ‘배우로서의 명예’와 ‘가장으로서의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주저 없이 대답했다.

 

“가족이오! 예전에는 연기할 때 작품에 올인하는 게 잘하는 건 줄 알고 무리하게 체중을 늘리고 줄이면서 건강을 해쳤어요. 지금은 몸은 물론 정신도 건강하게 챙기는 걸로 바뀌었어요. 작품은 작품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일 뿐이니까요. 변화의 계기요? 아무래도 가족이죠. 가족이 생기니 현명해져야겠다는 바람도 같이 생겼어요.”

유지태와 마주 앉은 한 시간 동안 기자는 그의 다양한 얼굴을 봤다. 영화와 연기를 이야기할 땐 진중한 표정이었다가도, 가족 이야기를 할 땐 누구보다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당황스러운 질문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스스로 ‘아재 개그’를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재미있었고, 그래서 좋았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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