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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졸업 후 진로가 막막해요”

[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⑨] 한국학 전공자 수요·공급 불균형, 한국학의 딜레마

영국 런던·셰필드 =박혁진 기자 ㅣ phj@sisapress.com | 승인 2016.11.18(Fri) 17:30:31 |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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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미국과 함께 한국학 연구가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다. 미국이 주로 한·미 관계에 필요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초점을 맞춘 한국학이 발달해 있다면, 영국은 한국의 역사와 언어, 문학 등 사회 전반적 영역에 있어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은 이미 한류 열풍이 불기 이전부터 런던대학(University of London) 소아스(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를 중심으로 활발한 한국학 연구가 진행돼 왔다. 한류에 대한 인기가 높아진 5년 전부터는 다른 대학에도 한국학과가 설치되기 시작했으며, ‘세종어학당’과 같은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일반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영국 내 한국학의 현실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학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금 더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영국 런던 ‘세종어학당’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는 영국인들 © 시사저널 박혁진


영국 내에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한국학을 전공한 학생들의 진로가 매우 한정돼 있다는 것은 한국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다. 하지만 학부 때 전공을 살려서 공부를 계속하든, 취직을 하든 양쪽 모두 공급이 부족하다면 이것은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생소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학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런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영국의 대학들이다. 시사저널이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으로 방문한 영국 내 한국학 설치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이런 문제들이 잘 드러났다.
 

영국에서 한국학과를 개설해서 신입생을 받는 곳은 런던대학, 셰필드대학, 센트럴랭커셔대학 등 세 학교다. 영국은 유럽의 다른 국가보다 한국학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중심에 런던대학 소아스가 있다. 소아스 한국학과는 교수만 9명에 달하고 유럽 내 한국학 관련 논문의 3분의 2 정도를 발표했다.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소아스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은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했다. 소아스는 이처럼 유럽 최대의 한국학 교육기관이자 연구소로 잘 알려져 있고, 데보라 스미스 같은 열매도 맺고 있다. 하지만 유럽 내 한국학의 발전과 고민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학은 셰필드대학(The University of Sheffeild)이다.

 

 

셰필드대학 한국학 5년 만에 학생 12배 증가

 

셰필드대학은 영국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270km가량 떨어진 인구 52만의 도시인 셰필드에 자리 잡고 있다. 기차로 약 2시간을 달리면 닿을 수 있는 이곳은 18세기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을 견인하던 도시였다. 1980년대를 지나 철강산업의 몰락과 함께 과거의 활기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셰필드가 영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교육산업 때문이다. 특히 셰필드대학의 경우 연구대학으로는 영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이 대학에는 한 해에만 수백 명의 유학생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고 있다. 이 셰필드대학에서 지난 5년간 가장 주목받는 학과가 바로 한국학과다. 영국 현지 개념으로는 동아시아학과(Department of East Asia) 내 ‘한국학 과정’(Unit)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학과나 다름없다.

 

런던대학 소아스 본관 건물(윗 사진), 소아스 한국학과 학생들이 그레이스 고 교수(아랫 사진 좌측 상단)가 진행하는 한국문학 수업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박혁진


셰필드대학 한국학과는 50년 전 일본학과로 시작했지만 20년 전에 중국학과 묶여서 동아시아학과로 명칭을 변경했다. 한국학이 학과에 신설된 것은 불과 5년 전이다. 5년 전에 한국학 과정이 개설됐을 때 학생 수는 5명. 이마저도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5년간 한국학 전임교수 1명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신설됐다. 이때 채용된 것이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김승영 교수다. 그래서 기존에 이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조숙연 교수와 함께 2명의 교수진이 갖춰졌다. 50년 된 일본학, 20년 된 중국학에 비해 역사도 짧고 학생 수도 한참 부족했던 한국학과의 신세는 말 그대로 ‘셋방살이’나 다름없었다.

 

KF의 지원기간이 끝나는 5년 뒤에는 당연히 폐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국학과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5년 만에 한국학에 지원한 신입생들이 12배(60명)나 늘어나서 일본학과를 앞지른 것. 아직 중국학과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증가 추세로 보면 수년 내에 중국학과마저 따라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10년 동안 셰필드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조숙연 교수는 10월12일 “처음에는 학생들과 교수 연구실에 앉아서 수업을 해서 학생이 10명이 됐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며 “지금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 합치면 100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5년 전부터 학생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이유는 한류 때문이다. 셰필드대학에는 영국인뿐만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의 수도 적지 않다. 시사저널 기자와 만난 아그네 라마스케이트(여·23·리투아니아)는 “중학교 때쯤 ‘소녀시대’ 노래를 좋아하게 돼서 (노래 가사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며 “고등학교 때 의대 준비를 하다가, 했던 공부들을 포기하고 이곳에 왔다”고 한국어로 또렷하게 말했다. 같은 동아시아학과 가브리엘 쿡(여·23·영국)은 “고등학교 때 한국 친구가 있어서 한국에 여행을 갔던 것을 계기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며 “대학 진학할 때 부모님께 한국학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한국에 대해 잘 알고 계셔서 금세 허락했다”고 말했다.

 

셰필드대학 동아시아학과 내 한국학 전공 학생들이 시사저널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케이티 모리스(22·영국), 가브리엘 쿡(23·영국), 미글레 프로모스카리테(23·리투아니아), 아그네 라마스케이트(23·리투아니아) © 시사저널 박혁진

시사저널 기자와 만난 학생들은 두 사람을 비롯해 4명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한국어 실력이었다. 그들은 기자와 한국어로 인터뷰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준비하는 논문의 주제도 기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셰필드대학 동아시아학과 4학년인 케이티 모리스(여·22·영국)의 논문 주제는 제주 4·3사건이었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온 적이 있다는 그는 “(교환학생 기간에)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과도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4·3사건과 같은 어두운 일들에 대해서 과연 한국 정부의 입장은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인 미글레 프로모스카리테(여·23·리투아니아)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 대한 논문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인근에 있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을 많이 만난 적이 있는데 자신들이 한국인의 피를 가졌다든가 고려 사람이란 얘기를 잘 안 한다”며 “과연 그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연구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졸업 후 학업 연장이나 취업 어느 쪽도 어렵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고, 한국어도 잘하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졸업 이후에 전공을 살려서 무엇인가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졸업 이후에도 한국학 전공을 살리고 싶어 하지만 공부나 취업 어느 쪽을 선택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조숙연 교수는 “예를 들어 리투아니아 친구들 같은 경우 할 수 있는 언어가 한국어, 영어, 리투아니아어 세 가지인 고급인력”이라며 “그래서 (동유럽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에는 풍부한 인적자원이 될 수 있는데,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물론 이런 인력들을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고용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같은 동아시아권인 일본학과와 중국학과의 졸업생들을 보면 이들의 아쉬움은 이해가 된다. 셰필드대학 동아시아학과 김승영 교수는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 볼 때는 글로벌화, 로컬화를 같이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stretch)에서 이만한 인재가 많지 않다”며 “일본 기업들은 그런 차원에서 일본학을 하는 외국인 학생을 열심히 지원하거나 고용하고 있고 중국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공장에 배치하는 등 신경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셰필드대학 한국학 학생들의 고민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본지가 취재한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이나 본대학 한국학과 학생들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이 대학의 한국학과는 모두 신설된 지 10년이 되지 않았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학과를 설치했고, 학생들도 입학했으나 막상 졸업하는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하니 공통된 문제에 직면한 셈이다. 이런 학생들이 졸업 후 한국과의 끈을 놓아버리면 ‘지한파’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국익 차원에서도 손해를 보는 셈이다. 자발적으로 한국학을 시작했으나 현실의 문제에 부딪힌 학생들의 목소리에 우리 정부나 기업이 귀 기울여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학 학위과정이 설치된 지 30년 가까이 된 런던대학 소아스의 사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런던대학 소아스는 1940년대 영국 최초로 한국어 강의를 시작했고, 1987년 한국학연구소 개설, 1989년에는 한국학 학위과정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매년 25~30명씩 한국학과에 입학하고, 그중 약 10%가 대학원에 진학한다. 소아스 졸업생도 한국 관련 직장에 취직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열의만 있다면 한국학중앙연구소나 KF 같은 정부기관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은 제법 마련돼 있다. 이러한 학문적인 지원이 계속되면 당연히 연구 수준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소아스 한국학과의 수준이 대내외적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다. 데보라 스미스가 한국 정부기관의 도움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데보라 스미스가 소아스에서 높은 수준의 한국어 및 문학을 배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로벌 한국 기업의 지원이 필요

 

기자는 10월11일 소아스 한국학과 개설 강의 중 ‘한국문학’ 수업을 참관했다. 이 수업을 가르치는 그레이스 고 교수는 데보라 스미스의 지도교수였다. 3·4학년 및 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수업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이날은 때마침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한국문학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비롯해 시조, 향가 등이 주제로 언급됐다. 수업 중에 고 교수가 과거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려고 할 때 양반들이 반대했던 이유를 물었다. 한 남학생이 곧바로 손을 들고 영어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한글을 언문으로 부를 정도로 천한 글자로 여겼다”고 답했다.

 

런던대학 소아스 한국학과 연재훈 교수(왼쪽 사진), 셰필드대학 동아시아학과 김승영 한국학 부교수© 시사저널 박혁진


한국어와 문학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가 바탕이 됐을 때 데보라 스미스 같은 번역가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연재훈 소아스 한국학과 교수는 “데보라 스미스의 맨부커상 수상은 언론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지만 단편적인 성과라기보다는 꾸준한 발전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연 교수의 이 말을 소아스 교수 및 학생의 노력과 학교 측의 지원에다 적절한 정부기관의 도움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연 교수 역시 한국 기업을 포함한 국가적 지원 사업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소나 KF 등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기업 등이 조금 더 거시적 관점에서 한국학을 지원했으면 좋겠다”며 “일본과 중국의 지원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자료가 없지만 일본과 중국은 지원뿐만 아니라 역사나 관심의 정도가 한국과는 큰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연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재단을 세워서 세계 여러 대학의 일본학과를 지원하는 것을 하나의 사례로 꼽기도 했다. 또한 중국 정부가 ‘공자학당’이란 이름의 중국어 교육기관을 전 세계에 세워놓고 막대한 물량지원을 하는 것도 우리나라와는 대조되는 사례다. 중국의 공자학당과 비슷한 우리나라의 세종어학당의 경우 1년 동안 런던 세종어학당 예산이 3000만원에 불과하다.

 

영국의 한국학은 기로에 서 있다. 런던대학 소아스와 같은 최대의 한국학 연구기관마저도 대학의 자발적 육성 의지에다 한국 정부기관의 도움이 더해져 오늘날의 위상을 갖게 됐다. 자발적 성장을 이뤄온 셰필드대학이나 센트럴랭커셔대학의 경우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연 우리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세계무대에서 지한파를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면, 한국학과 졸업생들의 호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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